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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을 정리하려고 들고 나온 노트북에 어딘지 모를 망설임이 남아있습니다. 그게 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다만, 아득히 먼 감정이 바람을 타며 남긴 잔상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어느 한 공간, 어느 한 시간에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이 망설임은 오롯이 남아있습니다. 어딘가에. 그리고 모를 어딘가에 조용히.
"이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라고 생각하실 것 같아, 서둘러 필름을 열어 그 안에 담긴 오사카의 색감을 보았습니다. 유달리 한적했던 오사카에, 지난날의 색감이 담긴 것 같은 착각은 아무래도 그 망설임과도 연관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아무쪼록 고민이 많은 오늘, 그 고민이 이 필름에는 담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글을 씁니다.
[오사카 ; Osaka] Ricoh + Fuji 35mm negative film
[a. 오사카의 한 도로, 멀리서 담은 그 구도에는 별다른 특별함은 없지만 한 명의 타인으로서 본 그 도로에는 나름의 애정이 담겨있습니다. 처음으로 가 본 낯선 장소에 대한 설렘이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b. 누군가에게 꽃은 선물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좋은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건 아무래도 이 꽃을 받을 사람에게 그날, 그 하루의 특별함을 주는 것만 같은 마음입니다. 꽃을 고르는 그 마음에도 그리고 주기까지 걸어가는 그 시간에도 하루의 특별함을 선물한다는 그런 애정이 담겨있습니다.]
[c. 한적한 도로에는 다양한 색감이 담겨있습니다. 세월을 말하는 그 시간도, 누군가의 발걸음이 남기는 그 흔적도.]
[d. 일본 (이번의 경우에는 오사카이지만)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골목길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도쿄와 같은 메트로 도시가 주는 느낌보다 더 일본에 알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던과 클래식의 경계점과 같은.]
[e. 오사카에서 조금 나오면 "나라"라는 곳에 갈 수가 있는데, 여기에 가는 100%의 목적은 아마도 "사슴"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귀엽기도 하지만 흔하게 볼 수 없는 야생의 동물은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합니다.]
[f. 순하게 생긴 모습이 "사슴"이라는 이름과도 너무 잘 어울립니다. 이런 얼굴에 "호랑이"나 "사자"와 같은 이름이 붙였더라면 조금 어색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만큼 귀엽게 생겼습니다.]
[g. 아마 "오사카"를 지나 그리고 "나라"도 지나 "교토"로 갔을 때, 찍은 사진인데 붉은 색감의 신사와 달이 슬금슬금 그 빛을 발하려고 하는 시간대와 너무나 잘 맞아서 찍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색감 그 자체로 인상 깊었습니다.]
[h. 신사의 위에서 바라본 석양이 내리는 하늘, "교토"는 한국의 경주와 비슷한 곳인데 조용한 그 경치에는 이런 감성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지 않을까 합니다. 뭔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석양에도 그 애틋함이 담겨있듯이.]
[i. 야경, 필름 카메라로 밤을 담을 때면 아직도 굉장히 어렵습니다. 빛의 양을 조절하는 조리개와 셔터의 스피드를 조절해야 하는데 빛이 부족한 상태에서 이 두 가지 변수를 조절하기가 참 난감합니다. 그걸 다루는 순간이 언제가 찾아오길 내심 바라지만요.]
"지난날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남아있을까?"
라는 물음이 갑자기 생각납니다. 글을 쓰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이 물음은 제가 느낀 망설임과 그 결을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아름다움이 조금 다른 기억으로 남아있더라도 혹은 바람을 따라 타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잔상일지라도 분명히 어딘가에는 고스란히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럴 거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 기억은 조용히 숨어있다가 다시 떠오르고, 언젠가 다시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혹여, 지난날의 아름다움은 기억의 오류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스스로가 만든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아름답지 않았던 것인데 아름답다고, 아름다웠다고 믿어버린 것. 그 이상과 그 이하도 아닌 것. 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아름다웠다고 믿어버린 그 사실로도 이는 명확한 것 같습니다.
그때는 적어도 아름다웠다. 딱 그만큼의 사실입니다. 다시 돌아가도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때의 그 마음을 찾아보기 위해 사진을 뒤져보고 문자를 보고 때로는 달력을 열어봐도 적절하게 남아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이럴 때면 조금은 답답합니다. 찾아보려는 그 노력에도 쉽게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어딘가에는 남아있을 것임을 분명히 실감하기에, 잠시의 망설임은 뒤로하고 그 궤적을 열심히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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