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빨간 마스크
밤 11시가 넘은 시각, 최서연은 클라이언트와의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강남역 인근 골목길을 걸어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택시를 탔겠지만, 오늘은 머리를 식힐 겸 걷기로 했다. 화려한 간판들이 빛나는 대로를 벗어나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자, 주변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골목길 중간쯤, 가로등 하나가 깜빡이더니 꺼졌다. 서연은 한숨을 쉬며 휴대폰 플래시를 켰다.
"얘, 어때? 내 마스크 예쁘지? 내 얼굴은 더 궁금하지?"
불쑥 다가온 여성의 목소리에 서연은 고개를 들었다. 빨간 마스크를 쓴 여성이 어둠 속에 서 있었다. 창백한 얼굴, 긴 검은 머리카락, 하얀 원피스... 전형적인 도시괴담의 빨간 마스크 귀신이었다.
서연은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한 채 빙그레 웃었다.
"빨간색 잘 어울려요. 근데 꼭 사이비종교 같아요. 그렇게 갑자기 말 거는 사람이 어딨어요?“
“내 얼굴 안 궁금해?”
“저언~혀 안 궁금해요, 사람들이 대꾸도 안하고 그냥 가죠? 제 사무실에서 상담 한번 받아보시면 어떨까요?”
서연이 건넨 명함을 빨간마스크 여인은 두손에 쥐고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강남역 인근 고급 피부과 건물 12층, '서연 심령상담소'에 빨간 마스크를 쓴 여인이 방문했다.서연이 불을 켜고 노트북을 부팅했다.
“선생님은 언제부터 마스크를 쓰셨어요?”
빨간 마스크는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런 질문은 처음이었다. 도심 어두운 뒷골목이나 으슥한 곳 어딘가에 나타나 혼자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공포를 선사하는게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고시촌의 엘리베이터처럼 밀폐된 공간에 혼자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방식으로 공포를 극대화 하기도 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그중 하나가 트라우마에요. 괜찮으시다면 가벼운 최면을 시도해볼까요? 눈을 감아 보세요.“
서연이 향로에 불을 붙였다.
"이제 천천히 과거로 돌아가볼게요. 마스크를 처음 썼던 순간으로...“
‘우리 지현이 어쩌면 좋아, 내가 잘못 낳아서’
40대 중년 여인이 단칸방에 잠든 지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현은 구순 불균형으로 태어났다. 학교에 입학하고 나자 아이들은 ‘찢어진 입술’이라 불렀다. 지현은 매일 마스크를 쓰고 다녔지만 점심 시간에는 마스크를 벗을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에게 모습을 보이는게 싫어 점심을 따로 먹을 때도 많았다. 중학교 졸업 후에는 작은 봉제공장에서 주말까지 일했다. 묵묵히 미싱만 돌렸기 때문에 주변에선 지현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콜록, 콜록’
어느날 부터인가 지현의 기침이 잦아졌다. 가끔 마스크에 피가 묻어나기도 했다. 기침을 할 때마다 동료들이 수근거렸다.
‘저거 결핵 아니야?’
아프지 말아야 했다. 공장은 중병에 걸린 직원들을 칼같이 찾아내 잘라냈다. 병원 갈 돈이 없어 약국에서 탄 감기약으로 버텨야만 했다. 병을 감추기 위해 마스크는 두 겹으로 겹처 쓰고 화장실에 가서 안감을 갈았다.
오래 버틸 순 없었다. 고열이 발생해 병원에 입원한 결과 급성 결핵 판정을 받았다. 격리 병동에서 마스크를 쓴 채로 지현은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었다.
“얼굴을 고치려고 돈을 모았는데, 그 돈을 다른데 쓰고 있네요.”
지현이 간호사에게 말했다.
“저, 한가지만 꼭 부탁드려요. 혹시 제가 죽게 되면 꼭 화장해주세요. 다른 사람들이 제 얼굴을 보지 못하게 마스크는 꼭 씌워주세요.”
며칠 후 지연은 끊임없이 기침을 했다. 밭은 기침소리가 격리병동 안을 가득 채웠다. 간호사는 피가 묻어나온 마스크를 몇 번이나 갈았다. 지현에 몸에 연결해 놓은 심전도계의 바이탈 사인이 서서히 멈추었다.
서연은 지현의 손을 잡았다.
"지현씨, 이제 현재로 돌아와 주세요. 천천히 숫자를 세겠습니다. 하나, 둘, 셋...“
지현의 형체가 다시 선명해졌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마스크를 만지작거렸다.
"귀신은 보통 자신이 죽을 때의 모습으로 영원히 살아갑니다." 서연이 설명했다. "당신은 마스크를 쓴 채로 돌아가셔서, 그 모습 그대로 귀신이 되셨군요."
서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작은 서랍에서 스케치북과 연필을 꺼냈다.
"제가 그림을 조금 그릴 줄 알아요. 괜찮으시다면...“
서연은 조용히 연필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 분 후, 그녀는 완성된 초상화를 지현에게 보여주었다.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이었다. 윗입술의 흉터도 찾을 수 있었다.
"이 얼굴이 지현씨가 원했던 모습이에요. “
지현의 빨간 마스크가 서서히 색을 바꾸기 시작했다. 빨간색이 점점 옅어지더니 마침내 진한 보라색으로 변했다. 마스크 위로 눈물인지 콧물인지 모를 것들이 범벅되어 있었다.
"마스크를 벗고 거울을 보세요."
서연은 작은 거울을 그녀 앞에 들어 보였다. 지현은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마스크를 벗었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서연이 그린 초상화와 똑같았다. 거울이 귀신의 얼굴을 반사해 보랏빛으로 반짝였다.
“지현씨는 이제 두 개의 얼굴을 가지게 됐어요. 대화가 필요할땐 이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세요. 원래의 얼굴은 정말 공포가 필요한 사람에게 쓰세요. 있잖아요. 나쁜 사람들.”
3개월 후. 서울 신림동의 인적 드문 완만한 등산로를 한 여성이 지나고 있었다. 등산로 중턱에 다다르자 모자 쓴 한 남성이 이 여성의 뒤를 쫓았다. 지현이 남성에게 불쑥 다가가 말을 걸었다.
“오빠, 저 사람 말고 나 어때? 나 이쁘지?”
지현이 마스크를 벗었다.
“뭐, 뭐야 이건, 으, 으아, 으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