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하는 선배 때문에 퇴사한 제가 한심합니다.

끊어야 하는 관계

by 희원다움


신규 간호사 시절, 선배랍시고 갑질하는 간호사가 있었다. 프리셉터. 출근 때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여오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오늘은 또 뭘 가지고 나를 잡아먹을까?'


신규 간호사들은 선배들의 태움에 당할 수밖에 없다. 사람 좋아하는데 이유 없다더니 싫어하는데도 마찬가지였다. 똘똘 뭉친 그들만의 세계에서 이유도 모르는 채 무시당한다. 존재를 드러내면 드러내는 대로, 없는 듯 투명인간이 되면 끌어내 철저하게 짓밟는다.


도와달라고 수간호사에게 외쳐보지만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는 건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들어간 병원인데, 버텨보려 안간힘을 써봤지만 그들의 세계에 한 발짝도 내딛을 수 없었다.


나를 지키는 게 우선이었다. 그 세계가 아무리 대단한 곳 이더라도 모멸감,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곳에서 비참하게 살아남고 싶지 않았다.


이곳을 나왔지만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바짝 독이 올라 보란 듯이 잘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오히려 지금은 그녀가 고맙다. 그렇게 나를 무시해줘서, 포기하게 만들어줘서 끔찍한 그 생태계를 탈출할 수 있었다.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보여줬더라면 아마 독하게 버텨버렸을 것이다.


비슷한 상황에서 있던 간호사들이, 퇴사 후 동기들처럼 견디지 못한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고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힘들다고 했다.


'한심하다니? 누가' 살려고 나온 자신이 한심하다는 것은 스스로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 것이다. 나를 함부로 대하고 돌보지 못하는데 남을 어떻게 돌볼 수 있겠는가?


인간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존재이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 수는 있지만 퇴사에 대한 결정권은 나에게 있는 것이고 그 책임 또한 온전히 나의 것이다. 퇴사에 대해 부모님은 반대 의견을 표현하실 수 있지만 거기까지이다.


내 아픔에 공감하고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나를 공감하는 방법은 내 마음이 어땠는지 스스로에게 집중해 묻고 구석구석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충분한 시간을 머무르며 나에게 집중하고 공감해야 홀가분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를 보호하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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