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1 - 가까운 곳에서 찾게 된 보석 같은 우동>
2005년부터 해외출장을 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비행기 타기 전 인천공항내에서 김치우동을 먹는 일이 시작되었고, 매번 해외여행이나 출장을 갈때면 어김없이 김치우동을 먹고 비행기를 타는 습관이 생겼다. 김치우동의 시고 얼큰한 맛은 장을 위로해줄 뿐 아니라 긴장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그 효과가 최장 11일까지도 갔다. 주로 유럽으로 출장을 가면 한국식당은 거의 찾지 않는다. 현지에서는 현지 사람들이 먹는 현지 음식을 먹어야 제대로 느끼고 여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일상생활은 수많은 감춰진 보물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코로나 19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며 살고 있던 일상의 환경을 다시 돌아보고 거기 감춰진 보석들을 찾도록 주문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근무지 근처에서 발견한 김치 우동은 바로 그런 일상생활 속 내 주변에 감춰져 있던 보석이었다. 행복은 결코 먼데 있지 않고 아주 가까운 곳에서 내 눈길과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내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치거나 흘려보내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그 보석 중 하나를 지금부터 소개하고자 한다.
돌 냄비에 팔팔 끓여 나오는 그 첫 모습에 일단 반했다. 팔팔 끓고 있었으므로 숟가락을 서두르지 않고 그 끓는 모양을 감상한다. 그리고 주문한 계란 한 알을 그 끓는 지점 중앙에 살며시 내려놓는다. 계란은 그릇을 미끄럼 타고 김치우동안으로 들어간다. 노른자가 이렇게 이뻐 보인적이 있었나 싶다. 계란은 WHO가 권하는 다섯 가지 완전식품 중 하나다. 완전식품의 조건은 맛과 영양 그리고 가격이 모두 완벽에 가까워야 얻을 수 있는 지위다. 껍데기 11%, 흰자위 58%, 노른자위 31%의 물질로 구성된다.
계란을 탐색해본다. 노른자에 함유된 비타민 D는 칼시페롤이라 불리기도 한다. 칼슘의 흡수를 도와 뼈를 자라게 하는 역할을 한다. 흰자에는 보통 3.5g의 단백질이 들어있는 반면 지방 함유량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근육 형성에 좋은 단백질이다. 노른자에는 콜린이 들어있다. 뇌 속의 신경전달 물질인 아세틸콜린의 분비를 촉진시키는데 아세틸콜린의 분비가 늘어나면 기억력과 근육을 조절하는 능력이 좋아진다고 한다. 노른자에 들어있는 루테인은 눈의 산화와 노화를 막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 흰자를 먹느냐 노른자를 먹느냐는 쓸데없는 번민은 식당 밖으로 던져버리고 즐기면 된다.
나는 첫 숟갈에 담긴 국물 맛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한다. 첫맛이 내게 어떤 신호를 보내느냐가 당장의 내 끼니 해결과 끼니 여행에 있어서 관건인 동시에 좋은 음식을 자주 즐길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그 첫맛 은 또한 주인께서 준비한 맛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첫맛을 느끼는 순간은 조용히 요동치고 감동받고 실망하고 내가 느끼는 감각의 비빔밥을 한 그릇 먹고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첫맛에 반하는 순간, 잡념을 덜어내고 고요한 평화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음 숟갈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는다. 관건은 속도다. 이때 시간은 아주 느리게 천천히 진행된다. 그러니, 더더욱 여유를 갖고 대하면 좋다.
김치우동의 신맛과 얼큰함이 입안에서 출발해 장까지 밀려내려 가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국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우동의 면발은 탱글탱글해서 씹히는 질감이 좋다.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이 탱글탱글함은 지속된다. 우동을 1/3쯤 먹었을 때 젓가락을 돈가스로 돌린다. 겉이 바삭하고 안은 촉촉한 것이 튀김 음식의 매력인데 거기에 소스를 발라 바삭한 느낌을 약간 눌렀음에도 입안에서 바삭함을 느낄 수 있다. 메인 요리가 아니고 김치우동의 부속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군가의 부속품이 되고 싶지 않고 온전히 돈가스로 평가받고 싶다는 말을 내게 거는 것 같다. 김치우동 한 그릇으로 소박한 위로를 받았다. 계산할 때 더더욱 위로를 받는다.
<Round 2 - 축적된 장인의 내공은 단번에 이해하기 어렵다>
식재료는 언제나 같을 수가 없다. 매번 변하는 식재료를 다루면서 일정한 맛의 깊이를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매번 똑같은 메뉴를 주문한다고 해서 같은 맛을 느낄 수는 없다. 어림짐작으로만 비슷한 맛일 거라고 생각한다. 김치라는 음식은 다루기가 쉽지 않은 음식이다. 그 재료로 일정한 맛의 깊이를 국물로 우려낸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얘기다. 가다랑어의 살을 찌고, 건조하고, 발효시켜 만드는 가쓰오부시를 재료로 국물을 우려낸 국물과 김치의 조합은 발표식품들의 조합이다. 발효와 장 건강은 깊은 연관이 있다.
먼저 펄펄 끓어 나오는 김치 우동을 아무것도 섞지 않은 채로 나온 그대로 국물 한 숟가락을 떠서 먹는다. 밖의 날씨가 더운 것과는 상관없이 약간 뜨거운 가운데 깊은 국물 맛에 살짝 취한다. 아쉬우니 한 숟가락 더 떠서 먹는다. 역시 대단한 내공이 느껴진다. 그리고 먼저 계란 토핑을 올린다. 팔팔 끓는 돌 냄비라 계란은 노랗고 맑은 빛깔을 유지한 채 서서히 조금씩 오그라든다. 그렇다고 완전히 익지는 않으니 반숙 전 단계의 계란 맛을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그동안 눈에 띄지 않았던 숙주 한 접시를 주문한다. 베트남 쌀국수의 국물 온도는 적당해서 숙주의 숨이 쉬 가라앉지 않는다. 그런데 이 김치 우동에서는 숨이 죽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로 확연하다. 그리고 거기에 반공기 밥을 말아 완벽한 태세를 갖춘다.
여전히 뜨거운 국물을 식힐 겸 정식에 사이드로 나온 돈가스를 먹는다. 거의 보통 돈가스의 1/3 접시 정도 되는 양인데 양도 만족스럽지만 부드럽고 맛있다. 거친 맛이 없고 안쪽의 고기는 잘 익었으며 튀김옷이 정갈하다. 소스는 적당히 발려져 있어서 달지 않아 좋다. 그리고 밥알이 담긴 국물을 한 술 뜬다. 역시, 김치 우동 국물 맛에 숙주의 맑은 기운이 더해져 지상1층에서 순식간에 3층 높이로 올라온 느낌이다. 가벼우면서도 시원한 맛이다. 그리고 우동과 김치 그리고 숙주를 같이 싸서 계란 노른자를 살짝 묻힌 뒤 먹는다. 여러 가지 맛이 어우러지는 이 느낌은 항상 기분 좋다. 어떻게 먹느냐는 것은 만드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창의적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이전에 맛본 느낌에서 한걸음 도약했다는 만족감이 나를 감싼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바로 나의 곁에 있다. 내가 모를 뿐이다. 그 작은 행복을 발견하고 즐기는 시간들에 감사할 따름이다.
<Round 3 - 김치 우동에서 겨우 벗어나다>
유부 우동은 가쓰오부시 국물 맛을 베이스로 하되, 기름지지 않고 담백한 유부가 적절히 섞여 있다. 여기에 숙주를 국물 바닥으로 내려보내 숨을 죽인다. 잠시 뒤 숙주의 옅은 맛이 가세해서 깔끔하고 담백한 유부우동맛을 볼 수 있었다. 둘이 먹는 와중에 사이드 메뉴로 시킨 때문인지 그 맛을 완전히 내 것으로 끌어당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들무렵 해물 가락국수가 나왔다.
지난 4년간 단 한 번도 김치우동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오늘은 아내와 같이 점심을 먹느라 같이 먹을 요량으로 해물 우동을 주문했다. 그만큼 김치우동의 매력은 강력하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역시 메인이 아니라는 생각에서인지 좀 더 먼발치에서 맛을 음미하는 느낌이다. 그래도 강력하다. 김치의 신맛이 옅게 깔리고 그 위에 김치의 단맛과 가쓰오부시 국물 맛이 같이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메인인 해물우동을 먹기 위해 사전 준비를 한다. 우순 숙주를 왕창 넣고 면을 위로 올리는 간단치 않은 작업을 먼저 한다. 숨이 죽은 숙주의 맛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계란 토핑을 올려놓는다. 돌 냄비가 쉬 식지않으니 계란이 익어가는 것을 볼 수 있어 눈이 즐겁고 눈이 즐거우니 당연히 식감도 좋으리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렇게 세팅을 한 뒤 먼저 국물을 한 술 떠서 그 맛을 음미한다. 한 술의 국물은 식사를 하는 동안 경건한 의식을 거행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주인장의 내공과 오늘의 컨디션, 식재료의 신선함이 같이 녹아든 결정판이므로 그 한 술을 음미하는 절차는 대단히 중요하다.
국물은 김치 우동과 달리 약간 가벼우면서도 옅은 맛이로되, 바지락과 홍합과 오징어 등 해물들이 녹아있는 맛이 한꺼번에 들어온다. 재료를 확인하지 않는 이상 그 맛들을 세세하게 구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뭐 음식 평론을 할 건 아니니까 그렇게 세세하게 알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과 그래도 맛을 최대한 깊고 넓게 음미하는 것이 일상생활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교차한다. 숨이 죽은 숙주와 우동과 계란 노른자를 버무려 한 입 먹는다. 왜 그동안은 이 숙주라는 메뉴를 빨리 발견하지 못했을까?라는 탄식이 입에서 절로 나온다. 확증편향은 나를 바보로 만들기에 충분하다는 새삼스런 생각을 이 식당에서 하게 되다니.
먹는 즐거움은 섞어 먹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기호가 다르겠지만 식재료라는 밑그림에 가게 주인의 솜씨와 양념재료들이 뒤섞여 나온 음식을 다시 종합해서 입안으로 들여보내는 느낌이다. 나는 그 덧칠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홍어삼합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섞어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리고 상상하나 덧붙인다. 사람도 이렇게 서로 각자의 길을 가지 말고 서로 융합이 된다면 좀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라는 상상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 역시 어디 먼 별에 가서 의미를 찾을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지금의 일상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한 끼니 잠시 여행하는 것은 그러므로 결코 가벼이 다룰 수 있는 주제가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것도 이렇게 뜻밖의 음식 자산을 바로 내 주변에서 발견하게 되는 일은 마냥 행복한 일이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Micro Biome의 세계에서 다루는 중심주제는 장건강이다. 인체 건강의 절대적인 부분을 장내 나의 세포와 장내 미생물간의 상호작용에 방점을 두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면역의 중요성과 그 면역의 절대적인 부분을 장이 담당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하나씩 깨달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장건강에 도움이 되는 유익균과 유산균이 담긴 김치의 효능에 대해서도 조금씩 공부하고 맛으로 몸으로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다. 다음에는 다시 김치우동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햇볕이 쏟아지는 거리로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