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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영 Oct 26. 2022

아무리 힘들어도 건강은 생각해야지

엄마가 있다면 듣고 싶은 말

아이가 잠들고 나면 조용히 현관 밖을 나갔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으로 가서 캔맥주를 사서 아이가 깨지 않게 조용히 들어왔다. 하루 종일 유난스러운 아이를 돌보느라 고생한 나에게 주는 유일한 선물, 힘들었던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가장 친한 친구였다.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따로 부탁하거나 맡길 곳은 없었다. 친정 부모님은 계시지 않았고, 당시에는 별거 중이었기에 시댁에도 맡길 수 없었다. 사실은 맡기고 싶지 않았다.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시댁에는 맡기고 싶지 않았다. 몇 안 되는 친구들도 다들 육아에 바빴다. 가끔 하소연이라도 하려고 전화를 걸면 먼저 아이를 키우기 시작한 친구는 원래 그런 것이며, 나중엔 더 힘들다고 하였고, 늦게 아이를 키우기 시작한 친구는 자기 하소연을 하기 바빴다. 어디에도 내 이야기를 할 곳은 없었다.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었다. 불면증. 법률사무소에 취업하고 나서는 불면증이 생겼다. 맡은 사건이 끝까지 잘 처리가 되어야 마음이 편한 성격이라 일을 회사에 두고 오지 못하고 집까지 가져와 버린 것이다. 자려고 누우면 해결되지 못한 사건, 내일 해야 할 사건 생각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잠을 못 자면 다음 날 회사에서 일할 수 없었고, 어떤 식으로든 잠을 자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 역시 술이었다.     

 

핑계일지도 모른다. 원래 맥주를 좋아하던 내가 그냥 마시고 싶으니까 육아와 불면증을 핑계 삼는 것 일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분명 육아 스트레스와 불면증에는 도움이 되었다. 그날의 스트레스를 풀어주었고, 깊은 잠은 아니더라도 잠을 잘 수 있게 도와주었다. 물론 전날 마신 술로 다음날 힘든 적도 있었지만 말이다.  

   

이런 식으로 풀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딱히 방법을 찾지 못했다. 아이는 자랄수록, 자기 생각이 커질수록 키우기가 힘들어졌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술을 찾았고, 아이가 잠들고 나서 마시게 되니 건강에도, 숙면에도 모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체중은 늘었고, 자존감은 떨어졌다.    

  

과연 나에게 엄마가 있다면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뭐라고 하실까 궁금했다. 만일 내 아이가 나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면? 아, 상상하기도 싫은 모습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몇 번 불면증으로 신경정신과를 다녔지만 약은 뒷전이었다. 약을 먹으면 잠이 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약 대신 술을 찾은 날들이 더 많았다. 이제는 달라지기로 했다. 술도 약도 모두 깊은 잠을 잘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니 더 건강한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아이를 재우기 전에 무조건 약을 먹었고, 집에는 술을 사놓지 않기로 했다.

      

스트레스는 잠을 자고 나면 풀리는 성격이므로 우선 자고 나서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운동을 해보기로 했다. 지금은 건강이 좋지 않아 쉽게 화가 나고, 잠을 쉽게 잘 수 없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스트레칭도 하고 자주 걷기도 하면서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꿔보려고 한다.      


힘들다고 나쁜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날들을 반성하면서, 내 아이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엄마가 해봤는데 그건 정말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직 아침 해가 뜨지 않았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아침 일찍 일어나 이렇게 글을 쓸 수도 있다. 출근만 아니라면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싶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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