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영 Oct 23. 2022

딱 너 같은 애 낳아서 키워봐

어릴 때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그리고 요즘 내가 아이에게 하는 말이다. 그렇다. 할머니가 늘 말씀하시던 대로 정말로 딱 나 같은 아이를 낳았고, 그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걸렸다.     


올해 9살인 아들은 참 활동적이다. 낯가림도 없이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고 동네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외향적인 성격이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스스럼없이 물어보고, 아는 사람에게는 장난도 곧잘 치며 친근함을 표현한다. 그런 아이의 성격이 부담스럽고 감당하기 어려웠던 적이 많았다. 그래서 누구를 닮아 이런 아이가 태어났는지 늘 의아했다. 나는 어릴 때 매우 소심했고 부끄럼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동네 어른에게 인사를 할 때도 늘 할머니 뒤에 숨어서 했다. 학교에서 발표라도 해야 하는 상황에는 얼굴이 빨개지며 말을 더듬거리기 일쑤였다. 아이의 아빠도 그런 활발한 성격은 아니기에 아이가 대체 누구를 닮아 이렇게 감당할 수 없는 성격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어쩌면 내 성격을 닮았는지도 모르겠다고.     


어릴 때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고 집도 가난했기에 늘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주눅이 들어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늘 부모 없이 자라서 못 배워서 그렇다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된다며 착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하셨다. 늘 내가 이렇게 하면 배운 것 없어 그렇다고 할까, 내가 이렇게 말하면 못 배운 티 낸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행동하고 말했다.     


소심하고 부끄럼 많던 나는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그 소심함과 부끄러움을 조금씩 벗겨내기 시작했다. 친한 사람에게는 장난도 칠 줄 알고, 심장은 두근거렸지만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쩌면 아이는 나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는 것.   

  

밝고 활발한 성격을 갖고 태어났지만 가정환경이라는 틀에 갇혀 나의 기질을 펼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이내 우울한 마음도 들었다. 만일 내 기질을 내 아이처럼 펼치고 살았다면 나는 다른 인생을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성격도 스스로 감당하고 조절하기 힘든데, 고집스러운 성격에다가 활동적인 기질까지 닮은 아이를 감당하기 힘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와 성격이 비슷한 사람은 본인도 그런 성격을 갖고 있기에 나를 더 많이 이해해 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비슷하기에 더 다툼이 많이 생긴다. 아이와 나는 그런 관계일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나의 단점까지 닮은 아이를 보는 것은 나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다. 나는 저런 성격이 아니라고 부정해보지만 결국 아이는 나를 비추고 있다. 내가 부정하는 모습도 사실은 나라며 시위하듯 아이는 나에게 자꾸 보여준다.     


감추고 싶었던 나의 모습들과 아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무척 어렵다. 아마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나를 사랑하고 아이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의 우선이겠지만 시작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나와 아이는 늘 이대로 평행선인 것일까? 나와 똑같은 아이를 낳았으니 내가 나아진다면, 내가 고쳐진다면 아이도 좋아질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오늘도 어린 세영이를 어르고 달랠 방법을 찾아본다. 세영이가 뭘 좋아했더라?     


이전 02화 엄마도 여자라는 사실을 깨닫자 미움이 사라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