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링 Oct 20. 2022

현대문학을 정기 구독한 엄마

엄마는 거실 소파에서 종종 책을 읽으셨다. 그랬던 것 같다. 그중 지금까지 기억나는 장면과 책은 하나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책 제목과 표지와 엄마의 모습 그리고 우리 집 소파의 기억이 한데 어우러져서 나에겐 강력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기억만 가지고 있지 그 책을 읽어보진 않았기에 지금 이 글을 쓰며 책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보바리 부인》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장편 소설이다. 실제로 있었던 개업의 드라마르의 아내인 델피느의 자살사건을 취재하여 5년간에 걸쳐 완성하였다. 사실주의 소설의 전형적 걸작이다.


어랏? 내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소설이다. 인간이 원하는 삶과 욕망, 파멸에 대한 책인 것 같은데 그때의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었을까. 내가 공부'잘' 하는 것을 소망하는 것 외에는 삶에 불만에 없으셨던 엄마는 그래서인지 나의 대학 합격 이후로는 더욱 삶을 충만하게 살고 계신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


어느 날 내 방 책장에 고전문학들을 넣어주시며 엄마는 책 등이라도 보고 외우라고 했다. 적어도 작가와 제목은 들으면 알아야 된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이웃의 언니가 데미안이 뭔지도 모른다면서 너는 그렇게 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렇게 되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창피한 거라는 뜻 같았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그 이후로 이상한 허세가 들어서 데미안을 가지고 다니며 쉬는 시간에 읽기 시작했다. 한국 고전문학은 좋아해서 옆에서 누가 읽으라고 하지 않아도 수시로 읽곤 했었는데 데미안은 한줄한줄을 내가 읽고 있는 건지 뭔지 모르겠고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읽었다. 읽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 데미안을 다시 읽은 적은 없다. 


그런 엄마 덕분인지 우리 집 책장에 있는 책의 제목은 알고 있을 정도는 되었다. 부모님 방에는 태백산맥 , 토지 이런 책들과 현대문학 몇십 권이 꽂혀있었다. '한 달에 한번 집으로 배송되어오던 문학 월간지를 보는 엄마'라는 기억은 지금까지도 책을 사는 것은 낭비나 사치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나는 여전히 책을 좋아한다. 그건 분명히 엄마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며 내가 좋았던 것을 아이에게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엄마처럼 나도 아이에게 좋은 기억을 심어주고 싶다. 내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꾸준히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우리 아이도 충만하게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올 초 우먼 카인드라는 계간지를 구독하며 엄마의 현대문학 구독이 다시 떠올랐다. 


"엄마가 현대 문학을 구독했었잖아. 그래서 내가 책도 좋아하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엄마 현대 문학 아직도 봐? "




" 얘.. 아휴.. 엄마 다녔던 고등학교 은사님이 퇴직하시고 우리 동창들한테 다 연락해서 현대문학 구독하라고 하는데 그걸 안 할 수가 있니? 돈 많이 벌었을 거야. 아주 지독해. 내가 이걸 몇십 년 동안 구독을 끊지를 못하고 할 수 없이.... "



좋은 기억을 심어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아이는 부모에게서 반짝이는 기억을 받는구나. 내가 하는 수 없이 억지로 했던 일들도 아이에게는 대단한 일로 보일 수도 있겠구나. 좋은 모습과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려고 끙끙댈 필요 없겠구나. 그냥 일어나는 일들을 일어나는 대로 놔두면 우리는 함께 충만해지는 거구나. 


어쨌든 엄마 덕분이에요.







이전 09화 책상 서랍 가장 안쪽 맨 아래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