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단 한 간호사'가 되기위해

그들에게 위로가 되는 간호사가 되려면

by 희원다움


군인들이 대부분을 이루는 군부대 병원의 특성상 우리 병원에 오는 모든 환자들은 자살, 타살의 생각 여부를 묻는 질문지에 체크를 해야 합니다.


우울증이나 화병에 대해 높은 점수를 보이는 환자라도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가뭄에 콩 나듯 '한 달 이내 자살, 타살을 생각했다'라고 대답하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환자를 만나면 작성해야 하는 서류며 정신과 의사와의 통합 진료를 위해 20분 만에 끝나야 하는 진료시간이 1시간을 훌쩍 넘기기 십상이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야 하므로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됩니다.



오늘 저와 만났던 마지막 환자가 그런 케이스였습니다.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눌 때부터 모기같이 작은 목소리와 만사 귀찮은 듯한 말투로 대답하던 그는 우울증 진단에 높은 점수를 보였고 '한 달 이내 극단적인 생각을 했다.'에 'Yes'를 표시했습니다. 나이도 어리고 와이프도 있는 그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그의 의중을 묻는 의사의 질문에도 꿈쩍도 안 하던 그가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지난번 약속에서 황당한 일이 있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소변을 볼 때마다 사타구니가 따끔거리고 아프다고 했더니 의사와 간호사가 성병을 의심하고 검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본인은 결혼했고 와이프는 미국에 있어서 '절대 아니다'라고 했지만 환자 말을 믿지 못하고 성병치료를 감행했습니다.


하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자신이 의심받은 것이 굉장히 수치스러웠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미국에 있는 와이프에게 했는데 그것이 발단이되어 잦은 다툼과 불신이 생기고, 세상만사 무기력 해진 것입니다.



'아차'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봤던 환자는 아니지만 저도 비슷한 증상이 있는 환자들은 우선 성병을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미군들이고 워낙 성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의심할 여지가 많긴합니다.


많은 군인들이 성병에 걸려오고, 대부분은 본인이 시인을 하곤 하지만 극구 아니라고 부인하더라도 보통은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항생제 주사를 줍니다.


이런 미군들을 수없이 보면서 세상에 믿을 남자 없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론 환자 말을 의심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믿지 못하는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그 일이 실타래처럼 꼬여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뜩 들었습니다.


병원비도 공짜겠다 훈련이 받기 싫으면 조금만 다쳐도 병원에와 꾀병을 부리는 환자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습니다. 멀쩡하게 걸어와서 '아파서 걷지도 못하니 훈련을 안 받게 해 달라'는 경우가 자주 있어 의료인-환자의 가장 기본인 '믿음'보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던 것이 사실입니다.




'회복 탄력성'이라고 들어보셨나요?

하와이 카우아이 연구를 진행한 에미워너 교수는 ‘삶의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하고 긍정적인힘.’을‘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고 했습니다.


하와이 카우아이 섬 종단연구에 의하면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가정환경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 온갖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고도 성공적인 삶을 살아낸 아이들의 공통점은 언제든 내 편이 되어주는 '단 한 사람'이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그 숫자는 최소 한 명. 내 편 ‘단 한 사람의 존재’가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의 핵심이었습니다.


잠깐 만나는 환자 인생의 '단 한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들 몸과 마음의 '건강 탄력성'을 위한 '단 한 간호사'가 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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