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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캣 Dec 06. 2023

육아라는 "일"

育儿即育己

비 오던 날@동경 거리

아이는 첫 사회생활인 어린이집을 시작으로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아이는 엄마와 점점 멀어지는 길로 향한다. 그러고 보면 엄마가 아이와 온전히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세 살 정도까지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나는 아이와 함께 하고 싶었다.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니까.




출산을 하고 산후조리원에 갔을 때 나는 초보엄마였다. 아니, 왕초보 그 잡채였다. 기저귀를 어떻게 갈아야 하는지, 신생아가 울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이가 울면 큰 일이라도 난 듯이 산모실 벨 누르기에 급급했고, 울음소리만 들으면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벨소리에 달려온 신생아실 간호사의 품에 아이를 넘기는 순간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됐다. 엄마의 역할은 나에게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게 기저귀 갈아주는 법, 아기 속싸개 싸는 법, 수유하는 자세까지... 하나둘 씩 배웠다. 구세주와 같은 신생아실 간호사님들이 다 가르쳐주신다. 그것도 아주 친절하고 디테일하게... 그러니 초보엄마도 괜찮다.


그러면서 엄마가 되어간다.
누가 태어나서 엄마였던가.


그렇게 OJT(직장 내 교육훈련) 아닌 OJT는 끝나고, 신입 엄마인 나는 R&R도 제대로 모른 채 생후 50일부터 육아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프로젝트 관리자도 나였고, 프로젝트 팀원도 나였고, 이해 관계자이신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은 모두 멀리 계셨고, 프로젝트 스폰서는 남편이라고 해야 하나. '신입' 엄마는 그렇게 '막무가내로' 육아라는 프로젝트의 책임을 온전히 가지게 되었다.


낮에도 밤에도 바통터치 할 사람이 없이 아이와 24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건 새롭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잠과 삼시 세끼는 사치였다. 육아수첩에는 수유량, 시간, 대변, 소변, 잠에 관한 기록이 적혀있었고, 경험이 없는 초보맘에게 육아책은 바이블이었다. 아이가 깨면 같이 깨고, 자면 같이 쉬고 내 리듬을 온전히 아이에게 맞춰가면서...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와 눈을 마주하고 교감하는 일은 벅찼고. 몸은 힘들었지만, 덕분에 다이어트를 할 것도 없이 몸무게는 출산 전으로 돌아갔다. 


마음의 행복감도 진실했고, 몸의 괴로움도 진실했던 치열한 하루하루였는데... 시간이 지나고나니 그때의 기억도 흐릿해진다. 모유수유를 하면서 울혈이 생기고 몸살 나던 기억도, 한밤중에 열이 나는 딸아이를 안고 혼자 응급실로 향했던 기억도(남편은 해외출장 중)... 힘들었던 순간마다 혼자였던 섭섭함에, 남편이 원망스러웠던 기억도 이젠 흐릿해진다. 그때는 왜 남편의 출장과, 감기와 생리는 늘 겹치는지... 뭐 어쩌겠는가. 남편은 남편대로 직장에서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고, 나도 나름대로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으니. 서로의 힘듦을 이해하고 위로하기엔 우리는 젊었고, 철없었다.


육아는 시간이 멈췄으면 싶을 정도로 행복하다가도, 힘든 순간들이 어김없이 찾아오는 일이었다. 그건 마치 끊임없이 레벨 업 해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아파도 아프면 안 되는, 버티고 살아남아야만 하는 서바이벌 게임... 정말 게임이었다면 보스 공략이라도 찾아볼 수 있으련만... 눈에 보이는 보스는 없었다. 보스는 아이도, 남편도 아닌 힘들고 괴롭고 지치는 내 몸과 마음이었다.


그러니 육아는 뭐랄까. 양파 까기와 같다고나 할까. 한층 한층 벗겨져서, 코어까지 훅 치고 들어오는 일, 눈물이 절로 나는 일... 컴포트존에서 나를 훅 떠밀어내는 일... 그래서 나 자신의 한계가 훤히 보이는 일이다. 그만큼 그 시간을 버텨내면, 버틴 만큼 더 단단해져 있는 일. 버틴 만큼 마음의 힘이 생기고, 마음의 근육들이 자라는 일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나 자신도 커가고 있었다.
 그 어떤 프로젝트보다 더.
육아는 나를 키우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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