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일산 자유로 귀신
밤열시가 넘어선 시각. 최서연은 자유로를 따라 운전하고 있었다. 가속페달을 밟는 발에 힘이 빠졌다. 그날 따라 유난히 피로감이 커졌다. 하루종일 귀신들의 상담을 진행하며 그들의 한을 풀어주는 작업은 정신적으로 소모가 컸다.
서연의 눈꺼풀이 무거워질 때쯤, 갑자기 하얀 무언가가 전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서연은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차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창문 너머로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도로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녀의 옷자락과 머리카락은 물에 젖은 듯 축축해 보였다.
"이런 식으로 나타나시면 사고 날 수 있어요."
여인은 서연을 보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를 보고 비명을 지르거나 도망쳤다. 하지만 서연은 다른 사람이었다.
"최서연입니다. 내일 시간 되시면 제 사무실로 오세요.“
어느새 서연 옆 조수석까지 스윽 다가온 여인은 명함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사라졌다.
사라진 여인 뒤로 ‘흐으으’, ‘으으으’같은 희미한 신음 소리가 뒤따르는 듯 했다.
다음날 저녁, 서연의 사무실 문이 열렸다. 소복 입은 여인이 들어왔다. 여인은 공중에 떠다니며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발밑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했지만, 바닥에는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다.
"앉으세요," 서연이 자리를 가리켰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김영희... 그런 것 같아요. 확실하지는 않아요."
서연은 노트북을 열고 기록을 시작했다. "언제부터 그 자리에 계셨나요?"
"기억이... 잘 안 나요. 그냥 그 도로에 있었어요. 차들이 지나가고, 때론 나를 보고 놀라는 사람들...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지나쳐요."
서연은 가만히 영희를 바라보았다. "영희씨, 제가 도와드릴게요. 과거로 돌아가 볼까요? 눈을 감으세요."
서연은 작은 향로에 불을 붙였다. 방 안에 라벤더 향이 퍼졌다.
"이제부터 천천히 과거로 돌아갈 거예요. 당신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순간으로..."
1989년 여름이었다. 그 날은 비가 너무 많이 내렸다. 파주와 가까운 일산은 홍수가 많은 지역이었다. 영희는 그날 친정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진흙탕 길을 지나 개천 옆을 걷는 동안 폭우가 쏟아져 수위가 금새 높아졌다. 먹구름이 짙어져 하늘이 순식간에 이두워지더니 연거푸 번개가 쳤다. 영희가 지나는 길에 번개를 맞은 나무가 쓰러졌다. 영희는 가까스로 나무를 피했지만 넘어진 채로 불어난 개천 물에 쓸려 갔다.
“어떻게, 아빠, 어떡해, 나 어떡해.”
서연은 영희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그녀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경험했다. 영희는 물살에 휩쓸려 내려갔고, 물을 들이마시다 질식했다. 그리고 그녀의 시신은 진흙 속에 묻혔다.
"아무도 나를 찾지 못했어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라요. 어느 날 갑자기 제 위로 큰 기계들이 왔어요.“
서연은 인터넷으로 일산 자유로 정보를 찾아보았다.
"1990년에 시작된 자유로 건설이 시작됐어요. 영희씨, 영희씨는 정말로 그 곳에 계신 거에요.”
“아빠, 아빠, 나 어떡해, 무서워”
영희의 슬픔은 영원히 계속 될 것 같았다. 슬픔을 잠재우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자, 영희씨가 아버지와 살았던 집으로 가는 길을 떠올려 볼까요. 죽기 직전에 영희씨가 있었던 집으로 가볼게요. 저에게 길을 안내한다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가봐요. 저는 영희씨 뒤에서 따라갈게요.”
영희가 개천을 통과하고, 오솔길을 무사히 통과한 후엔 골목길이 이어졌다. 골목길을 돌아서자 주택가가 나타났다. 영희는 여러 차례 골목을 지나 한 단독주택 앞에 섰다. 단독주택 대문 옆엔 목영택이라는 문패가 달려 있었다.
“영희씨, 그때 아버님 나이를 알고 계세요?”
“일흔 둘이셨어요.”
서연은 영희의 손을 잡았다. "영희씨, 이제 현재로 돌아와 주세요. 하나, 둘, 셋..."
영희의 형체가 다시 선명해졌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영희씨, 당신이 사라진 후 그곳에 자유로가 건설된 거예요. 과거는 되돌릴 수 없어요. 하지만 영희씨의 슬픔을 치유할 방법을 찾아볼게요.“
서연은 노트북으로 경기 북부지역의 장례시장을 검색해 목영택이라는 이름 석자를 찾아냈다. 장례식장을 수소문해 파주의 한 납골당을 찾아냈다.
“이제 영희씨에게 이 라벤더 향을 선물할게요. 영희씨가 가는 곳 마다 라벤더 향이 퍼질 거에요. 이제 한번 아버지를 만나러 가볼 까요.”
서연이 차를 몰아 파주의 납골당으로 향했다. 납골당 직원의 안내를 받은 서연은 목영택이라는 이름이 적힌 유골함 앞에 섰다.
“오랜 시간을 지나, 아픈 사연을 겪고서도 따님이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아버님을 찾아 따님이 인사를 드립니다. 평안하시길.”
서연이 묵념하자 주변에서 라벤더 향이 진하게 퍼졌다. 영희는 주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모습을 감췄지만 그곳에 함께 하고 있었다. 향이 진해졌다 금새 은은해지기도 하는 것이 영희의 묘한 감정 변화를 나타내는 것 같았다.
"자유로는 비가 많이 오면 시야가 흐려져 사고가 자주 일어나요. 영희씨는 끔찍한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요."
“제게 그럴 힘이 있을까요.”
“졸음 운전 하는 차가 있으면 그냥 뒤에 가만히 타서 앉아 계세요. 모습을 보이지는 말구요.”
며칠 후, 장맛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자유로는 빗물로 인해 시야가 제한적이었고, 한 운전자가 졸음 운전을 하며 바퀴가 차선을 밟았다 벗어났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영희가 뒷자리에 머물자 차 안에는 진한 라벤더 향이 순식간에 퍼졌다. 맑은 정신을 되찾은 운전자는 그날 따라 방향제의 향기가 상쾌하다고 생각했다. 영희는 자유로의 수호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