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음 Oct 24. 2021

7. 자서전

 오늘은 내 차례였다. 지난 주 시작된 <사장과 함께하는 점심> 프로그램의 순서가 된 나는 평소와는 달리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했다. 어느덧 여름도 벌써 가까워져 자전거를 타고 나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보도의 가로수 나뭇가지 사이로 매미들이 넙죽 달라붙어 이따금 맹렬히 울어 대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듣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것이 마치 무언가, 나만이 간직하게 될 비밀 한 조각을 속삭여 주는 것 같았다.

 사장은 언제나처럼 멀끔한 정장 차림으로 출근했다. 직원들과 간략히 인사를 나누고 나서 나를 향해 웃으며 오늘 점심은 내 차례임을 넌지시 알려주었다. 사장은 60대 중반의 성큼한 사내인데, 반쯤 까진 대머리가 전혀 흉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행동거지에 무게가 그리고 품위가 있었다. 높은 콧대와 푹 패인 눈은 마치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 같은 인상을 주었는데, 늘 웃는 얼굴이었다.

 "식당 예약은 정오로 하지. 그럼, 기대하겠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넙죽 숙였다.

 매년 한 번씩 돌아오는 이 점심 행사의 규칙은 사장과 점심을 함께하는 사람이 메뉴와 식당을 정해 예약을 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 시간 만큼은 수직이 아닌 수평적 관계가 되어 보자는 것이 사장의 취지라고 들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사원의 입장에서는 이것 보다 더욱 어려운 선택은 없었다. 결국 무엇을 먹든 사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와 결정한 메뉴를 통해 사장은 우리 개개인을 어떤 식으로든 평가할지 모른다는 성가심이 공존했던 것이다. 허나 그러한 판단에 일리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들은 바에 따르면, 사장의 말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기 좋아하는 회계부서 과장은 매년 서울 곳곳의 영양탕집들을 돌아가며 예약해 동물애호가인 사장의 심기를 거슬리게 만든다고 하니 말이다. 물론 그 사람이 영양탕을 끔찍하게 좋아해 만일 죽기 전 단 하나의 음식만 먹을 수 있다면 따질 것도 없이 그것을 선택할 지도 모른다는 사실 또한 외면할 수는 없는 법이다. 어쨌든 그것들은 다 남의 일이다. 나는 두 시간 내로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작년엔 가락국수를 먹었다. 그 식당은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가던 곳이었다. 특히, 살아 계실 적의 아버지는 거기서 먹는 가락국수를 정말로 좋아하셨었다. 그 뒤로는 좀처럼 가는 일이 없었지만 작년 이맘 쯤, 사장과의 점심 식사를 궁리하다 문득 생각이 났다. 식당에 도착했을 때 사장은 흠칫 놀라 의아한 표정으로 내가 어찌 그곳을 아는지 궁금해했는데, 나는 아버지 얘기를 하는 것이 싫어 딴청을 피웠다. 그러자 사장은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그 내용이 기억나질 않는다.

 나는 회사에서 주어진 점심 시간에 식사를 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매일 아침,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나오기 때문인데 당신은 내가 아직도 성장기 고등학생이라 생각하는 모양인지 늘 머슴밥을 차려주는 것이다. 다 먹지 않는 날에는 어머니의 얼굴에 수심이 하루 종일 가득했기에 나는 아침마다 억지로라도 머슴이 되어야만 했다. 그러고 나서 자전거로 출근하다 보면 이따금 헛구역질이 났다. 따라서 오전 근무 내내 약간의 구토감을 가지고 일을 하다 보면 점심 생각이라고는 도무지 나질 않는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사장에게 할 수는 없었다. 이 점심은 연례행사와 같은, 일종의 업무인 셈이다.

  열한 시가 되었을 때에는 마음이 조금 급해졌다. 나는 사장이 무엇을 좋아할 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문득 내다본 창문 밖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낯설게 맑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장실로 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가니 사장은 통화 중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내 용건을 물었다. 급조된 결정이기는 했지만 나는 그에게 혹시 괜찮다면 오늘 점심은 식당이 아닌 공원에서 간단히 해결해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사장은 언제나 그렇듯 미소를 지으며 오늘 점심은 뭐든 나의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대답했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사장실을 나갔다.

 정오 이십 분 전에 사장은 나를 불렀고 우린 함께 밖으로 나갔다. 길을 조금 걷는 동안 사장은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광장시장에서 산 떡볶이와 순대, 그리고 김밥을 들고 훈련원 공원에 도착했을 때는 땀으로 셔츠가 조금 젖어있었다. 그늘진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내가 음식들을 풀어놓고 있을 때까지도 사장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어쩌면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작은 회사이기는 해도 명색이 사장인데 일 년에 한 번 하는 자신과의 독대 식사 자리를 먼지 날리는 공원으로 잡은 직원에 대해 언짢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느낄 수도 있었다면 애당초 이런 프로그램은 계획하지 않았어야 했다.

 사장은 그 음식들을 생각보다 좋아했다. 나 역시 입맛이 없었다는 것이 순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게걸스레 먹어댔다. 그러다 내가 물을 사 오는 것을 깜빡했다는 사실이 갑자기 떠올랐다. 사장에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그는 괜찮다며 나를 말렸다. 짧고 간단했던 점심식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나른한 오후가 시작되고 있었다. 사장은 느긋하게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서 내게 천문학과 생활은 어땠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십 년 가까이 지난 일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렇다 할 기억이라는 게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아무리 업무라고는 해도 사적인 영역까지 모조리 대답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 역시 한 몫 했다. 동시에, 그 질문으로 인하여 나는 천문학과와 무역회사 사이의 거리를 마음속으로 재어보게 되었다. 물론 내가 원해서 간 만큼 공부는 흥미로웠다. 하지만 그것과 지금의 삶은 별개인 것이다. 따지고 들자면 아쉬운 점도 많겠지만 지금의 내 생활은 나에게 있어서는 딱 알맞았다. 사장은 질문을 바꿔 내가 고속도로 상황실에서 일하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고, 나는 어머니가 밤에 집에 혼자 있는 게 싫어서 그만두었다고만 대답했다.

 사무실로 돌아가던 길, 사장은 시원한 커피를 한 잔 마시지 않겠느냐 물었다. 점심 시간은 아직 삼십여 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우리는 사무실 근처 카페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햇볕을 피해 차양막 아래 앉아 있으려니 선선한 바람이 불어 기분이 좋았다. 점심을 즐기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지나고 또 지나갔다. 많다 못해 넘치는 것 같은 얼굴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그리고 또렷하게 내 눈에 나타나던 모습들은 사라지자마자 잊혀졌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 중 어느 하나도 나를 사람으로 의식하지 않는다. 거기서 나는 무척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이와 같은 망중한은 참으로 오래간만이었다. 그래서 잠시 동안 나는 옆에 있던 사장의 존재마저 잊고 있었다.

 사장은 내게 죽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주택 청약에 성공해 집을 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달리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그는 껄껄대며 웃었다.

 "그런 것도 목표가 될 수 있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네." 그 밖에 다른 것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질문은 내게 있어 약간 성가신 것이었다. 한때는 남들처럼 나도 그런 게 있었지만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실은 말이지, 나는 자서전을 쓰고 있다네." 사장이 목청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내게는 그 말이 마치 자신은 돈이 많다는 말처럼 들렸다. 잠시 후 그는 내게 왜 자신의 회사에 지원하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건 그저 달리 할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나는 재능도 없었지만, 무엇보다도 용기가 없었어. 그래서 부모의 뜻대로 회사를 받았지. 근데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아마 그대로일 거야.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거든. 심지어 내가 훗날 이렇게 살게 될 것임을 40년 전에도 알고 있었어도 달라지는 건 거의 없었을 거라네." 처음 듣는 목소리의 사장이었다. 그는 주눅이 든 것 같은 말투였다. 나는 그러한 생각이 결국 사장 자신이 현재의 생활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자네에겐 조금 엉뚱한 점이 있는데, 나는 그게 참 좋아." 사장은 담배를 입에 물고 기지개를 켰다. 멀리서 들려오던 매미 울음소리가 점차 짙어지고 있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오랫동안 생각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아마 다들 나와 비슷한 대답을 하고 말 거라네." 나는 정작 나에 대해 생각을 해 본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덧붙일 만한 의견이 없었다. 나의 염려는 늘 생활과 관련된 것들 뿐이었다.

 사장은 주말이 되면 늘 풍물시장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고, 그곳이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장소라고 말했다. 왜인지 아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잘은 모르겠으나 나이가 들면 오래된 물건들에 애착을 갖게 되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오래된 물건만 있는 건 아니라네. 오래되고 낡은 물건들도 있다고 말해야지. 하지만 거기엔 하나 같이 공통된 특징이 있다네. 무엇인지 아는가?" 사장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담배 연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나는 그것들에 숨겨진 가치가 있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게 공통점인 거야. 버려지고 잊혀지면 가치도, 존재도 사라지는 셈이니까. 우리 역시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역사를 통틀어 인간은 스스로 존재한 적도, 그럴 수도 없는 조건을 가지고 살아왔던 거야." 그는 몹시 고통스러운 듯이 머리를 감싸 쥐었는데, 처음으로 보는 그의 정수리는 생각보다 더욱 휑했다. 그의 대머리가 유난히 작게 느껴졌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한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다른 사람들 덕분이라는 것이었다. 바라보고, 떠올리는 대상으로서만 인간은 진정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은 나로서는 몹시 난해했다. 하지만 곰곰이 따지고 보니 그의 말엔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만큼 살아있다는 것과 존재한다는 것의 차이에 대해 따져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장의 논리대로라면 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는 셈이었다. 잊혀지고 버려지지 않기 위해서. 하지만 그러한 삶은 내가 살아온 것과는 정 반대의 것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났다. 이미 죽은 아버지가 나로 인해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는 사장의 주장은 나에겐 별 설득력이 없어 보였다. 나는 그저 사장이 나이를 먹었기에 마음이 약해진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 역시 그러했다. 아니, 나 역시 그러할 것이다. 죽음의 존재가 마지막 골목을 돌아 눈에 나타나면 별안간 두려움에 휩싸이는 것이다. 자서전을 미처 끝내지 못한 사장의 번쩍거리는 대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고 만다. 그렇게 그는 사라지고, 잊혀지는 것이다. 언젠가, 내게도 그와 같은 그림자가 다가오는 날에는, 어느 점심나절, 훈련원 공원에서 분식을 함께 먹었던 사람의 존재도 끝이 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가 나를 오랫동안 기억해 주길 바라기 때문이 아니라네. 그건 순전히 내가 나를 추억하고 싶기 때문이라네." 사장의 목소리가 제법 떨렸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언제 한 번 집에 들러 주게나. 책을 좀 정리하려고 하는데, 자네가 원하는 책이 있다면 좀 가져가도 좋네."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남과 함께 점심 식사는 끝이 났다.

 그날 저녁,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는 이미 잠자리에 들어있었다. 두어 번의 헛기침으로 인기척을 드러낸 뒤 씻고 방으로 들어와 바로 드러누웠다. 한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결국 나는 잠을 잠시 미루고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그러다 나는 점심 이후로 줄곧 내가 사장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음을 깨달았다. 과연 그랬다. 한 인간이 영원히 버텨낼 수 없을 진실이 거기에 있었다. 그것들은 늘 고독이란 감정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창 밖은 달빛 하나 없이 새카맸다. 나는 그 칠흑 같은 어둠을 마주한 채 고뇌하는 사장의 뒷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탁상등 불빛을 받아 번쩍거리는 그의 대머리가 짊어진 화해 불가능한 모순과 삶의 고독이 나와 그를 서로 매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종이를 한 장 꺼내어 제일 위에 큰 글씨로 자서전이란 단어를 써 보았다. 하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좋은지, 무엇을 써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느닷없이 졸음이 밀려왔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 잠들기 전, 내일은 새 공책을 하나 사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06화 6. 물 주는 남자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