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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 Oct 22. 2023

바쿠스의 시간

지치는 순간을 빌어

약간의 퇴페를 훔친다

자신을 놓아버린 바쿠스의 술잔은 매혹적이다

붉은빛 와인의 일렁임에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사라진다

이성은 잃고 사람은 없다

미친척 뛰어나가 달리는 자동차앞에서 외친다

사랑해! 

취기를 빌린 메두사의 머리는 휘날리고

마주치는 낯선 눈동자들은 그대로 얼어붙는다

누구인가 어디서부터 왔는가

근본은 반드시 있던 인간이 맞는

취한 척 외로운 척 고독한 척 도도한 

관객없는 무대에서  홀로 고개를 쳐들고 있는 중견배우처럼

무엇을 하는것인가에 대한 최소한의 의문

그저 즐기는 술자리엔 요정들만이 순진한 미소를 띄는구나


바쿠스여

당신은 이토록 숭배의 대상이 되었는가

신들의 속삭임이 당신의 술잔에서 비롯된 것을 모르는가

헤어나올 수 없다

이 블랙홀과도 같은 당신의 마력에 몸을 맡긴다

무지개는 찰나에 스치는 공기의 아름다움일뿐 실체가 없다

그 찰나를 한번이라도 보기위해 목을 메는 유한함의 역설

스치듯 사라지되 기억되고 싶다

의미있는 순간에 아름답게 소환되 

탐스런 유리잔에 훤히 비치는 붉은 물결이 보이는가

메마른 분홍빛 살짝만 온기얹어 입을 맞춘다

누구도 그 무엇도 진실의 우열을 가릴 수 없도록

용기내어 술잔을 든다

잊고 있던 모든 사랑의 몸짓들이여

그의 시간이 다가오면 부둥켜 안고 미친듯이 춤을 추자

하늘빛과 달빛이 만나 물안개가 시야를 가릴 즈음

조용히 나르시스를 염탐하자

사랑해! 

맨몸으로 뛰어들어 지난날의 환상을 마주한다

조금더 나태하고 조금더 타락할 

원래부터 사람은 없었다

그저 생각하는 동물이 시간만이 가득했다


비너스의 육체와 메두사의 머리

그리고 나르시스의 심장을 가진 이여

술잔을 들자

이성을 잃고 흔들리던 사람의 약속도

반쯤감긴 눈으로 이성을 탐하던 욕심도

수줍은 듯 내뱉던 빠알간 입술의 거짓말도

이 아름다운 잔에 모두 담아 바치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말고 모두 비워내자

이제 곧

바쿠스의 시간이다

지쳐가는 순간 흐려지는 이성

바라보는 순간 멋대로인 허상

모든 것을 그대로 삼켜 버리자

어차피 깨어나면 사라질 모든 순간이니

마음껏 자유로워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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