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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캣 Nov 29. 2023

방청소 싫다 싫어

I SEE YOU

'일요일인데, 방청소 할까?'

'싫어.'

무슨 거절을 이리도 차분하게 할까.

'주말인데, 방청소 하자.'

딸아이는 대답만 하고 움직이지 않는다.

평온한 아이의 목소리와는 달리, 내 마음은 벌렁거리기 시작한다.


그냥 내가 하고 말까.

다시 한번 얘기할까.

그냥 내버려 둘까.

아. 괴롭다.


내버려 두면 아이방은 놀이방에서 창고처럼 변해간다. 먹고 남은 사과에, 그림을 그리다 만 종이조각에, 널브러져 있는 놀잇감과 책들... 나는 그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 먼지청소를 하면서 아이방은 스킵한다. 청소기를 돌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세 살이라도 널브러진 신발들을 보면 가지런히 정리를 하는 아이들이 있다.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말이다. 물론 남의 집 아이다. 방이 엉망이라도 신나게 놀 수 있는 아이들이 있다. 우리 집 아이다. 이런 건 타고나는 가보다.


방이 이렇게 지저분한데, 불편하지 않냐고 딸아이에게 물었다. 그녀는 쿨하게 괜찮다고 했다. 음... 내가 치우는 게 빠르겠다 싶어서 방청소를 해주면, 그녀는 와우~이러면서 방이 너무 깨끗하다면서 땡큐라고 해준다. 진짜 지저분한 방이 불편하지 않은 거 맞아?


문제는 놀고 치우지 않는 공간이 점점 넓어진다. 거실에도, 주방에도, 식탁에도 아이의 장난감들이 널브러져 있다. 치우라고 얘기해도 바로바로 진행이 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정리 잘하면서  왜 집에서는 안 하냐고 물었더니 딸아이 왈: 집이니까.

집이니까. 집이라서.

뭔가 어이없지만, 묘하게 설득되네...

그래도 자기 방 청소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딸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 일이다. 잠들기 전 스토리 타임이었다. 딸아이가 골라 온 책은 '아기돼지 삼 형제'이다.


옛날 옛날, 아기돼지 삼 형제가 살고 있었어요... 하루는 엄마돼지가 아기돼지 삼 형제를 불러 모으고 이렇게 말했어요... (얘들아, 너희들도 이제 다 자랐으니 따로 나가서 각자의 집을 짓고 살거라.)

'그거 알아?'

'아기돼지 삼 형제가 나가서 각자 집을 지은 이유가... 방청소를 안 해서래.'

이야기를 듣는 아이의 표정이 멈칫한다. 그러고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

이튿날이었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딸아이가 다가오더니, '엄마 거짓말쟁이!'라고 한다.

엥? 사뭇 진지한 아이의 얼굴이다.

'아기돼지들이 따로 집을 짓는 건 커서 그런 거야! 방청소를 안 해서가 아니라고!'

아이가 하루동안 심각하게 고민을 한 얼굴이다. 흐흐흐.

아이의 얼굴을 보니 웃기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 그런 거구나. 커서 그런 거구나.'

아기돼지 삼 형제를 키우는 엄마돼지의 기분을 알 것 같은 건 왜일까.


가까운 사이일수록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아이에게는 어른의 자세로 말고, 제자의 자세로 물으라고 했다. 아이에게는 늘 해답이 있다고. 그래서 물었다. '엄마는 지저분한 집이 싫고, 00은 방청소가 싫은데, 우리 어떻게 하면  될까?'

-음. 그러면 엄마가 나에게 청소하라고 나이스 하게 말해줬으면 좋겠어.

-나이스하게 얘기해도, 대답만 하고 안 하면 어떻게 해야 돼?

-그래도 나이스하게 다시 얘기해 줘.

-아, 할 때까지 나이스하게 얘기해 달라고?

-응.


오... 아... 음...

뭔가 깨달은 거 같으면서도 괴롭다. 놀고 정리를 하라고, 방청소를 하라고 그게 몇 번이 되었든 나이스하게 말해달라는 아이의 마음을 바라본다.


 그 마음속에는 방청소를 안 하고 싶은 자유와, 방청소를 자신이 원할 때 하는 자유와, 방청소를 안 했을 때에도 불안하지 않을 자유를 원하는 것이었다. 그래.
그런 자유는 있어야지.
특히 집이라는 공간에서는.


그러고 보니 육아는 아이를 바라봐주는 일이고,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어린 왕자는 가장 중요한 건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건 슬픈 일이다. 나비족의 인사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I SEE YOU. 오늘도 그렇게 육아는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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