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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모삼천지교 Dec 11. 2024

미안하다. 내 등뒤의 사랑

오인태, '등뒤의 사랑'

여덟 번째 아이, 은지의 이야기.


새로운 회사에 이직하고 새로운 상사와 함께 처음으로 점심 약속이 잡혔다. 인근의 지리나 갈만한 식당들의 종류도 잘 모르는 은지를 위해 상사가 직접 식당을 안내하시기 시작했다.

- 은지 님, 여기 해산물 위주로 한정식 하는 집인데, 다양하니까 먹을만한 게 좀 있을 거예요.

- 아! 네, 감사합니다.

걸음이 빠른 상사의 속도에 맞춰 걷는 내내, 주머니 속의 핸드폰이 또 울리지 않는지 만지작 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출근하고 자리에 앉아 지난밤 지구 반대편에서 온 메일들을 확인하던 평소와 다르지 않은 아침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었다면 아침부터 울린 양호실 발신의 전화였다. 등굣길에 몸이 쑤신다는 아이는 이미 정오가 되기 전 학교 양호 선생님의 전화를 빌려 두 번이나 연락이 왔다. 습기가 잔뜩 밴 작은 목소리로, 집에 가서 쉬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아이가 그저 엄살이 아니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 일단, 양호실에 잠깐 있어볼래? 어떻게 할지 보고 다시 전화 줄게.


 이달 매출 타깃 달성이 어렵다며 오후에 갑자기 잡힌 미팅을 “애가 아파서 지금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아이의 증상이 가진 위급함이 가벼워 보였고, 그렇다고 개념치 않고 일에 집중하기에는 엄마로의 마음이 무거웠다. 누군가 애가 아파도 회사에 있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양해를 구하고 조퇴할 수도 있겠지만 그 뒤에 고스란히 쌓일 처리해야 할 일들과 '애가 아파서 집에 갔어요'라는 말에 따라붙을 보이지 않는 평판은 때로는 보이는 규칙보다 더 큰 힘을 행사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기에 은지의 고민이 이어졌다. 이제 막 이직을 한 자신보다는 좀 낫지 않을까 싶어 아이 아빠인 정헌에게 학교로 갈 수 있는지를 물었다.

-아.. 나도 안될 것 같은데… 어쩌지. 방법을 고민해 보자


[어. 쩌. 지. 방. 법. 을. 고. 민. 해. 보. 자.]


결국 은지가 알아서 아이를 케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 그가 찾아낼 방법은 딱히 없을 것이다.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사실을 일깨우는 늘 언제나와 같은 답변. 완전히 알아서 하라는 태도라면 싸우기라도 할 텐데, 집 안의 애완 금붕어가 아프다고 해도 똑같은 답을 할 것 같은 그의 메시지를 읽으며 또다시 이 런 상황을 홀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만 그저 한번 더 확인할 뿐이었다. 다양한 경험에 욕심낼 수 있는 일을 포기하고, 업무 강도가 낮은 작은 규모의 회사로 이직을 해온 것은 반복되는 이런 상황에 질려버렸기 때문이었다는 사실도. 하지만 아직 낯설기 그지없는 동료들에게 혹시 보일까 싶어, 눈 밖으로 새어 나오는 무언가를 가려운 척하며 티슈로 자꾸 비벼보는 것도 잠시. 다시 울리는 전화기 속의 양호실 번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결국, 고민 끝에 점심 약속으로 향하기 전 친정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계속 상사와 둘이 있을 예정이라 전화를 계속 받기가 어려우니, 우선 중간중간 문자로 달라는 이야기와 함께.


"엄마가 가서 데리고 올 테니, 신경 쓰지 말고 일해"


아이를 키우는 것도, 집을 이사하는 것도, 친외가 식구들의 대소사도 모두 일로 바쁜 아빠가 전혀 신경 쓰지 않게 이 모든 걸 알아서 해온 친정 엄마에게는, 아마도 참 익숙한 대사였을 것이다. 다만 그 이야기의 대상이 시간이 흘러 남편에서 딸로 바뀌었을 뿐... 하지만, 전화를 주저했던 이유는 엄마가 오랜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며 들떠있던 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전화를 들기까지도, 그리고 전화를 끊고 나서도 입안에 감도는 쓴 맛은 사라질 줄을 몰랐다. 누군가의 ’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상‘ 뒤에는 또 다른 누군가가 대신 헌납해야 했던 일상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참 쉽게 잊곤 한다.


- 여기 미역국이 맛있더라고요.

- 아, 그래요? 그럼 저도 미역국이 들어간 정식으로 해야겠네요.

식당에 앉아 메뉴판을 보면서도 눈을 뗴지 못하고 바라보던 전화기 속에는 아이를 학교에서 데리고 나와 근처에 소아과로 데리고 가겠다는 엄마의 메시지가 떠있었다.

- 은지 님, 새 팀은 어때요?

- 좋아요. 다들 친절히 대해주셔서 잘 적응하고 있어요.

- 다들 얼마나 그 자리에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는지 몰라요. 공석이 길어서 다들 고생이 많았거든요.

-그러게요. 제가 얼른 적응해서 도움이 되어야 할 텐데요. 허허


태연하고 애쓴 티가 나지 않는 맑은 표정으로 이런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마음은 온통 다른 소망들을 읊고 있었다. 부디 병원에서 지어주는 약이 바로 잘 듣기를, 그래서 퇴근하고 부지런히 달려가 도착할 시간까지 아이도 친정 엄마도 너무 지쳐있지 않기를, 부디 엄마가 좀 늦게라도 여행에 합류할 수 있도록 오늘 퇴근이 너무 늦지 않기를.


제주에서 올라왔다는 옥돔구이와 들깨가 들어간 미역국. 검고 윤기가 흐르는 삐죽한 부드러운 가지들을 드리운 톳 무침과 코를 가까이 대지 않아도 고소한 향이 올라오는 바삭한 김. 딱 좋은 한 입 길이의 무말랭이. 막 썰린 단면에서 싱싱함이 묻어나는 김치와 너무 무르지 않게 무쳐진 나물들. 그리고 깨끗한 기름에 구운 것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만한 연한 노란색의 전들이 소담스럽게 담긴 접시까지. 테이블 가득 다양한 반찬들이 눈앞에 하나씩 놓였다. 맛깔스러워 보이는 음식들 옆에서 계속 메시지가 왔음을 알렸다. 울리는 전화기를 보며, 급한 일이면 받아도 된다는 상사였지만, “괜찮을 것 같아요. 아이가 좀 아프다고 연락이 왔는데 좀 전에 친정 엄마가 가셨어요.” 라며 [회사 일하는데 가정일로 문제 되지 않습니다]를 어필하는 것 역시 상사의 배려에 내비칠 수 있는 은지의 최선이었다.


밥과 국을 한 입 뜨고, 눈앞의 생선을 젓가락으로 막 집으려는 찰나, 이번에는 메시지가 아닌 전화벨이 울렸다. 급한 일이 아니면 전화하지 않을 엄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잠시 전화를 받겠다 말씀드리고 통화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전화기 속 엄마의 목소리 뒤로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 검사했는데...코로나라네.

- 코로나??

- 아후..검사하는데 난리였네... 일단 약은 받기로 했고 집으로 데리고 갈게. 엄마 바꿔달라고 하는데 잠시만.

- 응. 잠깐 바꿔줘요

- (받아봐, 엄마야)

- 엄마

- 코로나라서 많이 아팠구나, 우리 딸.

- 내가 아침부터 아프다고 했잖아.... 엄마... 언제 와? 빨리 와. 응?


그날 눈앞에 차려져 있던 아주 정갈하고 먹음직스럽던 미역국과 생선 구이를, 은지는 그 후에도 사진으로 찍어 놓은 것처럼 오래오래 기억했다. 그날 마음에 남았던 죄책감의 무게만큼의 선명함일까. 아픈데 곁에 있어주지 못한 아이와, 코로나에 걸려 열이 내릴 줄 모르는 손주를 직접 돌보던 친정 엄마. 혹시 친구들에게 옮기기라도 할까 결국 오래 기다린 여행을 포기한 엄마를 향한 죄책감은 그렇게 오롯이 은지의 몫으로 남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운이 좋게도 단번에 취직까지 이어져 원하던 회사에서 바라던 일을 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었다. 시간과 경력이 쌓이는 와중에 일의 결이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 '일'을 바라보는 은지의 관점은 아이라는 변수를 만나 생각지 못하게 변화했다.

'아이'만큼 소중한 일'이라는 명제에서,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 더더욱 소중한 일'로.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는 '아이와 함께하는 순간들을 대신할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인가'에 대한 고민의 주제로 달라졌다. 아이의 오늘을 지켜보며 부모로의 행복을 느끼는 순간과 일을 하며 성취감을 느끼는 개인의 행복의 순간이 선택을 해야만 하는 문제로 남아 있는 사회와 환경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그런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아이를 낳기 전에는 잘 알지 못했다.


- 이 집 자주 오는데, 늘 음식이 참 깔끔해요.

- 네. 정말 그렇네요. 맛있어요. 참, 지난번에 말씀 주신다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들깨향이 고소한 미역국을 입 안으로 한 수저 떠 넣으니 까끌한 입안에 온기가 돌았다. 다양한 맛이 입안으로 퍼지는 동안 은지의 머릿속에도 여러 고민들이 동시에 퍼져나갔다. 이렇게 은지가 어쩌지 못하는 날이면 결국 친정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며 매달리는, 다 컸지만 독립하지 못한 스스로가 진짜 성인은 맞는지 수도 없이 자문하며, 은지는 그렇게 매일 찰랑찰랑하는 마음을 들고 되뇌었다.


‘나도 엄마처럼 다른 가족을 돌보는 삶을 살아야 할까?

그럼 이런 번뇌 없이 평온할까?

그럼 그간 대학을 나오고, 취직을 위해 애쓴 것은 어떤 의미로 남을까? 

자주 오가는 양호실과 친구들 사이에서 겉도는 산이의 삶은 괜찮은가? 이 역시 그저 아이가 견뎌야 할 삶의 무게인가? ‘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그럼 또 아이도 조금 더 자라 나아질 거라며, 그럼 이렇게 버틴 날들을 고마워할 날이 올 거라고 말하는 선배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고민의 계곡 안에서 이렇게 오래 혼자 서있게 될 줄도 몰랐다. 하지만 그저 지나온 걸음들이 아쉬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많은 날들이 은지의 앞으로 흘러가 버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지금, 등뒤로 느껴지는 아이의 시선을 어찌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곳은 없었다. 




오인태, ‘등뒤의 사랑' - 시집 <등뒤의 사랑(뜨란, 200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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