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기억은 관찰일지가 아니다.

by 기획자 에딧쓴

"오래전 에버랜드에 갔던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당신이 4살 때 일이에요." 기억이 날듯 말 듯하다. 그러자 질문자는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당신은 놀이공원에 간 적이 있었다.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먹다가 옷에 흘렸고, 다른 한 손에는 둥둥 떠다니는 헬륨 풍선이 들려있었다. 그렇게 아이스크림 자국을 입가와 옷에 묻힌 채, 별로 귀여워 보이지 않는 판다 인형탈과 사진을 찍었다. '그랬었나..?' 망설이는 와중에, 앞에 앉은 사람이 털어놓는다. "사실 당신의 어머니께 미리 전해 들었어요." 그리고 웃으며 사진 한 장을 보여준다. 사진 속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을 한 꼬마가 판다 인형탈 옆에서 멋쩍게 웃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제야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당신은 사진 속 그날, 놀이공원에 있었다. 그렇다고 믿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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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객관적인 사실의 기록이 아니다.


없는 사실도 기억으로 만들어질 수 있고, 같은 사건도 다르게 기억될 수 있다. 위 실험에서는 심지어 존재하지도 않았던 부서진 유리파편을 보았다는 증언도 나왔다고 한다. 인간의 기억은 정확한 사실, 객관적인 정보의 저장이 아니다. 그것은 주관적이고, 의도적이며, 불완전하다. 이것은 범죄심리학 중에서도 수사 심리분야의 주요 관심사이기도 하다. 목격자의 증언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전의 글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인간은 지각한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필요한 정보를 선택적으로 기억한다.




당신이 기획한 경험은 모든 참여자에게 동일하게 기억되지 않는다. 완전히 동일한 경험을 제공하더라도 다르게 기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고 한 것이다. 만족시키고 싶은 주요 타깃, 대상 참여자를 선택했다면 다음은 기억의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참여자들에게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인가.


참여자들은 어떤 기억을 가져갈 것인가.


주의해야 할 것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참여자 본인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기획자가 아무리 큰 의미를 부여했어도 그것은 참여자의 경험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참여자는 일방적으로 자극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주체가 아니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경험에 뛰어든 참여자는, 경험의 요소들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게 의미 부여된 대상에 대해 부호화가 일어나고, 그것은 참여자의 일화기억(episodic memory)이 된다.(일화기억과 의미기억에 대한 글: 가장 맛있는 붕어빵, 가장 맛있었던 붕어빵)


당신이 기획하는 경험을 잘게 쪼개어, 작업기억 수준에서 머물렀다가 갈 요소, 부호화시킬 요소들을 먼저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참여자가 가장 오래 가져갈 기억이 될 것들을 배치하고, 유도해야 한다. 그것은 브랜드에 대한 기억이 될 수도, 공간에 대한 추억이 될 수도 있다.





떠올리기 쉬운 경험이 오래 기억된다.


맥락은 기억의 인출단서가 되어준다. 기억을 떠올리기 쉽게 해 준다. 첨단기술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시리즈물 블랙미러에는 한 보험사 직원이 목격자들의 기억을 수집하는 장면이 나온다. 보험사 직원은 기억을 떠올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맥주병을 건넨다. 그리고 맥주를 마시려는 목격자에게, '마실 필요는 없고 냄새만 맡으면 된다'라고 일러준다. 당시 사고가 발생한 장소에서 그 맥주 냄새가 거리를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맥주 냄새는 사고 기억의 인출단서가 되어, 사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기 쉽게 해 준다.


일화기억은 다양한 맥락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인출단서가 많은 경험은 더 떠올리기가 쉽다. 그리고 떠올리기 쉬운 경험들은 계속해서 반복 학습된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강하게 각인되고, 오래 기억된다. 당신이 제공하는 경험에는 어떤 맥락들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그것은 경험의 기저선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기억은 관찰일지가 아니다. 특히, 일화기억은 관찰과 함께 다양한 맥락이 연합된 정보의 집합체이다. 그리고 가장 훌륭한 인출단서가 되어주는 맥락은 바로 '정서'다. 눈치챘는가? 다음 장의 주제도 바로 이 녀석이다.



위 글은 책 <당신의 경험을 사겠습니다>의 초고입니다. 책이 출간되면서 일부 내용이 삭제되었습니다.

전체 내용은 책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책으로 나오게 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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