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전부터 언젠가 꼭 한번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잉태하여 아홉 달 동안 아이를 내 몸에서 품어 보고 싶었다. 남자는 누려볼 수 없는 얼마나 경이로운 경험인가.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겁 없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임신 23주 차를 지나면서 지금까지 경험한 나의 임신 중 겪는 몸의 변화를 이야기해 보려 한다. 무섭게 유행했던 코로나도 한번 안 걸리고 독감 예방 접종은 필요도 없던 나는 무적의 면역력이 강한 사람이었다.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먹어도 탈도 잘 나지 않았던 터라 먹는 것을 특별히 신경 써본 적도 없었다. 임신 후에는 예전의 몸 상태와는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극초기였던 6주 차 때 자궁이 커지면서 아침부터 극심한 두통과 울렁거림이 있었다. 괴롭게 출근했지만 멈추지 않는 두통에 회사 근처 병원으로 바로 달려갔다. 입덧이 시작된 것일 수도 있다고 입덧약을 미리 처방해 주었다. 하지만 약 한 알도 먹지 않아도 되었고 딱 하루 힘들고 지나갔다.
7주 차 때 산부인과로부터 피검사 결과 전화를 받았다. 다른 건 다 정상인데 갑상샘 호르몬 수치가 좀 높게 나왔다며 빠르게 내과 진료를 받아 보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처음 받는 이상 연락이라 너무 놀랐고 걱정되었다. 다음 날 반차를 내고 내과를 바로 방문해서 피 재검사를 받고 약 처방을 받아 왔다. 알고 보니 갑상샘 수치는 임신 후 호르몬 변화로 임산부에겐 자주 오르고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병원에서 처방해 주는 임산부에게도 무해한 갑상샘 조절 약을 먹으면 금방 조절할 수 있다.
8주 차 때는 티브이에서 우연히 돌솥비빔밥을 먹는 것을 보고 먹고 싶어서 점심 메뉴로 먹었다가 배탈이 크게 났었다. 30분이나 화장실에서 투쟁하고 나와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또 임신 전에는 돌을 씹어도 맛있게 씹었을 나였는데 미각이 좀 이상하게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넘기는 끝맛이 단맛? 쓴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원래 잘 먹던 닭발집에서 배달을 시켜 먹는데 평소와 달리 국물 맛이 달고 쓴 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한번은 막국숫집에서 막국수를 먹는데 맛있어야 할 양념 맛이 너무 달고 쓴 맛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맛없는 막국숫집은 평생 처음이라고 동생에게 가게 이름까지 이야기해 주면서 거긴 가지 말라고까지 했었다. 식당이 아니라 내 혀가 이상했던 것이었음을 그땐 몰랐다.
이 모든 것은 임신 중 흔하게 느끼는 호르몬의 변화로 인한 증상들이었다. 배탈, 미각의 변화, 지속적인 울렁거림 등 새로운 신체 변화에 적잖이 당황했었다.
산부인과 담당 선생님에게 이런 이상 변화를 물어보니 아무렇지도 않게 “그럴 수 있어요.”라고만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선생님은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산모들의 똑같은 질문을 받으셨을까 싶으면서 그때 선생님의 반응이 이해되었다.
11주 차쯤이었나 희미하게 왔던 입덧 마저 거의 잦아들었고 조금씩 있었던 배 통증도 없어졌다. 몸무게 변화도 없었다. 덜컥 겁이 났다. 맘카페에서 보던 안 좋은 글들이 떠오르고, 뱃속에 아가가 잘 있나 걱정이 되었다.
걱정을 잠재우기 위해 회사 근처에 가끔 가던 산부인과로 가서 초음파를 보았다.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아가는 꿈틀꿈틀 움직이며 잘 지내고 있었다. 안도의 숨을 돌리며 코가 시큰해졌다.
소중한 걸 얻었다 보니, 잃고 싶지 않은 두려운 마음도 생기는 듯하다.
담당 선생님이 초기에 해주셨던 조언이 떠오른다.
“조금 무던해질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임신기간을 즐기세요.”
작은 반응에 민감하게 걱정하는 대신에 몸에 생기는 새로운 반응을 이해하고 무던하게 보내도 좋다며 궁금증을 안고 질문하던 나에게 해주신 말씀이었다. 그때는 공감도 못 해주는 T선생님이라고 서운하게 생각했지만 지금 그 말씀이 가끔 힘이 되어 되새겨질 때가 있다.
그 외에도 매년 독감, 코로나 한번 안 걸리던 내가 올해는 처음으로 코로나도 걸려본 것이다. 심한 두통과 고열, 기침까지 이틀을 견디고 나니 미각을 잃었다.
15주 차부터는 배가 갑자기 커지기 시작하더니 열심히 발라왔던 튼살 크림은 아무 소용없이 배가 터지고 가려움에 시달렸다. 자다가 가려워서 잠에서 깬 적이 여러 번이었다.
한 일주일의 가려움과 전쟁을 치르고 새로운 크림으로 바꾸고 나서야 조금씩 잠잠해졌다.
그렇게 내 몸은 불편하게도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임신 중기가 되어서야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몸의 일어나는 변화들이 곧 아가가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는 증표인 듯해서 오히려 안심되면서 고마웠다.
‘아가야 엄마는 아프고 불편해도 괜찮아. 잘 자라줘서 고마워.’
그때마다 아가에게 인사하며 이겨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