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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링 Oct 25. 2022

쓸데없는 짓


결혼한 후 적응기를 거치기도 전에 태몽일 거라 확신하는 꿈을 꾸었다. 


내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매장에 홀로 앉아있는데 청소복을 입은 아주머니가 들어오셨다. 비어있는 위층에서 청소하다가 주었다며 나에게 가지겠냐고 물었다. 그건 비닐봉지에 담겨 있는 금붕어 2마리였다. 아주머니는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고 눈빛이 반짝반짝했으며 알듯 말듯한 미소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 물이 따근 하다고 생각해서 금붕어가 삶아지면 어쩌나 걱정을 하며 받았다. 그리고 테이블에 봉지를 올려놓았다. 그 순간 한 마리가 물 위로 솟아올랐고 나는 잠에서 깼다.


내가 근무하고 있던 청담동 건물은 거기서 근무만 하면 여자들이 결혼을 하거나 임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있던 1층뿐만이 아니라 2층 가구점도 3층 치과도 마찬가지였다. 결혼과 임신, 출산으로 가구점 직원들과 치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수시로 바뀌곤 했다. 우리 매장도 그랬다. 여기를 거쳐간 점장님들은 모두 이곳에서 근무하던 시기에 결혼 또는 임신을 했다.  나 역시 이곳에서 근무를 하면서 이때까지 안간힘을 써도 만나지 못했던 인연을 밖에서 만났다. 그러니 이 꿈이 예사롭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다.


꿈은 적중했다. 나는 한 달 뒤쯤 임테기의 2줄을 확인했다. 


기쁜 일의 연속이었지만 나는 두어 달 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렇게 점점 불러오는 배로 집에 홀로 앉아있으면 나 혼자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대로 내가 사라질 것 같은 느낌. 아기가 나오기 전에 뭔가 해놓아야 내가 나로 계속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만 맴돌았다.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이 있었다. 아이를 돌보다가, 집안을 돌보다가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이미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 말이다.


제발 뭐 하나라도 걸려라 싶은 생각으로 나는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개인 사업자 등록을 마치자마자 어떻게 알았는지 국민연금에서 전화가 왔다. 현재 매출이 없으니 3개월의 유예기간 후 최저로 설정한 국민연금을 자동이체 신청하라는 전화였다. 


다른 이들처럼 성공하여 매우 바쁠 수는 없어도 국민연금과 건강보험금액이라도 다달이 낼 수 있을 정도의 순익이 있다면 계속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몇 년만 버티면 나에게도 대박 아이템이 나오리라 기대하며 아이를 데리고 동대문을 들락거렸다. 어떻게 보면 그 시간은 나에게 나를 보여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기가 있어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걸 멈추지 않을 거라는 나의 확실한 의지 말이다.


돈을 다달이 버는 일도 아닌 저런 쓸데없는 짓을 왜 하고 다니냐는 눈빛이나 말을 건네받아도 괜찮았다. 그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 나를 증명해가는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도 알고 있다. 일이라고도 할 수 없는 내 일이 그저 나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쓸데없는 짓이라는 걸. 이 일은 나에게 낮에 외출할 수 있는 핑곗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중간세계. 그렇다. 저 시절의 나의 중간세계는 동대문 종합시장이었다. 

비닐에 담긴 따뜻한 물에서 나의 몸 세포 하나하나를 이완시키고 긴장을 풀게 만드는 중간세계. 너무나 따뜻해서 나가기 싫지만 튀어 오르는 용기를 준비할 수 있는 곳. 


중간세계를 거쳐야 나의 세계로 갈수있다.


그래서 오늘도 난 '쓸데없는 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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