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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영 Oct 19. 2022

다 먹을 필요는 없지만 음식을 남기면 화가 났다

어린 시절에 먹었던 음식 중에 기억나는 음식, 다시 먹고 싶은 음식이 있냐고 물으면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래도 억지로 한 가지를 골라야 한다면 유아원에서 간식으로 먹었던 샌드위치가 생각난다. 엄마가 없었기 때문에 할머니가 늘 식사 준비를 해주셨다. 할머니는 경상도 분이신 데다 연세가 많아지시면서 음식 간을 강하게 하셔서 짠 음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짠맛이 싫기도 했고, 남은 음식들을 한데 모아 섞은 음식을 자주 하셨기 때문에 딱히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러면 할머니는 자신이 해준 음식을 먹지 않는다며 타박하셨고, 밖에서 너희들끼리 맛있는 것을 먹고 오니 안 먹는 것이라며 서운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내 손으로 밥을 해먹이면서 할머니의 기분이 어떠셨을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생각하며 만들었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좋지 않고 아이가 먹지 않겠다고 손사래를 치면 정말 속상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화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나 어릴 때는 입맛에 맞춰가며 좋아하는 음식들로만 차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먹고 싶다는 것, 해달라는 음식, 평소 좋아하는 것들로만 해주는데도 안 먹는 게 화가 났다. 둘째, 음식을 남기는 것이 싫어서 짜증이 난다. 음식을 남기면 먹을 사람은 나뿐인데 혼자 다 먹기에는 양이 많기도 하고, 다 먹기에는 질리기도 한다. 내가 안 먹으면 결국 버리게 된다. 재료비에 내가 고생한 것들이 생각나서 음식을 버리는 날에는 화가 폭발하여 아이에게 날 선 말을 쏟아내기도 한다.     


음식 맛이 문제라고 하면 그것도 아닐 것이다. 가끔 친구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 간단한 식사를 만들어주거나, 미혼인 친정 언니에게 가끔 반찬을 해서 갖다 주면 다들 최고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맛있게 잘 먹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우리 시어머니는 식당을 운영하신 적이 있어서 음식 솜씨가 좋으신 편이다. 내 입맛이 까다로워서 그런지 그렇게 많이 먹고 싶은 맛은 아니다. 그래서 결혼 초반에 음식을 잔뜩 해서 갖다 주시면 대부분은 남겨서 버린 것 같다. 이상하게도 시어머니가 한 음식을 버리는 것은 그렇게 화가 나지 않는다. 나는 왜 내 음식을 버리는 일이 화가 나는 것일까?     


어릴 때 할머니로부터 핀잔을 많이 들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음식을 남기면 혼이 났고, 혼잣말로 말씀하시지만 다 들리는 소리로 배가 불러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할머니는 일제강점기도, 6.25도 겪으신 분이라 배고픈 시절을 보내셨다. 아마 그렇게 주입된 음식에 대한 생각을 나도 아이에게 심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도 먹고 싶은 음식을 자유롭게 먹었던 적이 없었으니 내 입장에서는 아이가 음식을 두고 먹니 많이 하는 것이 화가 났던 것 같다. 아이가 남긴 음식을 먹으라고 시킨 사람도 없는데 꾸역꾸역 먹으면서 살을 찌우고 화를 냈다. 음식 버리는 것이 싫어서 아이에게 온갖 말을 쏟아부으며 먹었고, 그러고도 못 먹으면 결국 죄책감을 마음 깊이 새기며 버리게 되었다.     


음식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아이에게 한 가지 영향을 더 미치는 것 같다. 식사 시간에 밥을 빨리 먹지 않으면 화가 난다. 할 일이 많은데, 나는 빨리 정리하고 설거지를 마친 뒤 쉬고 싶은데 아이는 천하태평이다. 나는 집에서 밥을 먹을 때와 회사 사람들과 점심을 먹을 때 속도나 양이 확연히 다르다.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밥 먹을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싱크대에서 국에 말아 후루룩 먹었고, 먹다가도 아이가 울면 달려가야 했다. 11살인 아이는 아직도 옆에서 챙겨야 밥을 먹어서 빨리 먹고 아이 입에 밥 한술이라도 더 넣으려면 내가 빨리 먹고 아이를 먹여야 했다. 이제는 적은 양을 빨리 먹는 게 습관이 된 것 같다. 내가 식사를 빨리 마치고 나니 아이 먹는 것이 더 답답하게 느껴진다. 아이와 밥을 먹고 나면 소화불량에 걸린 듯 속이 답답하기도 하다. 식사 시간이 즐겁지 않았던 어린 시절이 이렇게 큰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최근 힘든 일들로 식이장애를 앓게 되자 이런 밸런스가 맞춰진 것 같다. 나도 입맛이 없으니 죽어도 못 먹겠다는 마음이 들고,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저작하고 있으니 식사 시간이 길어진다. 아이는 자라 대화의 깊이가 깊어졌다. 길어진 식사시간으로 채워나가고 있고 마음을 편히 내려놓으며 둘 다 먹기 싫은 것은 ‘됐어. 먹지 말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나둘씩 바꿔나가는 중이다. 늘 어느 한 가지 계기가 있어야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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