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관점을 갖는 방법_ why, 책, 독서모임

<하나라도 백 개인 사과>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로 나만의 잣대 갖기

by 지혜로운보라

나는 누구인가?

아이를 낳고, 엄마로만 살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약속을 당연하게 여겨지는 날들의 연속. 24시간 결코 쉬는 날도 없이 이어지는 일상에서 우울과 좌절의 끝을 만난다. 말 못 하는 아기가 울어대는 통에 미칠 것 같이 화가 나고 짜증이 나서 우는 아기를 침대에 던지듯 내려놓고 방문을 닫아 버린다. 문 밖에서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른다. “대체 왜 이렇게 울어대는 거냐고! 나도 힘들다고!” 대답 없이 울음소리만 들린다. 아기는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어댄다. ‘나는 엄마지!’ 방으로 다시 들어가 아기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에게 사과를 한다. “미안해. 무서웠지? 엄마가 달래주지 않아서 화났지?” 하고... 돌도 안된 아기에게 이게 무슨 짓인지 죄책감을 느꼈다. 그때 아기에게 했던 말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일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도움을 청하는 것도 모르는 채 엄마가 된 내면의 어린아이가 듣고 싶었던 말이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해서 답답했고, 두려웠다. 나는 사라지고, 아이만 키우면서 엄마로서만 평생 살 것 같은 두려움이 잠재해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것인지 스스로 내린 정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두려운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독서모임 초반 조성민 작가님이 책을 내면서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는 책을 추천해 주셨다. 4년 전, ‘내가 무슨 글을 써!’라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볼 때였다. 아무리 좋은 책이어도 내 상황과 필요에 닿지 않으니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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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9일 why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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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12일 why 44

왜 나는 글쓰기로 나를 표현하는 것이 어려울까?

2015년 2월 13일 why 45

왜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을까?


why 피드백하는 날을 위한 PPT자료를 만들기 위해 지나간 why를 읽었다. 주기적으로 반복해서 읽었지만 보이지 않았던 질문에 밑줄이 쳐졌다.

‘아! 내가 글을 잘 쓰고 싶은 거구나!’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랑스럽게 스스로를 보는 내가 되고 싶구나!’

‘아무 이유 없이 사랑받고 싶구나!’

지나간 질문에서 내가 하고 싶은 글쓰기라는 키워드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why로 기록하고, 독서모임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답을 발견하게 된다. <뼛 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구절들과 그림책 <하나라도 백개인 사과>는 나에게 말을 건넨다.


‘너는 그냥 너야! 스스로의 잣대를 가지면 돼!’

나만의 프레임을 넓혀가야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나를 알아가면서 죄책감도 줄어들고, 나를 미워하는 나에게 ‘괜찮아’ 스스로 위로할 수 있게 된다.


p.249 작품을 평가하는 스스로의 잣대를 가져라.


한 작품을 백 사람이 읽으면 백 개의 서로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다. 꼭 백 개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많은 의견이 나오리라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보는 시각과 관심의 초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경청해야 한다. 그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라. 그런 다음에 결정을 내려라.
이때 나오는 것이야말로 당신의 참다운 작품이고 목소리다.


<하나라도 백 개인 사과>

홍홍홍. 사람들은 나를 보고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해.

그러니까 백 명이 나를 보면, 나는 백 개의 사과가 되는 거야.

홍홍홍. 그래서 난 한 개지만 백 개인 사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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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이리 닮았을까? 이노우에 마사지의 그림책 <하나라도 열 개인 사과>에도 사과의 똑 부러진 잣대가 있다. 사람들이 하는 말과 상황을 보고 들으면서 사과는 나름대로 해석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 자신을 ‘하나라도 백 개인 사과’라고 정의한다.


사과는 각기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속상해하거나 우쭐하지 않으며, 그대로를 인정하면서도 자기만의 잣대로 자신을 긍정한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작가는 ‘작가의 임무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의 삶을 이루는 실체들에 대해 경건하게 “네!”라고 긍정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사과는 자신을 긍정한다. 그래서 백 명의 사람이 자신을 달리 본다고 화내거나 슬퍼하지도, 우쭐하지도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다.


나를 보는 다양한 시선이 있을 것이다. 아이에게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본 사람은 친절한 엄마로, 아이가 떼쓰거나 위험한 행동을 할 때 큰소리로 꾸짖는 모습을 본 사람은 무서운 엄마로,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모습을 봤다면 딸바보인 엄마로 말이다. 상대가 보는 관점은 바꿀 수 없다. 다만 나만의 잣대로 백 개의 모습을 지닌 엄마임을 인정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진리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 역시 백 가지, 만 가지의 모습을 가진 선물이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인정하고 다독여 가면서 다른 사람을 보는 눈도 부드러워지고 따뜻해져 갔다. 만나서 불편한 사람들이 줄어들고, 다른 사람의 칭찬에 “아니에요~ 제가 뭘요.” 보다는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한 관점 덕분이다. 나를 긍정하는 연습, 오늘도 계속한다. 읽고, 쓰고,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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