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까지 가야 할 통증은 아니었지만,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늘 어딘가 불편하고 찌뿌둥한 느낌은 일상을 보내기에 충분히 불편했다.이 정도 불편감은 현대인은 누구나 겪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던 것 같다. 아이 두 명을 출산한 요가선생님은 허리통증이 전혀 없다고 하셨을 때 꽤 충격이었고... 또 고무적이었다. 어쩌면 나도 요가를 꾸준히 하면 통증에서 해방될 날이 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달고 살던 통증이 어쩌면 목어깨나 허리의 문제가 아닌,굳어버린 흉추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도수치료사도 눌러보시더니 흉추 가동성이 너무 안 나온다면서 놀라셨다. 흉추 탄력이 떨어지면 흉추를 써줘야 할 대신 허리를과하게 써버리니 허리는 아플 수밖에 없고, 앞으로 열어줘야 할 가슴은 닫혀있으니 어깨는 말리게 되어 있었다.
뻔한 얘기지만, 몸의 근육은 모두 이어져 있으니 허리가 아프다고 원인이 허리가 아닐 수도 있었다. 나는 나의 몸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
무지에 가까웠다.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엄지발가락 아래쪽 뼈를 바닥으로 지그시 누르면 허벅지 안쪽이 당긴다.
새끼발가락 아래쪽 뼈를 눌러보면 허벅지 바깥쪽으로 힘이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신기하다.
인체는 이토록 미세한 인지를 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늘 함께인몸이라서 그런지 우리는 딱히 몸에 집중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몸보다는 외부에서 시선 끄는 자극들이 너무 화려하고, 귀로 들리는 청각적인 자극들도 너무 다양하다. 우리의 의식은 외부세계로 향하여 있다. 너무나 정신이 팔려 있는 나머지 정신이 팔려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몸을 향하는, 내부를 향하는 상태는 굉장히 이질적인 상태가 되어버렸다.현재에 머무른다는 것은, 몸을 의식한다는 얘기이고 호흡을 의식한다는 것이고,
바로 몸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요가를 시작한 것도 몸을 더 인지하고,현재에 머무르는 수련을 하고 싶어서였다. 영적인 수행은 오히려 몸을 멀리하는 것이 아닌, 몸에 더 머무르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운동은 덤으로.
몸을 미세하게 느끼고 싶었다. 들숨을 마실 때 흉추가 열리는 느낌과 복부에 공기가 들어오는 느낌도, 날숨을 할 때 하나씩 움직여지는 갈비뼈도, 마지막 숨까지 내뱉을 때 복부가 밀착되는 느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