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시간을 돌이켜 보면,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밖을 나설 때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망설여지는 순간을 되풀이했다. 셔츠는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하고 겨우 박스 남방으로 앞가림을 했었다. 어떤 사람이건 자신의 몸을 제대로 돌보거나 관리하지 않으면 곧바로 그 자신의 몸과 몸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보디빌딩을 하는 아들이 자신의 스케줄에 맞춰 운동을 하고 몸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그리고 그가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왜 나는 젊은 시절에 몸을 관리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래도 늦게나마 이런 깨달음으로 계단 오르기를 실천하니 다행이라는 생각과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계단을 오르는 중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이웃들은 조용히 눈길을 주고받는다. 자신들은 그냥 여기에 살 것인데 왜 당신들은 하루 이틀을 머다 하고 이렇게 곧바로 실천하는지를 단지 표정과 눈으로 물어본다. 내 눈길의 대답은 항상 똑같다. 다이어트를 하려면 적게 먹으면 된다고. 그러면 운동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시면 몸과 마음의 균형을 위해서라고. 이런 걸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계단 오르기의 다이어트 효과는 당연히 있다.
계단 오르기를 통해 나는 몸의 균형이라는 관점에서 엄청난 성과를 이루었다. 타인의 시선을 빌리지 않더라도 스스로 거울을 보면 알 수 있다. 매일 샤워를 하면서 유심히 관찰해보면 특히 복부와 엉덩이 쪽으로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곧 나에 대한 자신감으로 올라간다. 옷을 고르는 기준과 색깔도 점점 달라지고 있다. 좀 더 과감한 색감과 좀 더 몸과의 거리가 가까운 옷을 선택하게 된다. 그래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옷을 입는 일이 즐겁다. 색깔별로 티셔츠를 골라 입는 재미도 아침 출근 발길을 가볍게 한다.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은 완전히 잘생긴 모습이다. 거의 매일 땀을 배출하니 계단 오르기는 얼굴 피부에도 영향을 미친다. 여름에는 스킨을 바르지 않고 출근한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피부가 촉촉하다. 피부 세포의 사멸과 재생주기가 적어도 3일에서 1주일 정도이고 보면 분명 피부 세포 재생에도 뭔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잘생겼다고 착각할 만큼만 자신감이 솟아있음을 느낀다. 나에 대한 자신감을 느낀다는 것, 그 자신감 안에서 교만하지 않고 뭔가 새로운 일을 도모한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이제는 완연한 가을이다. 선선한 바람과 코끝을 자극하는 신선한 공기가 제대로 된 가을이 왔음을 알려준다. 첫 세트를 마치고 나니 어제와는 정반대다. 어제는 내가 너무 힘들어해서 스타일 구기면서 질질 끌고 올라갔는데 오늘은 아내가 힘들어한다. 나는 발걸음이 너무너무 가볍다. 속도 차이도 제법 난다. 어제는 바로 뒤따라오던 아내가 오늘은 저만큼 처져서 올라온다. 그런데, 계단 오르기의 매력에 1년 넘게 빠진 아내도 절대 바로 그만두려 하지 않는다. 직장을 다니는 나만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아내가 살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도자기 작가로 작품 활동을 하고, 수강생들을 가르치고, 실습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고통이 뒤따라 오면서 스트레스를 뿌릴 것이다.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이 계단 오르기임을 아내도 알고 있다. 그리고 운동하고 난 뒤의 상쾌한 몸의 기분을 알기에 힘들더라도 올라간다.
저 계단들은 어제 내가 밟고 올라간 계단이다. 그런데 오늘은 완전히 새로운 계단인 것처럼 착각이 든다. 짧은 시간이지만 나는 계단을 여행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계단들이 새롭게 보이고 새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일들을 이렇게 새롭게 하게 된다. 어제와 같은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모험이고 여행이다. 계단 오르기는 매일매일 새로운 느낌과 영향을 내 몸과 마음에 미친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뭉기적 거리지만 막상 출발을 하고 나면 마칠 때까지 완전히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 그 세계를 여행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몸과 마음 모두 재충전되어있음을 실감한다. 오늘도 그런 날이다.
(188층)
바쁜 일상 속에서 서로 인사하는 말이 '바쁘냐?'이고, 어이없게도 그 대답들이 대부분 '바쁘다'이다. 무엇 때문에 바쁜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바쁘다고 물어보고 바쁘다고 대답한다. 내가 별로 바쁘지 않다고 대답하기 시작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이다. 남들과 같은 대답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싫었다. 그래서 별로 바쁘지 않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 대답이 곧 내 삶을 대하는 방식이 느긋해졌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도 일단 생기면 스케줄을 만들고 사람들을 만나고, 여기저기 다녔다. 코로나는 분주한 나의 일상을 바꿔놓았다. 아주 특별하고 중요한 일정이 아니면 스케줄을 잡지 않으려 한다.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을 줄여야겠다는 의도도 있지만 정말로 그 일정이 그 시점에서 나의 삶을 변화시킬 정도로 중요한 것인지 되물어보게 된다. 그렇게 두세 번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아니라는 대답이 나올 때가 더러 있다.
계단 오르기는 느긋하지 않으면 적응하기 쉽지 않은 운동이다. 빠른 걸음으로는 오래 지속할 수 없고 근육과 호흡에 무리가 간다. 느긋하게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는 것은 지루하다. 그래서 처음 운동을 시작하던 작년 초에는 랩타임까지 체크하며 계단을 올랐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왜 이렇게 분주하게 움직이는가라고 자문하게 되었다. 나를 위한 운동을 하는 지금 이 순간조차 나 자신을 바쁘게 몰아붙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뚜렷한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조급한 마음을 깔고 계단을 오르는 것이 조금씩 내 몸에 무리를 주었다. 그때부터 느긋하게 한 걸음씩 올라가게 되었다.
문을 나서는 순간 반바지와 긴바지 사이에서 갈등한다. 긴팔은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창문을 여니 왕바람이 훅 들어온다. 계단 창문을 조금씩만 열어둔다. 네 세트가 되어서야 땀수건을 꺼냈다. 가을의 한가운데에 와있다. 느긋하게 한 걸음 한걸음 위로 향한다. 계단을 오르며 갖게 된 느긋한 발걸음은 나의 일상으로 전염되었다. 이전에는 어디를 가나 늘 속보로 걸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운동이 되기도 하고, 꼭 시간 맞춰 가느라고 아슬아슬하게 목표지점에 가기 때문에 늘 속보로 걸었다. 그런데 계단 오르기가 익숙해지고 나서는 느긋하면서도 단단한 걸음걸이로 걷게 되었다. 느긋해야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 느긋하게 한 걸음씩 오르되 어깨를 펴고 하체를 단단히 자세를 잡으며 걷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내 몸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느긋함은 의외의 결과를 나에게 주었다. 느긋함 속에 나의 품위가 높아지고 자존감을 고양시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곧장 시간에 대해서도 습관이 바뀌었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정도 일찍 도착하도록 출발하면 느긋함을 유지하고 주변 풍경들도 구경하고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도 관찰하면서 갈 수 있다. 무엇보다 느긋한 걸음걸이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나의 품위를 순간적으로 알아차린다. 나의 존재가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나를 만들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느긋함은 나를 멋지고 품위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말할 때에도 가쁜 호흡을 내쉬며 말을 하던 습관이 개선되었다. 느긋함이 바탕이 된 나의 말을 내가 들을 기회가 있었다. 듣기에도 좋았다. 한 호흡 느긋하게 말을 하는 것은 내 말을 듣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 말에 더 귀를 기울이게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일곱 세트를 마무리한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무엇을 찾고 어디를 지향하고 있는지 지금 내가 자각하지 않으면 내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를 자각하고 나를 알아채는 바로 그 지점에 필요한 덕목이 느긋함이다. 여유를 갖고 세상을 대하면 세상은 나를 조급하게 다그치지 않고 천천히 세상이 내게 요구하는 것을 말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느긋하게 그 요구사항을 살펴보고 합당한 기여를 할 방도를 찾는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느긋하게 품위 있게.
(147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