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말 한마디가 아이의 세상이 될 때
"엄마가 제~~일 좋아!"
아이가 하루에도 몇 번씩 건네던 고백이었다.
어린이집에서 만든 종이 작품에는 "엄마, 사랑해."라는 사랑 고백이 가득했다.
왜 아이는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 걸까?
왜 아이는 엄마를 가장 좋아하는 걸까?
왜 엄마는 아이의 세상일까?
왜 아이는 엄마를 먼저 찾는 걸까?
왜 엄마가 괜찮으면 아이는 괜찮아 질까?
엄마는 아이에겐 '신'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만난 존재.
뱃속에서 엄마의 모든 것을 함께 느끼며 자라왔으니까.
엄마의 품.
엄마의 눈빛.
엄마의 목소리.
아이에게 엄마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절대적인 존재,
곧 신이었다.
엄마가 웃어주면 세상은 안전했고,
엄마가 화를 내면 세상은 무서웠다.
아이는 엄마의 반응을 곧 세상의 질서(법칙?)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아이의 "엄마가 좋아"는 단순한 애정 표현이 아니라,
"엄마, 엄마가 없으면 너무 무서워요. 엄마는 제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에요."라는 선언일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엄마'다.
엄마의 말 한 마디가 아이의 평생을 만든다.
엄마가 건네는 말은 씨앗처럼 아이 마음에 심어진다.
"나는 괜찮은 아이야."
혹은 "나는 부족한 아이야."라는 믿음.
"잘했어!"라는 말은 아이를 도전하게 만들고,
"왜 그것밖에 못하니?"라는 말은 아이를 움츠려 들게 만든다.
엄마의 언어는 아이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만든다.
그래서 엄마의 말은 절대적이다.
"엄마가 좋아"라는 말에 담긴 마음은?
아이의 고백은 단순한 사랑이 아니다.
"엄마, 나만 봐줘."
"엄마, 내가 좋아?"
"엄마 나를 사랑해 줘."
끊임없이 자신이 존재로 괜찮은지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다.
"엄마는 네 모든 것이 좋아."
"우는 모습도, 화내는 모습도, 그래도 괜찮아."
"어떤 순간에도 우리 아가를 지켜줄게."
아이는 자신의 존재감을 엄마에게 확인받고, 세상을 탐험할 용기를 낸다.
엄마가 있다면 뭐든 해낼 수 있다고!
엄마가 지켜주니까 뭐든 하겠다고!
엄마가 준 언어와 태도가 곧 아이의 자기 확신이 되는 것이다.
엄마의 무게
아이에게 엄마는 신처럼 전지전능해 보인다.
하지만 엄마인 나는 늘 불안했다.
아이의 "엄마가 좋아."라는 말이 기쁘면서도 그만큼 무거웠다.
'내가 아이를 아프게 하면 어쩌지? 지켜주지 못하면 어쩌지?'
내가 건네는 말 하나, 반응 하나가
아이의 마음에 씨앗처럼 심어질 거라니?!
엄마로서 사는 삶이 무거웠다.
내가 주지 못한 사랑,
몰라서 줄 수 없었던 사랑을 만회할 수 있을까?
그러다, 신이 나를 보살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이 내 엄마라면?
나를 지켜주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는 건 아닐까?
나도 마음껏 아이에게 "엄마도 네가 좋아!"라고 표현해 주면 되니까!
아이에게 건네는 사랑
"엄마가 좋아!"라는 말은 사랑이었다.
아이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중이니 언제든, 표현하면 된까.
어느 날, 고등학생 딸이 내 옆에 와 누웠다.
"여기서 엄마랑 잘 거야!"
"너무 좁은데? 네 방 가서 자~"
"엄마는 내가 싫어?"
"아니! 엄마는 네가 너무 좋지! 근데 침대가 너무 좁아서 편하게 자고 싶은 거지. 근데 네가 여기서 자고 싶다면 이리 와~자고 가."
순간 깨달았다.
고등학생이든 어른이든, 엄마에겐 언제나 아이였다는 걸.
엄마랑 연결되고 싶은 날엔, 그냥 엄마를 찾는 것이다.
"엄마 미워!", "엄마 싫어!"라는 말조차도
"엄마, 제발 나를 사랑해 주세요. 나에게 관심을 가져 주세요. 내 마음 좀 알아주세요."라는 표현일지 모른다.
그것이 어떤 말이든
아이에게서 나오는 귀여운 사랑의 언어를,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사람이 바로 엄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만난 귀한 사람, '엄마'.
아이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엄마에게 자신의 모든 사랑을 건넨다.
엄마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아이의 전부였고, 아이의 세상이었다.
사랑은 아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