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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왼손잡이앤 Jan 06. 2022

그녀들의 못생긴 훈장

물리치료사 이야기

"얼굴 길쭉한 아가씨 인자 오나?"

"안녕하세요. 많이 기다리셨어요?"


아침 8시 40분 출근하는 길에 대기실에 늘 앉아계시던 분

9시부터 진료가 시작되지만 할머니는 늘 일찍 오셨다.




양쪽 인공관절 치환술을 하신 할머니의 손에는 

늘 대기 1번 표가 쥐어져 있다.


남편 일찍 보내고 혼자 농사지어서 8남매를 키우셨다는 

씩씩한 대장부 할머니는 늘 걱정이 한 보따리다. 


"아가씨~ 언제쯤 내 다리 정상으로 되노? "

"언제쯤 다리가 완전히 구부러지노? "


인공관절 치환술을 하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중년의 여자분들이다.

즉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아내인 거다.


지금 우리의 생활 모습과 달리 

쭈그려 앉아서 빨래를 하고

바닥에 엎드려서 청소를 하고

출산 후에 몸조리도 못하고 

따뜻한 물 없이 끝없는 설거지에 

쉬는 날 없는 농사일에 

얼마나 쉴 새 없이 다니셨을지...

그녀들의 무릎관절에는 연골이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 몸에서 가장 무겁고 긴 뼈인 넙다리뼈(대퇴골, femur))와 정강뼈(경골, tibia) 사이에

있는 연골은 탄력이 있으면서 부드러워 무릎관절의 움직임을 원활하게 하고 

충격을 완화해주는 쿠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쿠션 역할을 하는 연골이 닿아서 없거나 찢어지면 

걸을 때마다 불편함과 통증이 심하게 나타난다.


학교에서 책으로만 배우던 것을 임상으로 나오면서 진짜 많이 배우게 되는데 

특히 내가 처음으로 일했던 병원의 원장님은 신입 물리치료사들의 교육을 위해서

수술 과정을 아주 상세하게 수술실에서 직접 설명해 주셨다.


아.... 그때의 충격이란.....

진짜 말 그대로 뼈를 깎는 거였다.

뼈의 끝부분을 깎아내고 새로운 관절로 바꾸는 수술이었다.

그러니 통증이 얼마나 클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수술 후 초기는 극심한 통증으로 진통제를 입에 달고 지내시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부기와 통증이 좀 사그라지면

대망의 하이라이트 구부리기에 집중하게 된다.


잘 구부려지는 환자는 성공이라며 기뻐하셨고

잘 안 구부려지는 환자는 실패라며 슬퍼하신다.


무릎 수술 후 성공에 대한 잣대는 너무나 확실하다.

그 어떤 틈과 예외도 허용하지 않는다.


늘 1등으로 오시던 그 어머님도 걷는 것은 

별 통증 없이 잘 걸으셨지만 단지 무릎이 완전히

구부러지지 않는 거에 대한 갈증이 남아있었다.


얼른 다리가 다 구부러져서

밭에 가서 일을 해야 하는데...

다시 가게에 가서 장사해야 하는데...

다시 집에 가서 손자 손녀들 봐줘야 하는데...

나이가 70~80세이지만 

그녀들은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그녀들의 희생은 언제쯤 끝이 나는 건지 나는 묻고 싶었다.

나의 눈에는 몸이 보내는 신호가 보였지만 그녀들에겐 보이지 않던 그것은,


이제는 더 이상 힘들다고...

그동안 너무 열심히 살았다고...

그동안 진짜 수고 많았다고...

그동안 아이들 다 잘 키웠다고...

그만 쉬어도 된다고...


전쟁터에서 승리를 하고 오면 장군들에게 엄청난 훈장을 내리듯이

어쩌면 그녀들 다리의 기다란 흉터는 그녀들의 인생의 훈장이 아닐까?

지금까지 너무나 열심히 달려온 그녀들의 삶을 위로하는 훈장 말이다.


그녀들도 분명 꿈 많고 하고 싶은 거 많던 한송이 코스모스 같이 어여쁜 시절이 있었을 텐데

가족을 위한다고 자식을 위한다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본인을 잊고 살아내셨을지 코끝이 뭉클해진다.


가족들을 위해서 희생만 했던 그녀들

이제는 자식이 아닌 자기가 좋아하는 메뉴를 선택하고

자기의 건강상태를 살피며 

자신만의 취향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만을 위한

제2의 인생이 펼쳐지기를 늘 응원한다.



붕어빵을 사 오시던 그 환자분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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