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디자인의 제1원칙. 언제나 지구를 향하라.
이전까지의 글은 인간중심의 경험디자인을 위한 준비에 해당한다. 이번 글부터는 '그래서 어떻게?'에 해당한다. 물론 정답은 없다. 만능열쇠도 없다. 그러나 기본적인 원리를 알면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 문제 해결은 '문제정의'와 '솔루션 제공'이라는 두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정의는 별도의 매거진을 통해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는 솔루션 제공을 위한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것이다. 앞으로 다룰 가이드라인은 일반론에 해당한다. 개별 사례에 대한 적용은 기획을 맡게 된 당신의 역량에 달려있다.
참여자가 경험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심리학적인 원리를 기억하는가? 참여자는 당신이 기획하는 모든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경험의 기저선을 설정하기로 했다. 기저선을 설정했다면 그 강도에 맞는 중심 메시지를 도출해야 한다. 당신이 만들고자 하는 경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 당신의 서비스, 상품, 공간, 브랜드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 하나만큼은 가져갔으면 하는 것. 그것이 당신의 중심 메시지가 된다.
경험 디자인 HX를 적용하여 카페라는 공간을 기획해보자. 중심 메시지는 휴식으로 정했다. 카페 이름(브랜드 네임)과 로고를 만들었다. 브랜드 컬러를 정하고 간판을 만들었다. 컵에 로고를 새겼다. 여기서 그치면 곤란하다. 참여자가 카페를 경험하면서 휴식이라는 메시지를 전달받고 그 경험에 참여시키려면 더 많은 반복이 필요하다. 바닥시공 소재, 원목 인테리어, 조명, 가구의 높이, 층고, 개방감, 화장실 인테리어와 휴지통, 모든 요소가 휴식을 이야기해야 한다. 지겹도록 반복하면 들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지겹도록 반복하여 훌륭한 휴식 경험을 선물하는 카페가 송리단길에 있다. 음료를 주문하러 주문대에 서면 친절한 직원이 여러 종류의 차에 대해 설명해주고, 추천해준다. 주문을 마치고 받은 진동벨에는 크래프트지로 만든 스티커가 붙어있다. 스윽슥거리는 재질을 손 끝에 전달하는 진동벨에는 '뷰클랜드의 시간은 천천히 흐릅니다'라고 적혀있다. 주문한 커피와 함께 나온 자그마한 카드에는 헤르만 헤세의 문장이 적혀있다. 온라인 채널 역시 브랜딩이 잘 되어 있지만, 뷰클런즈의 진가는 오프라인 경험을 통해 다가온다.(뷰클런즈 인스타그램: @swedencoffee_bjorklunds)
그렇다면, 누락은?
휴식을 전하기로 했다면, 나머지는 과감히 버리자. 요즘 유행하는 조명이 세워진 포토존, 유행하고 있는 흑임자 음료, 북유럽식 인테리어. 중심 메시지와 관련이 없다면 모두 누락시키자. 전달하는 것은 한 가지로 족하다. 브랜드도, 카피도, 공간도,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디자인하는 모든 경험은 단 하나의 축으로 관통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심리학 파트에서 설명했듯이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렇게 정제된 경험에서야 비로소 당신의 중심 메시지는 킬링 포인트가 된다. 그렇게, 브랜드가 만들어진다.
당신이 참여자(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경험은 달의 앞면과 같다. 달은 자전주기와 공전 주기가 같기 때문에, 지구에 사는 우리는 언제나 달의 같은 면만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지구와 달은 팔을 마주 잡고 빙글빙글 도는 춤을 추고 있다. 우리에게 보이는 달의 표면은 늘 일정한 부분이다. 우리는 그것을 달의 앞면으로 칭한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며 우주공간을 내달리는 동안, 달은 동일한 속도로 지구를 따라가며 늘 같은 면을 지구에게 비춘다.
당신의 서비스, 상품, 브랜드, 당신이 제공하는 모든 경험은 소비자에게 노출되는 지점을 필요로 한다. 노출되는 그 부분의 시간이 소비자와 동일하게 흐를 때, 소비자는 참여자가 된다. 당신이 디자인하는 모든 경험은 오로지 참여자를 향해야 한다. 계속해서 바라보고, 어디에 있든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달의 앞면이 지구를 향하듯, 당신의 경험은 참여자 단 한 사람을 향해야 한다. 이것을 <지향점>이라고 한다.
지향점을 향한 일관성에 집착할수록 견고한 브랜드가 완성된다. 브랜드의 메인 슬로건부터 고객센터의 안내멘트까지 한 곳을 향해있어야, 경험의 브랜드가 진정성 있게 느껴진다. 심지어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얼마나 공손하고 얼마나 친절하냐 보다, 얼마나 일관적이냐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 UX 라이팅의 부상이 그것을 방증한다. 이제 소비자를 만나는 지점에서 사용하는 문장은 맞춤법이 맞고 공손하기만 해서는 부족하다. 쉽고, 친절하고, 무엇보다 보이스 앤 톤이 일관적이어야 한다.
달의 앞면에서는 중복과 누락을 허용하자.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물론, 달의 뒷면에서는 중복과 누락이 없어야 한다. 기획의 과정은 달의 뒷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을 달의 앞면까지 들고 나오지 말자. 달의 앞면이 무대라면 달의 뒷면은 백스테이지에 해당한다. 프론트엔드와 백엔드의 관계도 유사하다. 기획자는 뒷면에서 일하자. 그리고 앞면은 언제나, 지구를 향하라.
위 글은 책 <당신의 경험을 사겠습니다>의 초고입니다. 책이 출간되면서 일부 내용이 삭제되었습니다.
전체 내용은 책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