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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Oct 24. 2021

5. 자전거

 마흔 번째 생일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자전거를 한 대 선물해 주기로 했다.물론 그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여태 그래왔듯 공공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도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일 년에 몇만 원만 지불하면 언제든 근처 정류장에서 빌려 탈 수 있는 공공자전거가 개인 자전거에 비해 더욱 유용해 보였다. 더군다나 일일이 정비라거나 수리 따위를 할 필요가 없이 지방자치단체에서 꼼꼼히 해 주기에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한 제도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만의 자전거를 한 대 가지고 싶은 욕구가 생겼던 것이다. 고민은 제법 길었지만 나는 결국 긍정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리하여 나도 남들처럼 자전거를 한 대 가지기로 했다. 생애 첫 자전거가 될 터였다.

 하지만 구매에 대한 결정은 시작에 불과했다. 공공자전거와 달리 자가용 자전거의 종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많았다. 공공자전거의 경우에는 그저 몸에 맞는 안장의 길이만 잘 골라서 타면 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남성 평균 신장 정도의 나 같은 사람은 어떤 걸 고르더라도 불편함이 없었다. 다만 운이 조금 나빠서 고른 자전거의 바퀴에 바람이 부족하다거나 낡아서 끼익거리는 소리가 나는 경우가 있지만 별 문제가 되진 않는다. 옆에 있는 다른 자전거로 바꾸어 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용 자전거는 그것 단 하나 뿐이기에 신중히 골라야만 했다. 힘들여 번 돈을 주고 무언가를 사는 일이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고르고 나면 마치 운명처럼 되어버리는 그 결정적 선택은 늘 신중해야만 한다.

 직장의 동료에게 추천을 받아 간 자전거 가게에서 나는 깜짝 놀랐다. 자전거가 거의 차 한 대 값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예산의 다섯 배가 훌쩍 넘는 가격을 주고 자전거를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가게 문을 나섰을 때 나는 약간 의기소침해졌던 것 같다. 하지만 공공자전거를 빌려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불던 시원한 바람 덕분에 금세 기분이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방바닥에 누워 나는 다시 한 번, 자전거를 위해 내가 쓸 수 있을 돈에 대해 헤아려 보았다. 매달 어머니께 드리는 용돈과 식비, 얼마 전 가입한 보험료, 주택청약적금, 일반적금 등 정기 지출을 제외하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심지어 이번 자전거 구매를 위해서 몇 달 동안 모아둔 돈을 다 쓴다고 한들 아까 본 자전거를 사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했다. 차라리 자전거를 사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는 편이 나아 보였다. 한편으로는 나와 비슷한 월급을 받는 처지일 직장 동료가 어찌 그런 자전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인지 의아했다.

 "돈 없으면 제대로 된 자전거 타기도 힘든 세상인 거지. 꿈의 자전거인 셈이야." 그 역시 그런 비싼 자전거를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내게 약간의 안도감을 주었다.

 동료는 내게 동대문 근처의 작은 가게들을 알려주었다. 거기에선 내 예산에 맞는 자전거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생각했던 것에 비해 더 저렴한 것들도 많이 있어 나는 마음이 놓였다. 별로 오래되지 않아 보이는 깔끔한 가게 안은 자전거들로 가득했다. 어눌한 말투의 주인은 내 예산과 신장, 그리고 용도에 대해 간략하게 물어본 뒤 다섯 종류의 자전거를 소개해 주었다.

 "타 보셔도 됩니다." 그는 기름때가 찌든 하얀 목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그나마 깨끗한 손등 부위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세 대째 자전거를 시험 주행한 뒤 돌아왔을 때, 나는 더이상 타 볼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전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생김새야 말할 것도 없이 비슷한 그것들은 그저 색깔만 조금씩 다를 뿐이었다.

 "다 비슷하죠? 부품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전거는 부품에 따라 가격도, 성능도 천차만별이니까요." 그는 다시금 손등으로 이마를 닦으며 건조하게 말했다. 자세히 보니 그의 이마가 어디에 박은 듯 툭 불거져 있었다.

 과연 그의 말 그대로였다. 비싼 자전거를 시승해 보니 훨씬 더 잘 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양새 역시 비싼 쪽이 훨씬 좋아 보였다. 하지만 나의 예산에 비한다면 턱없이 비쌌다. 나는 잠시 동안 가게 한복판에 멀뚱히 서서 자전거를 꼭 사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지를 따져보고 있었다. 이러한 말장난은 나와 같이 소심한 사람들로 하여금 사지 말아야 할 이유를 천 가지도 넘게 만들어 준다. 따지고 들자면, 세상에 꼭 사야만 하는 건 별로 없다. 하지만 나는 그가 추천해 준 자전거를 결국 샀다.

 사장은 자전거를 나의 몸에 딱 맞게끔 조절해 주었다. 그리고 기어 작동법 및 나의 수준에 맞는 간단한 문제 해결법 정도를 들은 뒤 나는 생애 첫 나만의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약간의 어색함은 곧 해결될 것이었다. 나는 동네를 크게 두 바퀴 돌고 집으로 가 늦은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문제가 시작되었다. 자전거를 산 다음날이었다. 그때까진 항상 공공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었기에 이러한 점이 문제가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나는 내가 타고있는 자전거가 남의 눈에 어떻게 비춰질지 생각해 본 일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막상 나만의 자전거를 타고 다니려니 그런 것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의혹에서 시작된 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고, 나도 모르는 사이 자전거는 나 자신을 대표하고 있었던 것이다.

 새 자전거를 타고 처음으로 출근한 날이었다. 내가 다니는 무역회사는 20층 건물의 11층에 위치해 있는데, 낡은 건물의 비좁은 엘리베이터에 사람들과 함께 자전거를 싣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던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하여 앞으론 30분 정도 서둘러 붐비지 않는 시간에 승강기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당연한 얘기겠지만, 저렴한 축에 속하는 자전거일 지라도 공공자전거에 비하면 성능이 훨씬 좋았다. 그리하여 나는 이동 시간을 평소보다 10분 정도 절약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자전거를 사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게 그 동대문 자전거 가게를 소개해 준 동료가 내 책상 뒤에 기대어 놓은 자전거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설마 저 학생용 자전거를 돈 주고 산 건 아니겠지?" 마치 용의자를 취조하는 형사 같은 말투였다. 이 질문을 먼저 받은 건 어쩌면 행운이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그에게 자전거 가게를 소개해 준 것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하고 말았을 것이다. 또한, 생일을 기념하여 나에게 준 선물이라는 말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직장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의 자전거를 두고 한 마디씩 거들고 지나갔다. 그때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라는 것에 큰 관심을 두고 살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들 중 실제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의견들은 매우 비슷하고 또 확고했다. 요약하자면, 자신이었다면 결코 나와 같은 자전거를 사진 않았으리라는 말이었다. 그때 나는 이성의 끈이 툭 끊어져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해 버린 것 같았다. 멀리서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얕보거나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져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어느 샌가 나는 무언가를 크게 잘못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날 나는 동료들이 모두 퇴근하고 난 뒤에도 오랫동안 사무실에 남아있었다. 자전거를 끌고 가는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게 부끄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퇴근길에도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아 노을의 여명이 거리에 가득했다.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에서도 나는 불편한 마음이 가득했다. 새 자전거 특유의 광택과 닳지 않은 새카만 바퀴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만 같았다. 그들 모두가 내 자전거를 보며 형편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걸 상상하니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차라리 자전거가 헌것이었다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집으로 가는 길 전봇대에 자전거 차체를 대고 조금 긁었다.

 이튿날부터 나는 자전거를 사무실 건물 뒤편의 자전거 주차장에 매어 두기 시작했다. 그렇게 함으로서 나는 직장 동료들의 관심에서 저만치 물러나 원래대로 일에 조금 더 매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자전거가 눈에 보이지 않자 그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허나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는데, 아마도 이때부터 나는 자전거를 산 일을 후회하고 있었던 것 같다. 따지고 들자면 공공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시절이 더욱 좋았다. 그때라면 누군가 내게 자전거로 출퇴근을 할 정도라면 한 대 사는 게 낫지 않겠냐는 질문을 하더라도 그저 저들처럼 '좋은 게 아니면 안 사는 게 낫지'라고 허세를 부릴 자격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분별없이 그 '학생용 자전거'를 삼으로서 그럴 자유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하고 말았다. 그 은빛 자전거를 볼 때마다 울화통이 치밀어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화병으로 죽는 일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머잖아 나는 자전거를 도난당한 것이었다. 그 일이 일어난 건 '학생용 자전거' 사건이 있고 열흘 쯤 지나고 나서였다. 그때에도 여전히 나는 우울과 분노의 양극단을 오가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그러한 기복은 회사에서 더욱 심했기에 일을 마치고 나면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누구도 더 이상 내게 자전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음에도 나는 동료들의 얼굴을 마주하기만 해도 비웃음이 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이와 같은 망상증에는 정말이지 출구란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그러다 그 도난 사건이 일어났다.

 퇴근 후 나의 '학생용 자전거'를 타러 자전거 주차장으로 갔을 때였다. 나는 열 대 정도의 자전거 사이에서 내 것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처음엔 뭔가 미심쩍은 기분이 들어 그곳에 있던 자전거들을 하나하나 살펴 보았지만 이미 내 자전거는 사라진 뒤였다. 그때 나는 약간의 서글픔이 밀려드는 것을 느꼈지만 이내 걸음을 돌려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공공자전거 정류장이 있는 그곳으로. 나의 회원권은 여전히 만료가 되지 않은 터였고, 나는 모처럼 공공자전거를 타고 퇴근하게 되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힘차게 달리는 동안에도 여전히 가슴 속 작은 무언가가 꿈틀거려 시큰거렸지만 마음은 더할 나위가 없이 가벼웠다. 그때까지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커다란 자유로움이, 그리고 기쁨이 마치 마약처럼 온몸을 저릿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깔깔거리며 나아갔다. 웃음을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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