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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링 Nov 29. 2021

책상 서랍 가장 안쪽 맨 아래칸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사진을 받았을  아기 수첩도 같이 받았다.


내가 내 방을 벗어나기 전까지 가장 소중히 가지고 있던 것은 나의 아기 수첩이었다. 책상 서랍 가장 안쪽 맨 아래칸에 넣어두고 생각나면 책상 밑에 쪼그려 앉아 그걸 꺼내봤었다. 지금과 다르게 사진도 일기도 없고 2.75kg의 몸무게와 혈액형만 적혀있었지만 그게 좋았다. 내가 태어난 날을 생각하고 내가 엄마 아빠 딸인 증거가 여기 있구나 생각한다. 나라는 존재가 처음 기록된 이 종이가 나에겐 늘 안도가 되었다.

 생각을 하며 나의 아기 수첩은 다른 곳에 기록하기로 한다. 얼마 전 선물 받은 노란색 스프링 노트에 기록하기로 한다. 아이가 태어난 과정과 수유 시간이며 나의 마음까지 거기에 기록해 보기로 한다. 어디선가 들은 말인데, (우리 엄마일 수도 있다.) 딸은 입덧도 수유도 엄마랑 비슷하니 엄마가 기록해 놓으면 딸이 나중에 아이를 가졌을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한다. ​


열심히 기록은 했지만 초음파 사진은 시간이 지나자 햇빛에 모두 날아가 버렸다. 입덧도 수유 기록도 나중에 보니 별게 없어서 노란색 스프링노트도 정리해 버렸다.

아이가 조금 더 컸을 때 스스로 들춰볼 수 있는 기록은 이미 충분했다. 4살부터 어린이집을 다니며 아이의 담임 선생님과 함께 내가 매일 편지 쓰듯 썼던 일지가 여러 권 있었다. 너무나도 좋은 선생님이라 나에게 이 수첩이 아기수첩보다 소중했다.

우리 딸이 스무 살이 되고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될 때, 그 나이의 우리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궁금해한다면, 그날을 위해 열심히, 매일, 짧더라도 기록을 남겨놔야겠다고 결심한다. 물론 결국은 이 모든 것은 날 위한 글이다. 이 글들이 나의 보험이고 재산이 될 거다.


그러니 오늘도 읽고 쓰고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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