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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Oct 24. 2021

8. 지중해다방

 참으로 이상한 하루였다. 삼십 년이 넘도록 연락 한 번 없던 J에게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나는 그의 목소리에서 반가운 점이라곤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먼저 격식 없는 말투로 그가 찾는 사람이 내가 맞는지를 물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말투였지만 목소리는 내 기억 속 그것과 전혀 달랐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다짜고짜 그는 오늘 오후 시간이 되느냐고 물어왔다. 그때까지 그는 여전히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채였다. 전화 판매의 일종이란 생각이 들어 성가신 기분이 들었다. 침묵이 점점 길어지자 그는 활기찬 목소리로 자신이 J임을 밝혔다. 나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것은 어리둥절한 기분 때문만은 아니었다.

 J 는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짧게 묻더니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모처럼 수다나 떨며 기분이나 내자는 것이었는데, 이 말이 내 귀에는 무척 부자연스럽게 들렸다. 그는 우리 둘 사이에 놓인 삼십 년이 넘는 시간을 마치 두어 주 정도 밖에는 되지 않은 것처럼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천연덕스러운 태도에 대해 별로 거스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 역시 그 기나긴 시간을 지나온 J가 궁금했기에 알겠노라 대답했다. 

 종로4가, 지중해 카페에서 오후 4시. 약속을 정한 뒤에도 J는 통화를 이어나갔다. 부모님은 잘 계신지, 하는 일은 다 잘 되어가는지, 아이는 몇 살이나 되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운운... 그는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계속해 질문을 던질 뿐이었다. 심지어 그는 내가 어떠한 옷을 입고 나올 것인지에 대해서도 궁금해 했다. 그때엔 이미 나 역시 그가 대답을 듣기 위해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차분히 듣기만 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J가 나를 '자네'라고 부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전화를 끊고 머잖아 나는 그와 만나기로 한 걸 약간 후회했다. 그와 마주앉아 무슨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서로에게 비어버린 삼십 년의 시간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이 곧장 뛰어넘는 대화는 만담 이상의 것이 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하여 각자가 편력해 온 삶의 여정을 억지로 토막내거나 요약하여 한두 시간 내에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했다. 만일 그가 나에게 전화를 걸었던 데에 목적이 있었다면 이와 같은 재미없는 이야기를 듣기 위함은 결코 아닐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차라리 그러한 목적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불쑥 피어났다.

 그가 말한 카페는 종묘 건너편 상가건물 지하 1층에 위치해 있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지중해 카페가 아니라 지중해다방이라는 이름의 허름한 찻집이었다. 1층에 따로 붙어있는 낡은 통유리 여닫이문을 밀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는데, 거기에 깔린 새빨간 카펫에선 퀴퀴한 냄새가 올라왔다. 그리고 벽에는 풍물시장에서나 살 수 있을 법한 싸구려 그림들이 낡은 액자에 끼워져 걸려있었다. 그것들은 전부 파스텔톤의 유화였는데, 하나같이 나에겐 도무지 익숙하지 않은 바다의 풍경들을 담고 있었다. 그곳이 지중해인 모양이었다.

 들어선 찻집 내부에서도 여전히 퀴퀴한 냄새가, 이번엔 생선 비린내와 함께 코를 자극했다. 그리고 여전히 바닥엔 빨간 카펫이 깔려있었고, 벽은 푸른빛의 유화들로 가득했다. 열 평 남짓한 공간의 한쪽 면에는 계산대와 주방이, 나머지 세 면은 벽을 따라 테이블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가운데 공간에는 조명도, 가구도 하나 없어 마치 자그마한 댄스홀을 연상케 하였다. 계산대에 앉아 턱을 괸 채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주인은 신비주의자 같은 인상을 주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그것을 통해 나는 이 찻집이 보통 단골들만 상대하는 곳임을 알아차렸다. 70대 중반은 족히 되어 보이는 여주인은 여전히 턱을 괸 채 시선으로 나를 좇고 있었다.

 J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를 제외한 다른 두셋의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전부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남녀인 쌍으로 마주보고 앉아 있었는데, J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던 나를 몹시 경계하는 눈치였다. 찻집에 중앙 조명이 없는 대신 각 테이블마다 가운데에 붉은 갓등이 놓여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잔뜩 멋을 부린 모습이었는데, 붉은 빛이 노인들의 얼굴을 더욱 파리하게 만드는 탓에 그 둘의 대조가 내겐 몹시 어색해 보였다. 

 J는 휠체어에 앉아있었기에 마주보고 있는 두 의자가 아니라 댄스홀을 등진 채 벽과 마주하고 있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사람 좋은 인상으로 고개를 들어 내게 악수를 청했다. 빨간 벨벳 천이 씌워진 소파는 안에 스펀지가 들어있는 것인지 앉자마자 쑤욱 내려앉았고, 동시에 어렴풋한 먼지 냄새가 피어올랐다. 그제야 예의 그 신비주의자 같은 주인 여성이 주문을 받으러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왼다리를 거의 쓰지 못했는데, 오로지 오른쪽 발이 걸어나갈 수 있도록 잠시 지지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왼쪽 발을 질질 끌며 다가온 주인은 메뉴판을 내밀며 무얼 마시겠느냐고 물었다. 이미 끼니때가 가까워졌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으니 J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봐, 그럴 수는 없는 거야'라며 녹차를 한 잔 주문해 주었다.

 J는 여전히 키가 컸다. 휠체어에 앉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눈에 보일 만큼 늘씬했다. 하지만 삐쩍 말라 광대가 불거진 얼굴은 눈이 튀어나온 해골처럼 보였다. 도착 후 나눈 악수 뒤로 주문한 녹차가 올 때까지 그는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테이블에 올려 놓은 자신의 두 손만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 역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봐, 이게 얼마만인지 기억도 안 나는군. 자네랑 저 건너편에서 아무데나 오줌 싸면서 놀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여전히 테이블에 시선을 꽂아둔 채 J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곧 J는 고개를 들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찡긋해 보였다. 거기서 나는 그때까지 잊고 있었던 것만 같은 서른 해 전 그의 천진한 얼굴을 발견하고는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것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나온 '변한 게 하나 없는 것 같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는 손사래를 치고는 긴장이 풀린 듯 익살스레 말했다.

 "이거, 내가 진 것 같군. 오늘 저녁은 내가 살 수밖에 없겠어. 자, 가자고."

 아직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녹차에선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 않고 말했다.

 "이봐 자네, 그건 마시든 말든 상관이 없는 거야. 억지로 먹어야만 하는 건 세월 하나로 충분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도와주려 하자 그는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능숙한 몸짓으로 휠체어를 접어 든 J는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가서는 다시 휠체어를 펴 그 위에 앉았다.

 "이봐, 좀 밀어주지 않겠나?" 그의 말에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자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이미 안다는 듯 J는 귀찮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종로3가에 접어들 때까지 우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구월의 저녁 공기는 여전히 포근해 가느다란 바람을 타고 뺨과 목덜미에 와 닿았다. 나는 얼마 전 있었던 기묘한 우연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인연이라는 것이었다면 나는 그것을 속절없이 흘려버린 셈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별로 아쉽지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이 같은 형태로 다시 한 번 일어난다 한들 결과는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나는 나의 생활이 크게 변화하는 것을 더 이상 원하지 않게 되었다. 야심, 희망, 꿈 같은 건 살아보니 죽어버린 란타나보다 더 부질 없는 것이었다

 "사람 만나는 일에 지겨움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마도 그것 때문에 결혼을 못 한 게 분명해. 참 다행이지. 그랬다면 나는 필시 바람둥이로 이름을 날리고 말았을 테니까 말이야."

 J는 달라진 게 별로 없어 보였다. 그때도 이와 같이 쾌활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제대로 기억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를 조금 먹고 나면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삼십 년 전 일을 어떻게 기억하든, 그걸 자신의 식대로 어떻게 바꾸어 말하든 반박할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된다는 말이다. 그저, 웃을 일이 하나 더 생긴다는 건 참 좋은 것이다.

 우리는 피맛골 어느 식당에 들어갔다. 그는 이번엔 휠체어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로 식당 주인과 나의 도움을 받아 문턱을 넘었다. 60대 정도의 자그마한 대머리 사장은 선한 표정으로 J와 악수를 나누며 안부를 물었다. J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귀에 손을 대고 나직이 뭐라고 중얼거렸는데, 그 말을 들은 대머리 사장은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머잖아 그는 돌아갔다.

 "이게 돈이 되거든. 월급만 받아 먹고 살다가는 거지꼴을 면할 수가 없어. 난 말이지, 빚이나 갚다 죽고 싶지는 않거든." 입안 가득 털어 넣은 소주를 꿀꺽 삼킨 뒤 J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의료기기 회사의 외판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실적이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확실히 그는 매력이 있었다. 특유의 익살스러운 말투, 험한 말을 해도 결코 그렇게 들리지 않는 말투와 표정을 통해 나는 오래 전 기억을 다소나마 되살려냈다. 

 "창신동 골목길 기억하는가 자네? 예전에 우리 한창 놀던 거기 말이야. 글쎄 얼마 전에 새로 생긴 정형외과 주소를 받아서 가보니 딱 거기였어. 근데 한편으로는 거기가 아니더군. 온데간데 없어졌지 뭐야. 전부 다 새것이더군. 원장은 젊은 녀석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재개발 때 무허가 뚜껑들로 돈 좀 벌어 올린 건물주 아들이었지. 나는 들어가자마자 녀석이 호사꾼 기질을 가지고 있음을 대번에 알아차렸다네. 그래서 그에겐 전설처럼 들릴 이야기들을 쭉 늘어놓아 주었지. 지나간 날들의 영광으로 녀석의 혼을 쏙 빼놓은 뒤, 나는 책상을 탁 치고서 말했어. 새 걸 좋아하시는 모양이니, 전부 다 새 것으로 바꾸는 게 어떻겠습니까?" J는 만담꾼 같은 유쾌한 말투였다. 나는 그 결말이 궁금했다.

 "저는 오래된 것들이 더 좋습니다, 라고 하더군. 역시 뚜껑팔이 아들다운 말투지. 돈이 되는 게 뭔지 아는 거야." 그는 여전히 쾌활한 말투였다.

 J는 술을 많이 마셨다. 나 역시 모처럼 마신 술에 머리가 조금 아팠지만 기분은 참 좋았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각자 무언가에 몰두해 있었다. 아니, 몰두했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삼십 대 중반 즈음부터 무언가를 조리 있게 따져보는 습관을 완전히 잃어버린 나는 이제 무언가에 천착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생각이나 말이라는 것을 하다 보면 자꾸만 샛길로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정신이라는 것을 매어 두지 않은 채 이리저리 떠도는 데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래, 자네는 그렇게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건가?" J가 내게 물었다. 그의 눈동자가 제법 흔들리고 있었다. 술에 취한 나의 머리 역시 쉼없이 흔들거렸다.

 그는 내게 자신이 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것인지, 무엇 때문에 그런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일삼는 것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실은 말이지, 나는 여러 가지 삶을 살아보고 싶었거든.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건 다 헛소리야. 그저 최대한의 다양한 인생을 살아볼 기회를 만들어 보고 싶었던 거야." 이상하게도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역시 그런 꿈을 꾸며 살아가던 때가 있었던 것이다.

 "꿈을 꾸어 주게. 그래야 가끔은 나를 추억해 줄 수 있지 않겠나."


 술을 다 마신 뒤 우리는 밖으로 나가 산책을 조금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른 식이었다. 한사코 술값은 빼고 음식값만 받겠다던 대머리 주인은 제값을 치른 J에게 서운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배웅을 받아 식당을 빠져나왔을 때에는 비를 예고하는 듯한 젖은 바람이 불고 있었다.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향하고 있었다. J는 식당 주인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만 휠체어를 좀 밀어줄 수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 우리는 탑골공원을 돌아서 종묘까지 가기로 했다. 

 종로2가를 건넜을 때, J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휠체어에 앉혔다. 그리고 나서 천천히 밀기 시작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편안함이 거기에 있었다.

 "이봐, 산다는 건 결국 서글픔과 눈을 제대로 마주보고 악수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뿐인 거야. 그렇지?"

 우리는 지중해 다방 앞에서 헤어지기로 했다. 그는 한동안 그곳에서 지내야 할 사정이 있다고 했다. 휠체어를 접어 들고 선 J는 내게 악수를 건넸다. 그의 눈동자가 가로등의 파리한 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마 그 역시 나의 손이 제법 떨리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J와 나 둘 다 더이상 할 말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지중해 다방의 문을 열고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뭔가 할 말을 조급하게 찾아보다 나는 말없이 J를 떠나 보냈다. 처연한 어둠 속으로 사라진 그의 모습을 애타게 좇으며, 뒤따라가 한 번 더 인사와 악수를 건네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도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와 나를 연결해주던 마지막 순간이 낡은 유리문의 재촉과 함께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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