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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장사 우산장사

by 김보람 Mar 02. 2025

첫 번째 콩쿠르를 성공적으로 마친 지 일주일 만에, 두 번째 콩쿠르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번 콩쿠르도 저학년과 중학년 경연 시간이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있어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당일 콩쿠르 직전 연습이 아이들의 경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콩쿠르 장소 근처에 적당한 피아노 연습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지난번 콩쿠르에서 고학년 아이들이 콩쿠르 직전 연습을 하지 못해 아쉬운 결과를 받았던 터라, 선생님은 40분 거리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서라도 연습을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첫째와 둘째의 콩쿠르 시간이 달라 1시간 거리의 피아노 학원과 콩쿠르 장소를 두 번이나 왕복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더욱이 봄비라고 하기엔 장맛비 같은 비가 내리고, 안개가 짙은 서부산업도로를 두 번씩 오가야 하다니…

평소처럼 남편과 나누어 이동하려 했지만, 아들은 엄마가 자신의 콩쿠르를 보지 못하는 게 싫다며 떼를 썼다. 딸에게 함께 이동하자고 제안했더니, 멀미가 심해 두 번 왕복하면 콩쿠르 결과가 좋지 않을 거라며 엄마랑 집에서 대기하고 싶다고 했다. 두 아이의 말이 모두 일리가 있었지만, 내 몸을 두 개로 나눌 수도 없는 노릇. 고민 끝에 결국 친정엄마께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새벽 연습 후 첫째를 친정엄마께 맡기고, 다시 콩쿠르 직전 연습을 마친 뒤 함께 제주시로 이동하는 방법을 택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둘째의 콩쿠르를 마쳤다. 높은 경쟁률에도 불구하고 영재대상을 받았다. 지난번 4등에서 이번에는 2등에 해당하는 성적이니, 아들은 한층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좋은 결과였고, 하반기 전국대회 출전 자격까지 주어진다는 소식까지 들었다. 사실 이번 콩쿠르를 마지막으로 피아노를 잠시 쉬려 했는데, 기쁜 고민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3월부터 축구 대회 시즌이 시작되며, 올해 축구팀 주장을 맡게 된 아들은 축구에 더 전념하기로 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 고민할 수 있는 현실이 감사할 뿐이었다.


첫째를 만나러 가는 길, 기쁜 마음도 잠시.

새벽연습을 마치고 할머니집에서 잠깐 쉬었다 콩쿨 전 연습을 마치고 온 첫째.

불과 3시간 만의 재회였는데, 새벽에 단장해주었던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콩쿠르를 앞둔 긴장감이 얼굴에 가득했다. 둘째의 결과로 더 긴장할까 싶어 애써 감정을 감추고 아이를 다독였다.


다행히 첫째의 콩쿠르도 무사히 끝났다. 그리고 결과는 준대상! (전체 3위 정도에 해당). 3학년은 피아노 콩쿠르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학년이라 들었다. 연습량도 많고 실력도 엇비슷해 우열을 가리기 힘든데, 그런 치열한 경쟁 속에서 거둔 성과라 더욱 기특했다. 피아노 콩쿠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등수가 아니라, 아이가 쏟은 노력과 과정. 목표를 이루기 위해 겨울방학 내내 연습에 몰두한 아이가 대견했다.


하지만 첫째는 결과를 받아들고 침울해졌다. ‘준차상’, ‘준대상’ 등 ‘준’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상만 받아왔다며, 이번에는 더 열심히 연습했고, 만족스럽게 연주했으니 적어도 학년 대상은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단다. 무엇보다 동생은 전국대회 출전권을 받았는데, 자신은 단 2점 차이로 출전권을 놓친 게 가장 속상하다고 했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다시 한번 이야기해주었다. 콩쿠르는 연습하고 무대에 서는 것까지가 우리의 몫이고, 그 이후의 결과는 우리가 결정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심사위원의 기준도 콩쿠르마다 다르고, 그날의 컨디션과 참가자들의 실력도 매번 달라지니,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꾸준히 피아노를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물론 이 말이 아이의 마음을 금세 풀어주진 않았지만.


겨우 아이를 달래 다음 스케줄로 향했다. 아들의 축구 연습경기가 예정되어 있었고, 우리는 점심을 먹고 축구장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두 아이가 메뉴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면서 다툼이 벌어졌다. 한쪽 편을 들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 결국 남편과 나누어 이동하기로 했다. 나는 첫째와 친정엄마와 함께 식사를 하러 가고, 남편은 둘째와 함께 축구장으로 향했다.


마치 부채장사와 우산장사를 둔 엄마의 마음이 이런 걸까. 비가 오면 부채 장사하는 아들이 걱정이고, 날이 좋으면 우산 장사하는 아들이 걱정이던 그 이야기처럼, 두 아이의 기쁨과 슬픔을 온전히 함께하기란 어쩜 이리도 어려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는 현실에 감사하며, 오늘도 또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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