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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브 Oct 22. 2021

흔들리지 않는 꽃이 어디있으랴

행복은 찾아 오는 것이 아니라 움켜쥐는 것임을

한 어린 소년이 있었다. 소년의 과거에 남아있는 기억이라곤 핏빛 상처밖에 없었다. 소년은 찢어지는 마음으로 매일같이 혼자 방에서 일기를 썼다. '이 집에서 탈출하고 싶다. 이들과 같이 있고 싶지 않다. 난 왜 이런 곳에서 태어난 걸까. 차라리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모두가 행복했을까.'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온갖 종류의 말의 채찍에 찢겨나간 상처들로 가득했다. 그 상처들이 아물지 못한 채로 어른이 되었다. '언젠가는 복수를 하고 싶다. 나를 이렇게 만든 가족과 세상에게.'


아비는 폭력적이었고 어미는 강압적이었다. 어릴 적 응당 느껴야 할 사랑을 느껴보지 못하였다. 집은 감옥이었고 탈출해야만 하는 곳이었다. 집안은 싸움이 끊이질 않았고 고성이 오가는 지옥이었다.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건가, 부부싸움이 끝나고 온갖 물건들이 부서진 채로 폭격을 맞은 양 무너져있는 집을 보면서 생각했다. 당시에 인권이라는 건 없었다. 체벌과 폭언은 끊이지 않았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시대였다. 나는 단지 당연해야 할 시대에 당연하다고 느끼지 않았던 죄인이었다.


그 상처들은 트라우마로 남아 내 인생을 지배하고 재연했다.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불안을 느꼈고 항상 사람들에게서 도망치는 연습을 했다. 그런 나는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회피형 인간이었다. 도망치고 도망치고 넘어지면서 또 도망쳤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아픔 받지 않기 위해. 그런 성격이 남들에게 또 상처를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마치 정해진 레퍼토리처럼, 응당 걸어야 할 길처럼 모든 관계는 회피를 향해 나아갔다.


당연히 연애도 어려웠다. 금방 사랑에 빠지고 금방 식는 게 일상이었다. 속마음을 나누는 것이 쉽지 않았고 연인을 믿거나 연인에게 기대는 일이 불가능했다. 마음 한구석에 절대 남에게 주지 않는 어떤 몫을 단단히 챙겨놓고는 타인에겐 줘도 괜찮은 부분만 떼어 보여주었다. 그것은 가공된 표정과 마음이었고 내가 생각하기에 세상에 나와도 괜찮다 생각하는 표준화된 얼굴이었다. 그렇기에 항상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는 기분이었고 진짜 나는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타인에게 마음을 줄 수 있는 건지 고민하며 살아왔다.


그런 마음을 그런대로 감춰가며 적당히 아파가며 살아가던 중 연인과의 이별과 회사에서의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크게 마음이 한번 무너졌고 당시 추천하던 원데이 클래스의 상담 교실을 찾게 되었다. 내 마음이 생각보다 많이 무너져있음을 알아챈 선생님은 큰 상담소에서 심리 상담을 제대로 받아볼 것을 추천했고 나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상담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를 방어하며 제대로 된 마음을 얘기하지 않았다. 온갖 핑계와 이유를 대가면서 이런 상담이 쓰레기라고 규정짓고 도망칠 준비를 했다. 그러나 어떤 마음에서였는지(더 이상 이대로 살아서는 안될 것 같다는 목소리가 마음 한 구석에 있었던 듯이) 억지로 상담을 지속했고 조금씩 마음을 열 수 있었다. 선생님은 내 과거의 트라우마들을 쭉 들어주고는 그런 트라우마가 만들어 낸 나만의 사고 틀을 조금씩 긍정적인 사고 틀로 바꿔나갈 것을 요청했다. 항상 특정 상황에서 나를 비난하고 도망치게 만들던 내 마음속의 방송국을 꺼버리고 다른 채널로 바꾸자는 얘기였다.    


단순히 사고 틀만 바꿨음에도 꽤나 나아지던 나는 자만하는 마음으로 상담을 그만두게 된다. 잘 살아갈 것만 같던 나는 코로나 블루와 실직의 무게로 다시 무너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유튜브에서 본 감정일기를 우연히 쓰게 되었고 조금씩 내면의 일어설 힘을 키우던 나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두 번째 상담소를 방문하게 된다. 첫 번째 상담소에서 내면의 외침의 부정적 사고 틀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면 두 번째 상담소에서는 어떤 모습의 나라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대범함을 훈련하게 되었다. 질문과 문답으로 이어지는 상담에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부정적 사고의 틀과 선입견을 비로소 알아차리고 그것들을 마음에서 비워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되었다.


다시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된 나는 마지막으로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부모님과의 관계를 끝내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악과 공포의 근원을 마주한 모험가처럼, 나는 다시 부모님 앞에 섰다. 그것과 마주치는 것은 무섭고 두려웠다. 그 앞에서 나는 다시 무너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전과는 달리 다시 툴툴 털고 일어나 스스로 두발로 다시 세상 앞에 일어섰다. 해결해야 했던 문제 앞에 똑바로 서서 바라봤고 완벽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툴툴 털어낼 수 있었다. 이 길의 끝에서 든 생각은 '생각보단 별거 아니었네?'라는 마음이었다. 


물론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내 마음도 완벽하게 이상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지금도 여전히 아프고, 힘들고, 괴로운 마음이 가득하다. 모든 게 잘될 것만 같다가도 한 순간 무너지고 행복 가득한 마음이 지옥처럼 괴롭고 아플 때도 있다. 당연한 것이다. 인생은 행복으로 가득 찬 푸른 길이 아니니까. 오히려 대다수가 아프고 고통스러운 등산길이고 행복은 잠시 누릴 수 있는 길가에 핀 꽃과 같은 것이니까. 꽃은 아름답고 휴식시간은 달콤하지만 그것은 영원할 수도 없고 우리는 또다시 길을 떠나야 한다. 그 길은 괴롭지만 누구나 걸어야 하는 인생의 길이다.


한 때는 세상이 너무나도 거대해서 도저히 이길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우울이 온몸을 지배해 이불속에서 덜덜 떨고 있을 때 창문 밖으로 본 세상은 너무나도 거대한 산이었다. 감히 부딪혀 볼 생각도 못했으니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솜털만큼도 해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몇 년간의 상담을 거치고 조금이라도 삶의 행복을 움켜쥐기 위한 노력을 해본 지금에서야 돌아보니 그것은 내가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었다. 세상은 잔인하지도 거칠지도 않았다. 오히려 무표정에 가깝다. 그러나 작은 상처들이 만들어 낸 스노볼은 세상을 거대한 악마라는 환상으로 나를 짓눌렀다. 


이제야 안다. 진부한 말이기는 하지만 나를 바꿀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는 것을. 세상은 손 내밀어주지 않고 가해자들은 본인이 상처를 준지도 모른다. 억울하고 고통스럽지만 결국 나 혼자 일어설 수밖에 없다. 토하고 내뱉고 욕하고 소리쳐가면서 행복을 움켜쥐어야 한다. 행복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 사랑은 기다리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얻어내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노력하는 만큼이나 행복을 벌기 위해 발로 뛰어야 한다. 상담을 통해서든 감정일기를 통해서든 약을 통해서든 연극을 통해서든 뭐든 괜찮다. 목적지에 갈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 끝에서 이제는 알게 될 것이다. 슬픔도, 아픔도, 즐거움과 행복마저도 느끼지 않는 고요한 상태를. 머릿속을 지배하던 온갖 망상과 의심, 부정적인 목소리들이 사라지고 세상의 편견과 선입견도 희미해지고 어떤 상대가 와도 어떤 상황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하고도 고요한 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진짜 나를 알게 되고 내가 원하는 욕구 욕망에 충실해지는 것. 하나의 동물처럼 욕망하되, 사람들 사이에서 절제의 선을 지키는 것. 그런 인간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마치 자연과 합일이 된 것처럼, 성현들이 얘기했던 것들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 흔들리는 바람이 아닌 자유로운 바람이 되는 그날에 다시 만나길 기원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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