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선미 Oct 20. 2022

숲 한 모금, 쉼 한 조각_ 9일 차

빛이 변하더니 다시 가을이 왔다.

연중 푸르라고 침엽수가 가득 심기어진 이 숲에도 노랗고 빨간빛이 찾아왔다.


"가을은 세상이 예뻐지는 계절이야. 일 년 중에 고작 두어 달 남짓인 게 안타깝지.

더 안타까운 게 뭔지 알아? 세상이 가장 아름다워지는 시간이 바빠지기도 좋은 시절이라는 거지.  

독서의 계절이라지, 개학하지, 휴가 후 다시 업무 복귀해야지, 냉난방비 걱정 없이 일하기 좋지, 여기저기 모임도 많지.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이번 가을은 매일 단풍놀이를 하겠어."


자신과 가족에게 이렇게 엄포를 놓았으니 이틀에 한번 꼴로 숲을 찾고 있다. 나올 때는 귀찮지만 숲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내 눈은 찾기 놀이를 하듯 색의 변화를 찾는다. 이 보다 더 즐거운 놀이가 있을까.

찾으면 찾는 대로 나타나는 아름다움으로 채워지는 충만함을 언어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일상에서도 이런 충만함을 느끼는 것이 삶의 실력일 텐데, 아직 실력이 모자라는 나는 자연의 힘을 빌린다.


노랗고 빨간빛




".... 착해지고 있어."



브런치에 <숲 한 모금, 쉼 한 조각> 첫 에피소드를 올리며 좋아하는 숲을 자주 오리라 다짐한 지 일 년이 지났다. 그 역시 지난가을이었다.

"그래서 일 년 동안 여기서 네가 찾은 것이 무엇이었는데?" 하고 묻는다면.... 착해지고 있다.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다. 이 숲에 들어오는 순간 착해지는 기분.

착해지고 있다니, 이게 무슨 유치한 말인지.

힐링이 된다고, 이렇게 말하면 세련되려나?

세련미를 얻는 즉시 마음을 시원하게 읽어주는 순결성이 낮아지니 언어란 쓸수록 부족하다.




변하는 과정 중




"... 나는 자꾸 불안하고 미련해지는데, 여기는 자꾸 예뻐지니까.

물 들려고 오는 것도 아닌데 물이 드니까, 그게 좋아."   



가을 단풍의 울긋불긋이라는 말은 in the middle of change를 나타낸다.

한 달 전까지 초록이었던 잎의 가장자리로부터 붉은색이 밀려오고 있다.  

이파리 하나에 몇 가지 색이 있는 걸까?

노랑, 연두, 초록, 갈색이다 못해 검은 반점, 주홍과 다홍에 가까운 붉은색....

인간이 카테고리로 분류한 모든 자연현상들의 경계는 모호하다. 색도 모호하다.

색이 정확하려면 <process> <in the middle of> <in between> <getting darker> <getting lighter> 이렇게 과정을 나타내는 개념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애초부터 분류를 할 이유가 없어진다.


세련미와 순결성

분류와 경계  

변화와 과정

빛과 어둠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경계가 가득 펼쳐진 이 숲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호할 때조차 나타나는 아름다움을 찾고 보고 즐기는 일이다.

숲을 나가는 순간,

일상을 버티고, 돈벌이를 하느라, 상한 내 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살피느라, 매일 잃어가는 건강을 지키느라

우리 삶에 경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잊기 쉬우니까 말이다.


작정하고 찾으면 보이는 아름다움을 내 삶에 빌려온다.

인연이 닿는 삶으로 보낸다.   




 



이전 09화 계절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