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큼 기쁘지가 않네요
1년 동안 취직 준비에 올인한 나의 결과?
없었다.
결과가 없었다.
중견기업을 들어간 뒤 연수원에서 퇴사 했고,
나의 작은 원룸으로 돌아왔다.
나에게 남은 건 없었다.
마음 정리를 위해 혼자 여행을 가기로했다.
그냥,
전부터 보고 싶었던 에펠탑을 보러가기로 했다.
앞뒤로 잡힌 일정이라고는 없었기에
최저가로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날 붙잡는 건 안타깝게도 아무것도 없었다.
보름을 꼬박 보내고 돌아온 방에 온기라곤 없었다.
나는 말 그대로 백수였다.
연말연초라 모임이 많았으나
나는 당연히 아무 곳도 가지 않았다.
늘 사람들과 함께였는데
아무도 만나지 않으니 할 게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누워서 보냈다.
멀뚱히 있다 보니 불면증이 심해졌다.
감정을 쏟을 곳이 없어 드라마 몰아보기 따위를 하며,
저녁은 늘 맥주를 먹으며 잠을 청했다.
그렇게 티비도 없는 자취방에서
보신각 타종 소리를 보며.
25살의 나를 마주했다.
새해다.
슬슬 뭐라도 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가만히 있는 건 이 정도로 충분했다.
더 이상 무기력하기도 지쳤다.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함과 동시에 각종 이력서를 다시 업데이트하며,
스스로에게 루틴을 만들어주기 위해 관심에도 없던 자격증 공부를 하기로 한다.
온종일 카페 지하에 박혀 인강을 듣고, 무엇이라도 하고 있다며 스스로를 정당화시키려 애썼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받게 된 중소기업 인사팀장의 면접 제안 전화.
당연히 원하던 회사 규모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그러나 사업 군과 직군이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는 일치하는 면이 있어 애써 고개를 끄덕여본다.
닳을 대로 닳은 취준생의 면접은 순조롭기 그지없었고, 나는 바로 지방으로 교육을 받으러 가게 된다.
취직을 했지만 별 감정이 들지 않았다.
연고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곳에서의 주말은 더, 더 외로웠다.
취준사이트는 습관처럼 계속해서 들락거릴 뿐이었다.
한 번은 이게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여기서 그냥 잘해보는 게 방법이지도 않을까,
하며 충분히 썼을만한 기업도 넘기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2번이나 서류를 떨어진 회사의 공고가 다시 떴다. 묘한 감정이 들었다.
길게 생각하지 않고 원서를 제출했고,
곧 서류 합격 통보가 들려왔다.
심장이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최종 면접을 보고 회사에서 나오는 길.
왜인지 이번만큼은 기분이 괜찮았다.
왜인지 잘 될 것만 같은 미묘한 자신감이 들었다.
그리고 곧,
사무실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확인하곤
이내 마음의 평점심을 찾을 수 있었다.
취준이란 그런 것이었다.
바닥이 아닌 지하실이 있다는 걸 깨닫고,
그게 몇 층까지 있는지 모른 채로
터덜터덜 내려가 보는 것.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이게 뭐 하는 건지.
때론 마음에도 없이 웃고,
때론 애써 누군가에게 축하를 전하고,
때론 발끝부터 억울함과 분노를 느끼다가,
스스로 어이없어하며 우뚝 멈춰 서곤
혼자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걸.
그런 모든 감정을 한두 바퀴 돌리고 나면.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과거 그토록 열정적이던 나 자신이
이토록 차분할 수 있었나 싶을 그쯤이 오면.
불현듯 들려오는,
합격 통보.
이 하나만을 위해 보고 달린 시간을 생각하면
크나큰 감정의 동요 - 기쁨, 감격, 환희, 벅참 - 이런 기분이 정말 의외로 아닌,
아. 끝났구나. 아, 이젠 정말 끝난 거구나
하는,
당연한 즐거움과,
어쩌면 약간은,
허탈한 감정.
4학년 2학기,
졸업 후 1년,
마지막 상반기까지,
무려 4개의 시즌을.
나의 청춘을 온전히 바쳤던,
나의 2년.
그 4월,
25살,
나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