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가족의 변화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가치관을 바꾼다.
내가 믿던 세상에서 벗어나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한다. 궁금하게 한다.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은 없다. 그들의 세상이 온전히 받아들여졌을 때 비로소 가족이 된다. 우리가 우리의 형제자매와 부모를 버릴 수 없듯이, 반려동물들의 세상도 그렇다. 그들이 우리를 선택해서 태어난 생명이 아니었으므로.
우리 가족은 똘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로 한동안 꽤 먹먹해했다. 마음속에 젖은 수건이 들어앉은 것처럼 무겁기도 했다. 똘이의 냄새나 동그란 검정 눈망울이 그리워질 때마다 동영상과 사진을 넘겨보며 다 같이 모여 앉아 함께 슬퍼하고 함께 미소 지었다. 마치 똘이가 처음에 아빠의 어깨 위에 매달려 온 뒤 언제나 거실에서 우리 가족에게 둘러싸여 예쁨을 받았던 것처럼. 똘이는 사진으로도 우리 가족을 끈끈하게 만들었고 모이게 만들었다.
우리 가족에게는 또 하나의 가족 저녁 공휴일이 생겼다. 각자의 생일, 설날, 새해 첫날, 크리스마스 저녁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을 위해 비우는 우리 가족. 내년부터는 똘이 기일이 포함된다. 우리는 매일 똘이를 기억하고 생각하지만 1년에 한 번은 반드시 모여서 함께 추억하고 슬퍼할 것이다. 우리 가족이 기어코 모이는 날이 한 번 더 늘었다. 왠지 모르게 누구보다도 가족들과 함께 똘이 얘기를 하면 똘이가 살아있는 것 같아 안정감이 든다. 똘이가 말속에 살아 뛰어노는 것 같다.
나와 내 동생은 윤회사상을 믿게 되었다. 강아지가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나중에 온 주인을 천국에서 마중 나온다는 말을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다른 삶에서 또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도 믿는다. 언젠가 만날 것이라는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희망찬 삶을 살게 만든다. 나와 내 동생은 아직도 한 달에 한 번씩 각자의 월급에서 조금씩 떼어 돈을 모은다. 똘이의 약값을 대던 돈이지만 똘이가 간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는 그 돈을 모은다. 이 돈을 차곡차곡 모아 유기견 센터에 1년에 한 번, 똘이 기일마다 똘이 이름으로 기부할 예정이다. 가장 큰 이유는 이렇게 똘이 이름으로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언젠가 똘이가 사람이 되어 우리 곁으로 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다음 생에도 똘이의 가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똘이의 이름을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불러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이다.
아직도 길을 걷다가, 달력을 보다가, 사진첩을 보다가 자꾸 문득문득 똘이의 존재가 생각난다. 본가에 가면 똘이의 흔적들이 아직 남아 있어서 이따금씩 얼굴을 파묻고 실컷 울기도 한다. 똘이가 있을 때 나의 하루는 아무리 안 좋은 일이 있었어도 행복하게 마무리되곤 했다. 지친 몸을 끌고 와 집에 오면 안방에서 부모님 옆에 자리를 잡고 누워 쉬고 있는 똘이의 모양새가 나의 하루를 행복하게 맺어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존재가 없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하루가 참 힘들고 그 기분이 오랫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똘이의 자리는 나에게 너무 크다.
만약 똘이가 나를 보고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누나는 그래도 잘 버텨 볼 거라고.
너무 보고 싶고 안고 싶고 달려가고 싶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무사히 잘 참을 거라고. 우리 가족을 지켜봐 달라고, 우리 가족을 기다려 달라고.
이팝나무가 흐드러지던 4월의 어느 날 떠난 똘이는,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고 있다.
반려동물과 끝까지 함께하며 생을 나눈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이 위대한 경험과 나날들을,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경험하였으면 좋겠다.
키우는 지금보다, 떠나보낸 지금 느끼는 똘이의 자리가 훨씬 위대하고 경이롭다는 것을.
반드시 끝까지 사랑으로 함께해줄 것을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