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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영 Oct 20. 2022

그 사랑은 얼마인가요?

사랑의 대가

“엄마, 버스카드에 있는 거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읽어 봐야 돼. 잃어버리면 안 돼.

그리고 가방에 있는 건 지하철에서 봐야 돼. 알았지? 아~ 빨리 말해주고 싶다.”  

   

아이가 전날 학원 선생님으로부터 초콜릿 하나를 받아왔다. 내가 장난 삼아 먹겠다고 했는데 마음에 담아둔 모양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쪽지를 써서 가방에 넣어두고는 혼자 신이 났다. 요즘 스트레스로 입맛이 없어 먹을 생각이 없었는데 아이 하는 행동이 귀여워 안 먹겠다고는 못하고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출근했다. 아이 말대로 버스에서 꼬깃꼬깃한 쪽지를 펼쳤다. 쪽지에는 가방에 초콜릿이 있으니 그것을 먹으라는 말과 초콜릿 안에도 무엇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쪽지에는 ‘엄마 오늘도 파이팅!! 내가 응원할게 ♡’라고 적혀있었다.     


아이는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나는 아이가 무척 힘들고 버거웠다. 어떻게 키워야 할지도 몰랐고, 혼란스러운 내 감정도 스스로 제어하지 못했다. 사랑받을 곳이 없어서 아이에게 줄 사랑이 없었다. 아이가 나에게 사랑을 주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공지영 작가님의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책에서 ‘사랑의 결핍은 그것이 다시 채워짐으로써도 치유되지만 누군가에게 사랑을 줌으로써도 치유된다’고 했다. 나는 왜 아이를 비롯해서 키우던 고양이와 강아지에게 사랑을 주어도 사랑의 결핍이 치유되지 않을까. 오히려 마음속에 남아 있는 사랑마저 박박 긁어 주어 버린 탓에 공허했다.     


그 기분을 오랜 기간 간직하다가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구절을 만났다. 데일 카네기의 <자기 관리론>이라는 책은 ‘세상에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랑을 쏟는 것뿐이다’라고 했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을 받기 위해서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몰랐다.     


이제야 고양이에게, 강아지에게 그리고 아이에게 사랑을 주어도 외로운 이유를 깨달았다. 그들에게 보답을 바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먹이를 주고, 잘 곳을 주는 동물들은 감사해 마지않아 나를 해치거나 못된 행동을 해서는 안됐다. 시키는 대로 하고, 나에게 사랑만을 주어야 했다. 그것이 거둬주는 대가였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가 되는 것. 그것들이 내가 주는 사랑의 대가였다.  

   

사실은 잘 모른다. 사랑을 한다는 것, 사랑을 받는다는 것.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받는 법을 모르고 주는 법도 모른다. 남들이 주는 것은 늘 어색하고 부담스러웠고, 내가 주는 것은 늘 내 방식대로 내가 주고 싶은 대로 주었다. 주는 것이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조건 없이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는 아이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가. 그러기를 바라지만 차마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사랑은 무엇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 아이를 떠올렸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흐를 것 같은 애처로운 내 아들. 아이가 나에게 하는 행동들이 아마 그 사랑이리라. 보통은 자식이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을 돌려주곤 하는데 나는 아이에게서 받은 사랑을 돌려주려고 한다. 내 외모가 어떤 모습이어도 예쁘게 봐주는 까맣고 동그란 눈, 나만 보면 미소 짓는 빨갛고 통통한 입술, 나를 꼭 안아주는 소시지 같은 팔.


그렇구나, 나는 그냥 아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아이를 사랑하는 줄도 몰랐다. 이제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마음껏 아이를 사랑하려고 한다.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마음이 허락하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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