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벅꾸벅 졸기만 했다. 신혼여행을 잘 다녀오고 회사에 복귀한 첫 주였다. 원래 차 옆자리에서 잘 자지 않는 나였는데, 요즘 따라 나도 모르게 옆에서 잠들어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회사에서 앉아 있을 때면 후끈하게 열도 오르는 듯하고 퇴근하고 돌아와서도 잠자리에 일찍 들게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규칙적이었던 그동안의 생리주기와는 다르게 예정일보다 5일이나 소식이 없었다.
결혼식이란 큰 일을 마치고 유럽으로 신혼여행도 2주나 다녀와서 몸컨디션이 좀 변한 건가, 라는 마음 한편 뒤엔 혹시?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혹시나 하는 작은 마음이 꿈틀거려 회사에 있다가 아래층 약국으로 내려가서 테스트기를 구매해 보았다.
난생처음 보게 된 선명한 두 줄이 뜨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손이 떨렸다. 티브이에서만 보던 그 장면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다.
마침, 그에게서 온 카톡 연락에 두 줄이 선명한 테스트기 사진을 찍어 보내었다. 언뜻 보고 코로나 테스트기인 줄 알고 전화를 걸어온 그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임신테스트기라고 말해주었고 내려와 달라고 했다. 바로 달려온 그도 많이 놀라 보였다.
우리는 점심시간에 맞추어 근처의 산부인과로 달려갔다. 초음파로 아기집을 함께 보고서야 진짜 엄마 아빠가 된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우리의 아가. 기쁘고 떨리기도 했지만 두렵고 막막했다.
임신 소식을 알게 된 순간, 기쁨과 동시에 ‘내년에 또 승진이 멀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올해 승진 대상자였지만 아쉽게도 누락되었기에,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해 내년을 목표로 삼고 있었던 터였다.
그런데 가장 먼저 떠오른 게 승진 누락이라니, 아가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괴로움이 밀려왔다.
한동안 출산 후 커리어 단절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승진에 집착하는 건 아니었지만, 출산과 함께 때늦은 승진이 더욱 멀어질 거란 생각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우연히 영상 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미국 유소년 협회에서 한 여학생이 의장에게 자신의 꿈이 엄마와 아내가 되는 것이지만, 그것이 커리어로 인정받기 어려울까, 걱정된다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그때 의장의 답변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엄마가 되는 것이 커리어가 될 수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아이들을 사랑하고 가르침으로써 국가와 신에 기여하는 것이란다. 아주 위대하고 전문적인 일이야.”(영어로 된 장면을 나 혼자 해석 번역하여 어색할 수도 있음)
울림이 있었다.
엄마가 되는 시간이 내 커리어의 단절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위대한 커리어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엄마로 이직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쓸데없는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우리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아이를 위해 긍정적인 생각으로 마음을 채우고 축복해 주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어쩌다 아이까지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지금, 두려운 마음도 있지만 설레는 마음이 더 크다. 우리를 꼭 닮은 작은 생명이 세상에 나올 것을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그저 선물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