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이야기야!" 자기효능감의 시작
“또 이 책이야?”
아이를 키우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내뱉게 되는 말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심지어 몇 주, 몇 달 동안 같은 책을 가져와 "또 읽어줘!"라고 말하는 아이.
처음엔 귀엽고, 두 번째엔 그럴 수 있지 싶다가도, 다섯 번..... 100번쯤 되면 슬슬 지치기 시작한다.
왜 그렇게 아이는 똑같은 책만 찾을까?
그 질문을 마음에 품고 지켜보니, 아이의 행동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세상은 여전히 낯설고 복잡하다. 그래서 아이는 예측 가능한 세계를 원한다.
어떤 장면이 나올지 알고 있고, 어떤 대사가 반복될지 아는 책을 읽는 동안 아이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내려놓는다.
“이다음에 뭐 나오는지 알지?”
“그 장면에서 공룡이 으르렁거리지?”
아이의 표정은 점점 확신에 찬다.
자기가 아는 걸 확인하고, 기억하고, 다시 만나며 아이는 자신감을 얻는다.
반복은 지루함이 아니라, 성장의 과정이다. 자기효능감이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반복 요청에는 감정도 담겨 있다.
어떤 장면에서 크게 웃었던 기억,
엄마가 안아주고 깔깔거리며 함께 했던 따뜻한 시간,
그 책을 읽으며 잠들었던 안정감이 함께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또 읽어줘.”
그 말은 어쩌면
“그때처럼 나를 안아줘.”
“그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어.”
라는 아이만의 언어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아이가 책장을 넘기며 말했다.
“이제 내가 읽어줄게.”
글자를 모르는 아이가 이야기를 외워, 스스로 읽는 척하며 들려준다.
자기가 아는 이야기를 입으로 꺼내는 그 순간,
아이는 ‘나는 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이 생겨난다.
반복은 자기주도적인 삶으로 가는 징검다리였다.
엄마인 나도 반복은 힘들다.
지루하고, 다른 책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럴 때는 질문하면서 아이의 마음을 들어본다.
“이 장면이 좋아?”
“왜 자꾸 이 책이 좋아?”
“다음엔 네가 읽어줄래?”
그렇게 질문을 하면, 반복은 놀이가 되고 대화가 된다.
아이의 반복 속에 숨어 있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 이 책이야?” 대신,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이 책을 좋아하는구나.”
“또 만나니까 반갑지?”
“오늘은 어떤 표정으로 읽을까?”
아이가 원하는 건, 내용의 반복이 아니라
그 책을 읽어주는 엄마와의 연결감이다.
그 연결이 충분히 쌓였을 때,
아이는 어느 날 슬그머니 새로운 책을 꺼내올 것이다.
그땐, 조금 서운할지도 모른다.
“아, 이제 그 책 안 읽네…”
하지만 괜찮다.
그동안 똑같은 이야기를 수십 번 반복하며
아이와 우리는 이미 충분히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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