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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Oct 24. 2021

10. 그림자 그림

1.


 아버지가 죽기 전 나에게 해줬던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그것은 그림자에 대한 것이었는데, 아버지 자신은 그것만을 따라다니는 데에 인생을 다 써버린 듯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것이 결국 성공했는지 아닌지를 묻는 일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어떨 때 나는 아버지가 과연 그것을 진정 이루고 싶어했던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의 조부는 어느 날 밤, 시골길을 따라 산책을 나섰다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렇게 실종된 자신의 아버지를 찾기 위하여 이 도시에 저 도시를 어떠한 단서도 없이 돌아다녔다. 그러다 이젠 더 이상 희망이 없겠다는 생각에 좌절한 그는 불효에 대한 죗값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기로 결심했다. 그러던 찰나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이 나의 어머니라는 것이 행인지 불행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러한 일이 일어나 둘은 야반도주를 해 상경했다. 그리고 머잖아 내가 태어났다고 한다. 우리 가족의 역사는 이렇게 요약된다.

 훗날 어머니가 말하길, 아버지에게는 훌륭한 예술가가 될 자질 같은 게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하려 했으나 아버지는 한사코 그 호의와 헌신을 거절한 채로 견습공 목수로서 가정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흔 해 쯤 더 살아가다 아버지는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의 장례식 때 나는 밤을 샜고, 어머니는 그 옆에서 조금씩 울었다. 발인하던 날은 엄청나게 추웠다. 그날에 든 발끝의 저릿함은 오랫동안 계속됐다. 

 아버지가 떠나고 나서도 우리 두 사람의 생활은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다만 일 년에 한 번 아버지의 기일이 되면 저녁 식전 기도가 하나 추가되었을 뿐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비행과 기행에 대해 주워섬기며 그녀의 하나님께 부디 아버지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믿을 구석이라곤 하나 없던 그 가련한 양을 위하여 아량을 베풀어 주기를 기도했다. 나는 아버지가 아직 어딘가에 살아있어 아직 끝나지 않은 심판을 기다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어둑한 방에 길게 늘어선 장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다 이름이 불리면 자리에서 일어나 심판의 방으로 들어가 질문을 받는다.

 "너는 어찌하다 이곳으로 오게 되었느냐?" 힘있고 낮은 목소리가 묻는다.

 "그림자를 따라 들어왔습니다." 아버지는 잔뜩 쉰 목소리로 대답할 것이다.

 이와 같은 상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기도를 마친 어머니를 따라 아멘 하고 나면 말없는 식사가 시작된다.

 어머니가 기억하는 아버지, 아버지가 스스로 말한 자기 자신과 그에 대한 내 기억은 상충되는 부분이 많았다. 기억이라는 것은 본디 왜곡되며 자신의 자리를 외로이 찾아가는 것이라고는 하여도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는 마치 서로 다른 사람과 함께하고 있었던 것처럼 한 사람에 대해 화해할 수 없는 오해와 괴리를 둔 채 이야기했다. 그리하여 추억이란 언제나 실패 뿐인 시도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에도 말이다.

 "달에 취한 인간이었다. 그게 전부다." 어머니는 언젠가부터 오로지 이 말만 반복했다.

 아버지 역시 언젠가는 달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처음은 아마도 내가 아직 달에 가려는 희망을 품고 있었던 때인 것 같다. 그때 아버지는 내게, 달에 가게 되면 그림자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을 했었다. 왜냐고 묻자 그는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달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의 아버지는 이미 몹시 늙어 있었다. 아버지는 대문 밖에 의자를 내어놓고 앉아 저녁 내내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 공기가 많이 차가워요." 나는 그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잠들기 전까지 아버지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때는 이미 거동이 불편해져 거리로 나가 걷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다 한 번은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너, 달빛에 물든 그림자를 본 적이 있느냐?"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2.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한 주 전, 마지막으로 교회에 나갔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오 년, 요양원 신세를 진 지 이 년 만이었다. 어머니와 마주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건강해 보여 다행이라는 말을 건넸다. 어머니는 아마 그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장례식에 온 요양원 직원은, 돌아가시기 한 달 전부터 어머니는 매일 밤마다 울며 홀로 기도를 했다고 말했다.

 아버지 때와 마찬가지로, 어머니 상을 치르는 동안에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단지 입관을 할 때 조금 소름이 돋았다. 가뜩이나 자그마한 어머니였는데 완전히 쪼그라들어 있었던 것이다. 문상을 온 사람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어머니가 이렇게 떠날 줄은 전혀 몰랐다며 비통해 했다. 

 어머니는 잠을 자다 돌아가셨다. 이른 아침, 그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요양원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었는데, 머리맡엔 성경이 놓여 있었다. 평소에 어머니를 잘 돌봐주던 배가 많이 나온 아주머니 하나는 죽은 어머니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 채 방 구석진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눈물을 훔치고 일어나 나의 손을 잡았다.

 "어젯저녁만 해도 밥 한 공기를 다 비우셨는데......" 

 요양원에 들어가고 나서 어머니는 종종, 남이 해 준 밥이라 그런지 아주 맛있다는 말을 하곤 했었다. 아마도 그것 덕분에 조금 더 건강하게 살다 간 것 같다고 말을 해주니 그녀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를 발인할 때 많은 사람들이 와서 위로해 주었다. 그들 중에 낯익은 얼굴이 있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예전에 어머니 소개로 갔던 보험회사 직원이었다. 따로 내게 아는 체를 하진 않았기에 나 역시 간단한 목례로 감사를 표했다.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 목사는 모두를 대표하여 기도를 했다. 그렇게, 예식이 끝나자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갔다. 흐린 하늘, 초가을 부슬비가 내리고 있어 조금 쌀쌀했다. 곧 가을이, 그리고 겨울이 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태어나 처음으로 홀로 맞는 겨울이 끝나갈 즈음, 예전에 다니던 무역회사의 사장이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 사모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는데, 남편의 뜻에 따라 화장 후 발인만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채비를 갖추고 장지로 향하는 차 안에서, 잊고 지냈던 것들이 조금 떠올랐다. 이를테면 매미 울음 가득한 공원에서의 점심이라거나 그의 집 거실에서 내다보던 한여름 노을, 늘씬한 키와 멋지게 어울리던 대머리 그리고 늘 정중하던 말투 따위들이었다. 회사를 그만둘 때 그가 했던 말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그 뒤로 본 적이 없었으니 햇수로 삼사 년 정도였다. 

 그의 아내는 나를 보자마자 눈시울을 붉혔다. 충격 때문인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에 비해 부쩍 수척해 보였다. 그녀는 내게 계속해 무언가를 말하려 입을 벌렸지만 힘에 부쳐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조의를 표했다. 한편으로는 그녀가 나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다.

 "이런 계기로라도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건 어쨌든 좋은 일 아니겠어?" 친하게 지내던 옛 동료 하나는 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는 사장이 나를 많이 좋아했던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발인이 끝나고 그는 내게 다가와, 다 함께 한 잔 하기로 했는데 가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사모는 찾아준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있었다. 한바탕 울고 난 뒤라 더욱 파리해진 얼굴로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이런 일로 뵙게 되어 유감입니다. 제 남편을 대신해 감사와 사과를 전합니다. 다들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녀는 말을 마친 뒤 할 말이 있다며 나를 따로 불렀다. 그러더니 서류 봉투 하나를 건네어 주었다. 

 "이걸 꼭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부디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녀는 허리를 숙였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추측할 수 있었지만 왜 내게 주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 거기에 뭐가 담겨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나의 질문에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모는 그것을 읽어 보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사장의 의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살아계실 때, 남편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나의 질문에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이와 같은 질문을 한 것은 실수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갑자기 몹시 궁금해졌다.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물론 그것이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의 전부는 아니었겠지만 나는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나는 그녀에게 사장이 가장 두려워했던 게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고, 나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몹시 눈부신 날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은빛 하늘에서는 봄을 예감케 하는 따스한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때 나는 다시 한 번 사장의 말을 떠올렸다. 그때 우리는 거기서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서글픔이 밀려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정오의 태양이 나의 발 밑에서 자그맣게 움찔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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