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을 뱉어냈다. 응석 부리는 아이에게, 게으름 피우는 아이에게, 투정 부리는 아이에게. 그 말을 듣고도 아이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조용히 듣고만 있는 것이 화가 나서 더 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그래도 내 마음속에 일렁이는 거칠고 큰 파도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마치 아이를 집어삼키고 나서야 그칠 것이라고 시위하듯이, 아이가 같이 화를 내고 나에게 비난을 쏟아내게 해서 더 큰 파도를 만들고 싶다는 듯이 말이다.
‘저는 엄마가 계시지 않는 덕을 톡톡히 보았습니다. 어릴 적 이웃 사람들에게 사랑을 많아 받았고, 선생님께서는 친구들보다 저를 더 챙겨주셨지요. 매일매일 꿀벌처럼 바쁘게 움직이느라 슬퍼할 겨를도 없이 시간이 금세 지나가 버렸어요. 아쉬움보다 감사한 순간이 많은 오늘입니다.’
<이영란, 엄마 파는 가게 있나요?> 중에서
인터넷 서점을 돌아다니다 ‘엄마 파는 가게 있나요?’라는 제목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발견했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엄마 파는 가게가 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를 사고 싶었다. 빚을 내서라도 사고 싶었다. 그 책 서문에는 엄마가 계시지 않는 덕에 주변 사람들의 친절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똑같이 엄마가 없는데 나는 왜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는지 슬픈 마음이 들었다.
엄마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주변 사람들에게서 찾으려고 노력했다.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어야만 사람들이 좋아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기 싫은 일도 했고, 어려운 부탁도 거절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마다하는 일을 나서서 했고, 문제를 일으키거나 재미있는 일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착한 아이가 되어야 했다. 그래야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습게도 정작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생기면 ‘왜 나를 좋아해?’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고, 상대방을 힘들게 했다.
나를 좋아하는 이유를 끝까지 찾아내려고 했고, 이유를 알고 나서는 그 이유가 사라지면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 언젠가는 떠날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상대방이 떠나면 나는 상처 받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상대방을 떠나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 내가 상처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얇고 뾰족한 바늘을 온몸에 꽂은 채 몸서리를 치며 상대방에게 바늘을 쏟아냈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마음과 다른 말을 쏟아내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애썼다. 어쩌면 마음과 다른 말을 하면서도 날 다독여주고 좋아해 주길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바로 하나의 시험이고, 통과해야만 상대방의 마음을 인정해주겠다는 듯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혼자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럴 수 있는 상대가 아이뿐이었다. 나보다 약한 상대,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상대, 내가 어떻게 해도 나를 떠날 수 없는 상대. 아이의 행동이 내 마음에 들지 않고, 반복적인 요구에도 개선되지 않을 경우 아이를 향해 날카로운 바늘을 쏟아부었다. 그 작고 여리고 약한 아이에게.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았고, 가만히 있는 아이를 보는 것이 더 화가 나고 힘들었다. 왜 너는 가만히 있느냐고, 화가 나지도 않느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소리마저 비난의 가시로 만들어 아이의 온몸에 꽂았다.
그동안 나를 좋아해 준 사람들, 내 아이에게 쏟아낸 비난의 말들은 나를 향한 것이었다. 날카롭다 못해 보기만 해도 상처를 내고, 금세 검붉은 색의 핏줄기가 생길 것 같은 그 바늘은 원래 나를 향해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상처 받고 싶지 않아서 타인에게 쏟아냈다.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말하면 되는데, 먹고 싶으면 먹고 싶다고 말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왜 보고 싶다고 말하지 않느냐며, 나는 다른 것이 먹고 싶은데 왜 이걸 먹느냐며 상대방을 비난했다.
상대방에게 하는 말은 곧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내가 뱉은 말은 나였다. 짜증도, 비난도, 칭찬도, 감사도 모두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그 말을 함으로써 나도 상처를 받아왔다.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상대방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알면서도 모른 척 해왔다. 나 자신을 사랑하겠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하는 말부터 사랑을 담아야겠다. 더는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상처가 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