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이 알고보니...
클리닉에 리절비스트가 한 명 왔다. 리절비스트는 미국 군 체계에서 평소엔 자신의 일을 하다가 필요한 시기에는 군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의 ‘예비군’과는 다르게 군 조직 안에서 역할과 책임이 분명한, 일종의 파트타임 현역 같은 개념이다.
환자를 부르러 대기실에 나갔을 때 그가 읽고 있던 책이 눈에 들어왔다. 강렬한 빨간 표지의 디지털 마케팅 책이었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한 뒤 나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그 책 어때요? 마케팅 공부하세요?”
그는 그 책이 실제로 자신을 가르치는 교수가 쓴 책이라며 꽤 유용하다고 했다. 나는 환자가 밀리지 않은 날엔 스몰토크를 시도한다. 직관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주제로 포문을 연다. 아이와 오면 아이에게 먼저 말을 걸며 칭찬하고, 혼자 와서 책을 읽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책 이야기를 묻는다.
자기에게 관심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마음을 연다. 특히 경계심이 많은 환자일수록 짧은 대화 한두 마디가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된다.
오늘 환자는 처음부터 친절했다. 나도 마케팅에 관심이 있어서 궁금한 것 몇 가지를 물었고 그는 신이 나서 설명을 이어갔다. 대화는 마케팅에서 AI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그가 내 동료의 상사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공통점 하나를 발견하자 대화의 거리가 더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사람은 처음 만난 상대와 어떤 식으로든 공통점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낯선 관계에서 불확실함을 줄이고 마음을 여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보니 이미 18분이 지나 있었다. 보통 한 환자에게 5~7분 정도 걸리는데 두 배 넘는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한 셈이다. 예방접종을 마친 뒤, 그는 “다음 달에 이 책 갖다 드릴게요.”라고 말하며 돌아갔다.
어느 나라든 사람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하고, 관심을 받으면 마음을 연다. 학연이나 지연, 혹은 아는 사람이 겹치는 것처럼 작은 공통점 하나만 있어도 공감대가 금세 생기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사람 사는 건 어디든 다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