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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링 Oct 17. 2022

나는 대체 불가가 될 거야.

경력이란

"아, 경력 화려하신 분!"


그동안 참여하고 싶어서 여러 번 기웃거리다 부스비를 내고 참여한 마켓에서 저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은 벌게지고 가슴엔 찬바람이 들어왔다. 나는 그녀의 감탄사 끝부분을 분명히 알아들었다.


경력만 화려하신 분.

경력은 화려하신 분.

경력이 화려하신 분.


분명 그러했다. 주최 측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그녀는 나를 못 알아본 게 미안하다는 듯 애써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내 가방의 무늬를 보고 물었다. 원단도 직접 디자인하신 거냐고. 나는 그렇진 않다고 대답했고 그녀는 예상했다는 듯 내 부스를 훑어보았다. 모든 부스에서 물건을 하나씩 구매한 그녀는 팔에 주렁주렁 쇼핑백을 걸고 있었고, 자기의 소임이라는 듯 내 가방 역시 구입했다. 쇼핑백에 방금 쇼핑한 물건을 넣으며 천천히 옆 부스로 이동한 그녀는 활짝 핀 5월의 장미 같은 웃음을 터트렸다. 옆 부스의 그녀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주문자의 아이 그림을 직접 실크스크린 한 특별한 가방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



대학원을 졸업하고 공예가나 도자 작가가 아닌 세련되어 보이는 '디자이너'라는 명칭을 가지고 싶어서 디자인하우스에서 주최하는 첫 번째 영 디자이너 페어에 지원했다. 이런 분야에서 도예를 전공한 사람의 유리한 점은 흔하지 않은 분야라는 것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 지원한 페어에 합격했다. 물론 나는 그들의 속사정은 모른다. 그저 내가 인정받고 선택되었다는 것에 기뻤다.


페어가 시작되고 나는 내 부스 근처에서 서성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몇 마디의 감탄사 외에 들리는 말은 없었다. 그러다 내 귀에 쏙 들어온 문장이 있었다.

 

"여긴 좀 유치하지 않아? 애가 만든 것 같아."


내 가슴은 불에 구워지고 있는 마른오징어처럼 가만히 쪼그라들었다. 내가 만드는 것들이 도깨비라서 종교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아이가 만든 것처럼 미숙한 작업 수준은 아닌데 저런 말을 들으니 답답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 작업은 유치하기도 했고 미숙하기도 하다. 분명 완성품은 아니었다. 24살과 25살 26살의 내가 흙으로 만들고 구워낸 유형물이었다.


내 앞 부스의 디자이너는 금속공예를 하는 분이었다. 그는 가끔 나를 불러서 내 작품 중 고무신이 정말 예쁘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던졌다.


"우리는 어디 가나 B급이에요. 비주류."


귓속에 벌이 드나드는 것처럼 윙 소리가 들렸다. 나는 조용한 편이고 음주가무에 못 끼는 성격이라 어디 가면 그저 가만히 앉아있었다. 근데 그게 아니고 내가 비주류라서 B급이라서 거기에 못 끼는 거라고? 난 저들과 단지 표현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나 자체가 그렇다고? 난 결국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귓속에서 머릿속에서 수 없이 많은 물음표가 벌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다.




-


경력과 이력과 배경이 있으면 내가 완성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나는 경력만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마켓에서  말을 들은  나는 결심했다. 이제부터  경력과 이력은  어디에도 쓰지 않겠다고.  자체로 인정받겠다고.


난 그 누구도 아닌 나니까.

난 대체 불가가 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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