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저녁 약속은 급격하게 줄었다. 그 덕분에 일주일에 두세 번 하던 계단 오르기를 거의 매일 꾸준히 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로 인해 몸을 단련하게 되었다. 여기서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저기서도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이 대개는 같이 온다.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냐에 따라 삶의 태도는 달라진다. 대학 재학 중 고향집에 불편한 일이 가끔 생겨 마음의 상처가 났을 때, 학번 동기지만 7년 인생을 더 살아온 선배는 "희망적인 상황과 절망적인 상황은 거의 대부분 같은 비율로 오는데 사람들은 불행이나 절망적인 상황에 무게를 두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하다"라고 위로를 했다.
내가 마주하는 상황 앞에서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조언은 대개 무력하다. 그렇지만, 그 상황이 지나고 곰곰이 생각해보고 되새겨보면 볼수록 그 선배의 말에 가까이 가있음을 지난 30여 년의 세월 속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확인해왔다. 내가 상황을 대하는 태도를 바꿀 수 있다면 어떤 상황도 나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확신을 갖기는 어렵다. 삶이 그렇게 단순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친한 동료와 후배들이 사업상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저며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뭔가 해줄 수 없는 무력감 앞에 서면 작은 위로의 말도 건네기가 두렵다. 병원에 계신 어머님 면회를 다녀온지도 아득하다.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일을 하는 것도 답답하다. 다른 한편 모임을 점점 생략하게 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더 늘어나고 있다. 매일매일의 계단 오르기는 묵언 수행자로 만들고 있다. 신체적으로 단련되는 동시에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힘도 성장하고 있다.
파란 가을 하늘이 왜 높은지 봤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30년 전에도 대기의 질은 작년과 비교해서 더 좋지 않았다고 한다. 코로나는 높고 깊은 가을 하늘을 선물로 주었다. 더불어 맑고 짙은 구름을 한 아름 매일매일 오전과 오후로 선물하고 있다. 이제는 사진을 더 이상 찍지 않는다. 그 순간을 놓칠까 봐 사진을 찍었는데 이제는 일상적으로 아름다운 구름과 파란 하늘을 매일매일 볼 수 있으므로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된다. 스위스와 노르웨이와 핀란드에서 보았던 그 구름들이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우리 하늘에 출연하고 있다.
오래간만에 동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느라 어제 계단 오르기를 생략했다. 오늘은 친구와 후배가 잠시 차 한잔을 하자고 연락이 왔다.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저녁만 먹고 늦더라도 같이 계단운동을 하자고 약속했다. 요즘 들어 아내는 잠귀가 얕고 예민하다. 특히 계단 오르기를 하지 않은 날은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고 쉽게 깬다. 대학을 졸업하고 백수로 지내던 2년 8개월 동안(물론 부모님께는 언론사 공부를 한다고 핑계를 댔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지속되는 허리 통증 등으로 불면의 밤을 보낸 날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쉽게 깨는 그 고통에 완전히 가 닿을 수는 없지만 완전히 공감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같이 계단을 오르며 신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그 에너지가 깊은 잠으로 이끌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다.
8시 30분이 되어 과감히 친구들에게 안녕을 말하고 집으로 돌아와 같이 계단을 오른다. 9시가 넘어서 귀가하자 아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신경과학자이자 수면 전문가인 매슈 워커는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 수면과 꿈의 과학>에서 "잠을 충분히 자면,.... 장내 미생물들이 번성할 수 있다. 잠을 충분히 자면 혈압이 낮아지고 심장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므로, 잠은 심혈관계의 건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라고 했다. 특히 그는 뇌파의 움직임을 통해 감지되는 다양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아내가 잠을 쉽게 깨는 이유 중 하나는 무엇일까? 매슈 워커에 따르면 수면 방추(sleep spindle)는 깊은 수면의 한가운데 등장하는데 여러 기능 중 야간 보초병처럼 외부 소음을 못 듣게 뇌를 가림으로써 잠을 보호한다고 한다. 아내의 수면을 방해하는 원인이 어쩌면 저 수면방추 일거라고 추정한다. 계단을 오르는 날은 깊은 잠을 잘 수 있다고 하니 아마도 계단 오르기가 수면방추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본다.
매슈 워커의 메시지들을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잠이 기억력과 인지능력, 감정적 상처에 대한 치유, 창의적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과 잠이 부족할 때(물론 깊은 수면, 질 높은 수면이 낮아질 때) 암을 비롯한 대부분의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고, 뇌 건강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리스 사모스 현의 이카리아 섬처럼 시에스타가 온전히 남아있는 작은 외딴 지역들의 주민들이 미국인 남성들보다 90세까지 살 확률이 거의 4배에 달한다는 매슈 워커의 메시지는 잠이 사람의 생명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그는 설명한다.
운동을 하고자 하는 나의 의지와 그냥 쉬자는 내 몸의 반응 사이에서 의지를 선택한 나를 몸이 밀어냈지만, 세 번째 세트를 마칠 무렵 내 몸이 나의 의지의 요청을 수락하며 타협하는 모양새다. 그리고 다시 몸이 의지에게 적당한 지점에서 관둘 것을 요청한다. 역시 수락한다. 의지와 몸과 적당한 지점에서 타협하는 것은 긴 인생을 놓고 보면 아주 현명한 방향이다. 2000년에 마라톤 풀코스를 처음 완주할 때는 나의 의지가 내 몸과는 상관없이 목표 달성을 강요했다. 2주 가까이 현실을 무시한 의지의 강요 덕분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기에 적당한 신체적 조건이 아니었으며, 마라톤이라는 운동을 취미로 지속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척추 디스크와 평발. 그럼에도 나는 내 몸상태와 상관없는 길로 나의 의지를 불태웠다.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그런 바보 같은 결정은 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덧 일곱 세트를 하고 나서 쳐다보니 아내의 얼굴에 약간의 성취감과 안도감이 땀에 비친다. 계단 오르기가 잠을 잘 자게 하는지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적당한 시간대가 아니라 오히려 늦은 시간에 운동을 하게 되면 깊은 수면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신체활동을 통해 몸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에너지가 생성된다는 느낌만큼은 확실하다. 그리고 약간의 과학적 근거도 찾았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나 신체가 작동하고 있는 원리를 모두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100조 이상의 세포들이 자라고 작동하는 원리를 어떻게 알고 느낄 수 있는가? 다만, 나는 계단을 오르며 나의 몸과 생각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관찰의 시간을 갖고 관찰의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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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ETH) 인간 운동과학 및 스포츠연구소 연구진은 관련 주제에 관한 문헌을 샅샅이 뒤져 운동과 수면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23개의 논문을 분석했다. 그리고 잠들기 4시간 전에 하는 운동은 수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ETH 운동생리학연구소 크리스티나 스펭글러 소장은 “저녁에 운동을 하는 것이 수면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면 그것은 긍정적인 효과가 약간 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다른 연구들의 데이터들을 메타 분석한 결과 밤에 운동을 한 다음 잠든 실험 참가자들의 21.2%는 깊은 수면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 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숙면을 취한 비율은 19.9% 정도로 나타났다. 깊은 수면은 신체기능 회복에 매우 중요한 만큼 둘 사이의 차이는 작지만 통계적으로는 유의미하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다만, 잠자기 1시간 이내에 하는 운동은 숙면을 방해할 수 있다고 한다. (불면과 상관없는 저녁 운동, 스위스 연방 공과대학 ETH/EPFL /베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