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상담소에서의 마지막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사랑에 대해서, 일에 대해서, 우정에 대해서, 그리고 시선에 대해서. 매번 '왜? 왜 그래야 하죠?'를 외치는 상담사 분과, 필사적으로 논리를 방어하려고 하는 둘 사이의 팽팽한 기싸움이 매번 이어졌다. 그러나 결국 패자는 나의 몫이었다. 그러나 패배의 값진 수확은 내가 가졌던 생각들의 대다수는 타인의 시선에 의한 것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던 것에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서야 깨달은 진리는, 세상에 정해진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정해진 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들은 세상의 의견을 그대로 흡수해서 마치 내 생각인마냥 정해버린다. 어떻게 사랑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까지도. 선생님은 내가 맞다고 생각한 것이라면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한겨울에 반팔을 입더라도 내가 열이 많아서 나는 시원함을 느낀다면 사람들이 다 욕을 하더라도 그게 나한테 맞는 것인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빈털터리에 보잘것없는 사람일지라도 그것이 그가 선택한 삶이고 그 속에서 만족감을 느낀다면 그는 다를 뿐이지 틀린 인생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서 내심 그를 실패한 인생으로 규정짓는다. 사회가 씌워준 선글라스를 은근슬쩍 끼고서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 친다. 그 끝은 공허함만 남는다. 끝에 다다라서야 나는 무엇을 위해 뛰어왔는지, 왜 행복하지 않은지를 비로소 알게 되는 게임인 것이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조금 거칠더라도, 조금 속물이더라도, 조금 비난받을지라도 괜찮다고 선생님은 나를 다독여 주었다. 남 눈치 보는 사람들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나쁜 짓을 하더라도 남들 평균도 안될 것이라며 내가 하고 싶은 말,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은 무조건 하라고 말해주었다. 숙제로 나는 사람들에게 짜증도 내보고, 불합리함에 항의도 해보고, 싫으면 싫다고 말도 해보았다.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이래 봤자 남들 화내는 만큼도 안된다는 말에 용기를 받고 거침없이 행동해보았다. 물론 아무도 화낸 줄은 몰랐겠지만.
사람들은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내 머릿속에서 내가 만들어 낸 시선과 환각이었다. 내가 좀 더 내 감정을 표현한다고 해도, 내 삶을 살아간다고 해도 아무도 나를 죽이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어렵다. 내가 조금이라도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면 남들이 나를 미워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내가 정의하는 우울증은 나의 시선이 왜곡되는 현상이다. 과거의 경험이나 혹은 사회의 정의를 바탕으로 어떠한 사건이나 현상에 자꾸 내 생각을 개입시켜 왜곡시키는 과정이다. 나는 그것을 병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감기라고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냥 사고방식이 바뀐 것이다. 사고, 인지의 문제이기 때문에 병으로 접근하면 절대로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뇌의 인지 작용을 바꿔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당시에는 음식과 호르몬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우리 몸에서 도전의식을 일으키는 도파민이 과다 분비되어 망가져있는 상태를 고치기 위해 담배, 야동 등 자극적인 것들을 끊었다. 또한 행복감을 주는 세로토닌과 잠을 잘 자게 하는 멜라토닌 분비를 위해 정기적으로 낮에 운동을 하고 땀을 흘리고 규칙적인 시간에 밥 먹고 자는 습관을 들였다.
또한 식습관도 바꿨다. 도파민을 과다 분비시키는 패스트푸드, 정크 푸드, 초콜릿, 정제 탄수화물 등을 끊었다. 개인적으로는 담배보다 밀가루 끊는 것이 더 어려웠던 것 같다. 이런 음식들은 물론 건강에도 안 좋겠지만 정신적으로도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충동적이고 강박적인 행동을 야기하고 자꾸 부정적인 사고를 일으키게 된다. 더 좋은 음식을 찾아 먹기보다는 안 좋은 음식을 최대한 멀리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리고 그런 변화들과 감정들을 감정일기에 지속적으로 기록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적었던 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나는 요즘 삶이 너무 행복하다는 걸 느낀다. 행복이란 무엇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 내 상태가 행복한 상태인 것 같다. 머릿속을 짓누르던 생각들과 망상들이 없다. 그냥 멍한 느낌인 것 같기도 하다. 길을 걸어도 사람을 만나도 항상 머리에 생각이 가득했는데 이제는 혼자 있어도 그런 것들이 없다. 대신에 바람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 자연의 냄새를 맡는다. 시끄러운 음악도 필요 없기에 산책할 때 이어폰도 끼지 않는다.
사람들을 만나는 게 즐겁다. 예전에는 소외된다는 느낌, 말을 많이 해야 한다는 강박감, 자리에 대한 부담감, 나를 싫어하는 것 같은 두려움 등이 가득했다면 이제는 대화에 집중한다. 물론 부정적인 생각이 안 떠오르는 건 아니다. 그럴 때는 그냥 그 생각을 내버려 둔다. 나를 싫어할 수도 있지, 내가 이런 말을 해서 화가 날 수도 있지. 그리고 물어보면 대부분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고 한다. 또 내 망상이었구나, 이제는 안도한다.
푹 자고, 맛있는 건강한 음식 먹고,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땀 흘리며 뛰고, 걱정 없이 푹 자고 걱정 없이 하루를 살아가는 삶. 그게 행복이 아닐까? 그리고 그게 행복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내 행복은 행복이라는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으니까."
나는 부모님의 사업을 물려받기로 결정했다. 마지막 상담에서 위의 행복에 대한 얘기를 했더니 상담사분은 상담이 잘 된 것 같다며 웃었다. 마지막으로 처음에 했던 심리 테스트를 해보고 어떻게 바뀌었는지 한번 보겠냐는 말에 나는 아니오,라고 말했다. 살짝 놀란 선생님께 나는 답했다.
"이제 그런 건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거기서 어떤 성향이 나오든 저는 저니까요. 누가 뭐래든 상관없어요. 저는 저니까요. 지금 상태가 좋아요. 하지만 언젠가 다시 우울해질 수도 있겠죠? 그래도 그 모습도 나의 일부겠죠. 우울하면 어때요? 그게 뭐 나쁜 건가요. 우울하면 안 돼, 라는 생각이 나쁜 거겠죠."
선생님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합격이라며 이제 하산해도 좋다고 말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힘들었지만 내가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같이 투쟁해준 선생님꼐 감사하다는 짤막한 인사와 함께 우리는 처음처럼 또다시 남남이 되어 각자의 세계로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