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에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곰살맞지도 않았고 친해지려 다가오는 사람들은 부담스러웠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사정에 나의 소심함이 더해져 좁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가끔 마음에 드는 친구가 있어 다가가려고 해도 적극적이지 못한 탓에 다른 친구가 먼저 그 친구와 친해져 버려 친구들 사이에서 겉돌기도 했다. 매년 함께 쉬는 시간을 보내거나 점심을 먹을 친구들이 있었지만, 다음 해가 되면 조금은 소원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이런 성격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다양한 사람들과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소심한 성격이 아주 조금씩 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소심하고 부끄럼을 많이 타기는 한다. 사실은 그보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이 걱정이었다. 상대에게 마음을 주고 나의 이야기를 하고 나면 상대가 떠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마도 엄마, 아빠와 일찍 떨어지게 된 나의 경험치가 아닐까. 마음 깊은 곳에 버려졌다, 그러니 또 버려질 수 있다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는 없었다. 아빠를 만나기 전에 사귀던 남자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여태껏 엄마를 증오하며 살았고 지금 그런 미움은 남아 있지 않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아빠는 내가 10살 되던 해에 화재사고로 돌아가셨다. 큰 고모부와 함께 일하셨는데 돈 문제로 큰고모 집에 가서 고모와 다투다가 화재사고가 났다고 들었다. 화재사고가 있었던 다음 날 아침 언니와 나는 아빠가 남기신 편지 한 통을 보게 되었다. 아마 사고로 무슨 일이 생길 것이라고 짐작하셨던 것 같다.
그런 일들이 있어서인지 사람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어쩌다 정을 주고 나면 어떤 이유로든 사이가 멀어지곤 했다. 내가 계속 상대방과의 관계에 믿음을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의미 없이 한 말들도 서운했고, 나에게만 소홀한 것 같아 속상했다. 나에게만 잘해주고 나만 바라봐 주기를 바랐다. 사랑을 받아보지 못해서 받는 방법도 몰랐고, 주는 방법도 몰랐다. 그래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떠나보냈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주면 내가 왜 좋은 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항상 그 이유를 꼭 찾아내려고 노력했고, 그 이유를 찾아 상대방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나를 떠날 사람이라고 치부해버리고 거리를 두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처럼 느껴지지만 그런 일이 다시 생긴다고 하더라도 나는 똑같은 일을 할 것이다.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엄마는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사랑을 찾아간 것이고, 아빠는 나를 두고 간 것이 아니라 본인의 화를 주체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은 그렇지만 아직 그것을 인정하기 어렵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마음이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그런 나를 내가 인정하고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함께 있어도, 그 사람이 나를 떠나도 나는 그냥 나인 것인데 말이다.
나의 육아가 더 힘들었던 이유도 이것이었으리라. 내 엄마처럼 하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 쓰느라 지치고 버거웠다. 아이를 버리지 않으려고, 놓지 않으려고, 떠나지 않으려고. 너 때문이라는 온갖 말들을 하면서도 지키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떠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날 떠나는 것이 무서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의 사랑을 시험했듯이 아이의 사랑을 시험했는지도 모르겠다. 모진 말들을 하면서도 그 말들 속에 너는 나를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10여 년을 함께 지내고 나니 이제야 온전히 내 편이라는 것, 우리는 서로 떨어지지 않을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 사람 다 떠나도 아이만은 남아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 이제 나도 불안을 내려놓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