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의 추리소설 중에서 '스기무라 사부로'라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을 좋아한다. 아니 사실은 다양한 주제의 우키요에를 들여다보는 듯한 에도 물을 더 좋아하지만 '스기무라 사부로'에게는 특별한 애정을 갖게 된다. 수사물의 주인공이지만 형사도 탐정도 아닌 그는 원래는 어린이책 편집자였다가 재벌가의 막내딸과 결혼하는 바람에 장인 회사의 사보 편집자로 일하게 된, 성실하고 야망을 품지 않는 소박한 샐러리맨이다. 그리고 사보 편집자란 참 어영부영한 직업에 한 때 몸담았던 사람으로서(쓰면서 웃고 있다) 이 독특한 포지션의 인물에게 호감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팀과 달리 홍보팀의 사보 편집자는 어디를 가나 묘하게 겉도는 존재다. 사원들 취재를 나가면 다른 팀 직원들 인터뷰가 많은데 자기 얘기가 불평이나 반발로 들릴까 봐 긴장하는 사람, 아예 불평과 반발로 취재를 거부하는 사람, 귀찮아하는 건지 즐거워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사람 그리고 굉장히 협조적인 듯 보이지만 매끄럽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빠지는 사람 등 여러 부류가 존재한다. 어쨌거나 취재를 한다고 뭔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바쁜 업무시간에 오라 가라니 사진을 찍자니 하는 것 자체부터 뭔가 조직적인 이물감을 느낀다.
사보 편집자 본인도 자신은 그저 회사원일 따름인데 아무도 돈을 주고 사보지 않는 잡지 때문에 왜 이렇게 글을 못쓴다고 욕을 먹어야 하는지, 매번 취재를 부탁하기 위해 누구든 붙잡고 매달리며 굽신거려야 하는 건지 의아해한다.
어쨌거나 스기무라 사부로의 사보편집실 이야기는 대부분 매우 사실적이고 그럴 법하다. 다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대머리 회장이나 아름답고 교양 있으며 사보 편집자를 지극히 사랑하는 회장의 딸이 있을 리 없고 사보 표지에 대한 한정 없는 집착을 보이는 젊은 시절, 스포츠 신문 기자였다는 낙하산 홍보팀 상무가 있을 뿐이었다.
둘째를 낳게 되는 바람에 일을 그만두게 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도 저도 아닌 인간 형이라고 혼자 자평하는 나에게 사보 편집자는 매우 어울리는 직업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물론 전혀 그렇지 않다고, 그런 생각을 하는 너 따위는 사보인의 수치라고 말하는 굉장한 연륜의 사보 편집인이 계실지도 모르지만.
더구나 5월이면 윗분들이 공장으로 취재를!이라고 외치는 바람에 구리를 녹이는 용광로나 케이블의 피복을 씌우는 기계 앞에서 30년 근속의 50대 대리님께 욕을 먹어가며 안전모 속의 땀 때문에 가려워진 머리를 볼펜으로 긁적이던 생각이 난다.
나는 무슨 일을 30년이나 계속할 수 있을까 궁금해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