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디자인을 쓰려거든 심리학으로 쓰세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꽃, 김춘수
제품, 서비스, 공간, 브랜드, 어떤 경험이 됐든, 결국은 참여자(소비자)와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기고 삶 속에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참여자가 의미를 부여하면, 경험은 참여자의 삶 속에 존재할 자리를 얻는다. 이름 없는 하나의 몸짓이 이름이 불리우자 꽃이 된 것처럼.
경험 제공자인 당신이 아니라, 당신이 제공하는 경험이 참여자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 알아야 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그 두 개가 분리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의 경험은 참여자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 것인가. 그리고 그로 인해서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첫 글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머그잔이라는 개념과 '당신의 머그잔'이 다를 수 있는 것은 당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바로 그' 머그잔이기 때문이다.
지각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자극에 노출된다. 그중 경험이 되고 기억에 남는 자극은 나와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은 요소들이다. 건너지 않은 횡단보도의 신호등은 당신과 아무런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당신과 어깨를 부딪힌 '지나가던 행인 A'는 당신의 경험이 되고, 삶 속에 들어와, 기억 속에 자리를 차지한다. 만일 그 행인 A로 인해 당신의 휴대폰 액정이 깨졌다면? 더 깊은 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더 많은 정서를 느낄 것이고, 더 오래 기억된다. 경험은 이렇게 삶 속으로 들어간다. 긍정적인 경험이든, 부정적인 경험이든, 긍정과 부정의 꼬리표가 붙기 위해서는 먼저 관계가 맺어져야 한다. 의미가 부여되면 관계가 맺어진다.
첫 장에서 심리학을 다룬 것은 참여자에게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관계를 맺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심리학은 기술이 아니다. (관련 글: 심리학 그거 배우면 얼마나 벌어?) 제 아무리 값비싼 선물이라도, 진정성이 담긴 선물보다 귀할 수는 없다. 당신의 경험과 관계를 맺게 되는 대상은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특정한 개인'이어야 한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길은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는 길이다. 모두가 마음에 들어 하는 선물은 없다. 있다면 그것은 감동을 줄 수 없는 선물이다.
깊은 관계를 맺고 싶다면 스킬보다는 진정성이다. 나를 위해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선물이 가장 감동을 줄 수 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손 편지의 위상은 죽지 않았다. 대상을 생각하지 않고는 편지를 쓸 수 없다. 손으로 꾹꾹 눌러 담은 글자마다 마음이 담긴다. 가장 훌륭한 선물은 '생각하는 마음'인 것이다. 당신이 제공하는 경험도 그래야 한다.
심리학은 어디까지나 진정성을 전달하기 위한 보조수단이다. 그러나 가끔은 세련된 전달 방식이 필요한 경우가 생긴다. 진심을 잘못 전달하여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흔하다. 이야기를 조금 더 듣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있다.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주의 깊게 관찰하고, 깊이 파악해야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너'와 친해지고 싶다는 신호는 가장 강력한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심리학에 대해 알아야 한다. 당신이 제공하는 경험이라는 선물을 받는 대상에 대해 알기 위해.
콘텐츠와 전달 방식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전달 방식이 아무리 훌륭해도 진심이 없는 콘텐츠는 본능적으로 알아챌 수 있다. 진심이 담긴 선물도 대충 전달하게 되면 빛바래고 퇴색된다. 오히려 둘은 상호보완에 가깝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 당신의 진정성, 그리고 그것을 소중히 전달하려는 의도가 담긴다면 절반 이상은 성공한 경험 디자인이 될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건데?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글부터 이어나가 보려 한다.
위 글은 책 <당신의 경험을 사겠습니다>의 초고입니다. 책이 출간되면서 일부 내용이 삭제되었습니다.
전체 내용은 책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