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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미 Sep 23. 2021

오늘도 회사에 상담하러 갑니다.

회사에 상담하러 갑니다 No. 16

가끔 꿈속에서 상담을 합니다.


꿈에는 풀리지 않았던 장면이 복귀되어 나옵니다.

'이렇게 했으면 좋았으련만' 하고 혼자 생각했던 그것을 꿈속의 내가 하고 있습니다.


꿈에는 울림이 있던 어떤 만남이 나오기도 합니다.

어떤 날의 꿈은 3D 이미지 투성이라 깨고 나면 플롯은 날아가고 잔상만 남습니다.

뇌 속에 CCTV 칩이라도 달면 괜찮은 SF영화 한 편일 텐데.... 아쉬울 때도 있어요.

영화는 못 만들겠지만, 소설 한 편은 써보겠다 다짐합니다.






심리학은 과학이다

학부시절 심리학을 처음 접했을 때 인에 박히도록 들은 말이 있습니다.


“심리학은 과학이다.”


당시 어느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이라는 아티클을 읽히고 리포트를 써오라고 하셨습니다. 교수님은 심리학이 왜 과학인지를 끊임없이 설명하셨죠. 과학이 자연과학만 있는 줄 아느냐? 심리학은 사회과학이다. 기술(describe)과 검증(test)은 과학의 방식이다. 이미 검증한 사실과 검증 가능한 변인을 밝혀 이론을 만드는 게 과학이다. 기술할 수 있고 검증이 가능하다는 것은 예측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은 세상에 예측이라는 공헌을 한다. 뭐, 이런 내용의 무한반복입니다.



The Counselor as a Professional

진로를 상담으로 구체화하고, 유학을 가서 배우기 시작한 상담은 과학이고 뭐고 그냥 쌩 고생이었습니다. 한 우물만 판 특혜는 있었습니다. 대충 알고 있는 것들을 깊이 있게 습득하는 과정이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text로 배우는 공부는 할만했습니다. 문제는 상담의 상짜도 모르는 저에게 학교는 'Counselor as a professional' 이 되기를 요구했습니다.


풀타임으로 했을 때 총 6학기 커리큘럼이었는데 그중 상담실습은 4학기 동안 이어졌습니다.

첫 학기 상담실습에서는 선배들의 상담을 일방경 뒤에서 관찰하고, 두 학기째부터는 진짜 내담자를 만났습니다. 상담시간이 50분인데 그중 20분 정도는 슈퍼바이저가 직접 상담실로 들어와 아무 말하지 않고 듣다 갑니다. 훈련 센터이니 내담자들은 이미 알고 있지만, 상담자들한테는 초 죽음의 긴장이죠. 매 상담마다 슈퍼바이저가 잘한 것과 개선해야 할 점을 말해주었습니다. 한 학기에 한번 있는 라이브 슈퍼비전 날에는 선임 상담자와 함께 그 일방경 안에 들어가서 상담을 했고, 세 번째 학기부터는 제가 선임이 되고, 네 번째 학기에는 인턴십을 할 외부 기관을 혼자 찾아야 하는 하드코어 훈련이었습니다.


상담실습이 있는 날이면 진통제를 한 알 먹었는데 그때부터 생긴 편두통이 지금 살고 있는 외곽지역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자신 없는 영어로, 더 자신 없는 상담을 해야 하는데 도망갈 수는 없고, 긴장을 억압하니 신체화 증상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그 상태로 이 필드를 떠나지 않고 있으니 증상이 만성화돼서 한 십 년 간 거고요. 하드코어 훈련 덕분에 저는 석사만 마치고도 스스로를 상담자라고 부를 수 있게 모양새는 갖췄습니다. 50분 시간을 운영할 수 있게 됐고, 쓰지 않고 상담을 하고(이걸 왜 그렇게 강조하셨는지...), 초기 치료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됐고, 이론에 맞는 목표를 세울 수 있고, 적절한 개입을 찾아 쓸 수 있었습니다. 커리큘럼이 딱 원하는 인간상, 그러니까 전문가로서의 상담자의 모양새를 갖춘 거죠.


그런데 늘 불안했습니다.

“내가 하는 게 상담이 맞나.....?”




상담은 예술이다

박사 수학을 할 때 어느 교수님은 반복해서 이 말을 하셨습니다.


상담은 예술이다.


"심리학은 과학인데, 상담은 예술이라고? 흠.... 뭐지?"

대학원에서 보낸 시간의 3배 이상을 박사과정에 있으며 어여쁜 30대를 지나 보냈습니다. 분명 한국 학교인데 영어를 쓰고, 고등학교와 같은 커리큘럼에, 미국식 하드코어 실습에 시수는 몇 배이고, 나 챙기기도 모자라 석사 선생님들 지도도 해야 하는.... 마의 훈련기간을 다 마치고 나니, 상담이 예술이라는 뜻이 조금 들리더군요.


예술은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방식입니다.

만인이 예술가이지만 예술가는 특별히, 자신이 창조하고자 하는 그 아름다움을 삶을 통해 구현합니다.

이렇게 따지면 예술가는 삶이 결과물인데,

예술가는 고맙게도 인류에게 감탄할 수 있는 작품을 내 주기도 합니다.

한 명의 예술가도 같은 이가 없고,

하나의 작품도 같은 게 없으나

시작점에서는 모두 동일한 훈련을 받습니다.


사람에게 가 닿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을 아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지식은 분류하고, 분석하고, 기술하고, 검증하죠.  

지식이 나를 '사람'이라는 군상에 가 닿게 해 준다면,

체험으로 축적된 영감은 나를 내 앞에 앉아 있는 아무개 씨에게 가 닿게 해 줍니다.   

하나의 작품도 동일하지 않듯이, 한 명의 인생도 동일하지 않고, 한 회기의 상담도 동일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과의 상호작용에서 언제 직진을 할 것인가, 우회를 할 것인가,

어느 지점에 머무르고, 어느 지점은 흘릴 것인가는

상호작용을 고스란히 다루는 상담의 예술적 영역입니다.



  



저의 진로 여정은 과학으로 시작했고,  기술 훈련을 거쳐서, 예술을 이뤄가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이렇게 쓰니 열심을 낸 시간들이 기특하면서도

지금은 오롯이 내 책임이네.... 부담스럽습니다.  


부담스럽다고 하면서도 상담하는 의자에 앉으면 즐겁습니다. 매일 해도 모르겠고, 매일 해도 새로운 일.

잘하면 본전이고, 잘 안 되면 '나'라는 존재를 파고들어 원인을 한 번은 찾아봐야 하는 일.

내가 좀 못 나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보완되는 일.

내가 아무리 잘 나도, 인간의 한계에 절로 겸손해지는 일.

내가 작아도, 필요하면 커져서 키우고 돌보고 사랑해야 하는 일.  

내 역할을 줄이기 위해 내가 가진 온갖 힘을 쓰면

상대가 커지는 신비가 일어나는 일.

무형의 에너지가 보이는 변화로 나타나는 일.  

이 일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회사에 상담하러 갑니다.  



처음 기획했던대로 <회사에 상담하러 갑니다>는 16편으로 마무리합니다. 

구독해주시고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또 다른 글로 연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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