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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크 Aug 25. 2023

취준의 시작

당연히 대기업 갈 수 있는 거 아니야?

네가 떨어지면,
다른 문과생들은 어떻게 취업해?


대학 생활은 바쁨의 연속이었다.


시간표는 고등학생처럼 꽉꽉 채웠다.

교직이수도 했고,

상 받을 정도로 봉사활동을 했다.

동아리는 회장과 집행부를 맡았다.

방학이 되면 계절학기를 듣고,

해외 연수를 가고, 국내외 인턴을 했다.

학점과 어학점수는 상위권이라 자신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절대 빼먹지 않았다.


이력서를 쓸 시기가 되자,

이 많은 것들 중 어떤 걸 골라 써야 할지 고민이었다.


모두 다 내게 말했다.


너는 대기업 취업 SSAP 가능이지



그런데

그건 단순한 나의 자만심이었다.

사회에서의 잣대는 사뭇 달랐다.


4학년 2학기. 10개의 이력서를 썼다.

단 한 개만 면접을 봤고, 그마저도 떨어졌다.


어영부영 기말고사가 끝나버린 나는

갑자기, 갈 곳이 없어졌다.


처음이었다.

더 이상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다는 사실이 주는 공허함은 매우 컸다.


졸업 유예를 하고,

아예 연고 없는 동네로 이사를 갔다.

그렇게 본격적인 취준생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차가운 겨울만큼 차가운 나의 마음.

봄날은 올까.




호기롭게 시작된 상반기 취준.

칼은 뽑았다. 뭐든 썰어야 했다.


인적성, 면접 스터디를 비롯해 지원서 쓰는 방법 벤치마킹도 하는.

“백수지만 바쁜 취준생” 생활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열심히'를 비웃듯,

작성한 원서는 떨어지기 바빴다.


차라리 서류부터 떨어지면 기대감이라도 없지. 가끔 최종 탈락 고비를 마실 때는 함께 스터디하는 친구들의 위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우울감은 장마처럼 찾아왔고,

자존감은 꽤나 타격을 받았다.



상반기 시즌이 끝나던 마지막 최종 통보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던 날.

무뎌졌기 때문인지 의외로 아무렇지 않게 느껴져 되려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중간 단계를 수없이 거쳤던 날들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나간다.

"됐어, 하반기나 준비하자", 하며 아르바이트 공고를 뒤적이는.


그렇게 또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게 된 나였다.


칼을 뽑았다고 생각했으나,
나는 아무것도 썰지 못했다.



취준이란 그런 것이다.


자신만만하다가 슬슬 걱정이 되고,

남은 건 자존심 밖에 없다가 그마저 스크래치 당해 기스가 남는 것.


여기가 바닥인가 싶다가도,

어쩌면 지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먼저 느껴버리는 것.


쓸데없이 들려오는 남의 좋은 소식에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척 웃어주다가,

집에 가면 그렇게 쓸쓸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이젠, 칼날을 더 뾰족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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