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비밀 독서 클럽

하루키을 글을 읽는 사람들이 사라진다면?

by 천상우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저의 소설을 더이상 읽지 말아주십시오."
무라카미 하루키가 NHK에 나와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 일 때문이다. 언제부터 그 일이 시작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요한 사실은 전세계에서 대량 실종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실종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이들의 유품중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여러 권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서재방 책상에 하루키의 소설이 놓인 케이스도 있었다.
실종 연령층은 대학생이 가장 많았지만 중고등학생부터 고연령층까지 가리지 않고 사라졌다.

"죄송하지만 앞으로 하루키 관련 도서는 독서모임 주제에서 제외하겠습니다."
대학 독서동아리 'Books & Beyond'의 회장 김서연이 공지했다. 다른 독서클럽들도 마찬가지였다. '문학사랑', '책읽는밤', '한강독서회' 등 대부분의 공식 독서모임에서 하루키는 금기어가 되었다.

하지만 위험을 파고드는 부류도 있었다.
"말이 안 돼."
준호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는 '태엽 감는 새 연대기'를 무려 일곱 번이나 읽은 진정한 하루키 마니아였다.

"소설 읽는다고 사람이 사라진다니. 그럼 셰익스피어 읽으면 햄릿이 되고, 톨스토이 읽으면 나폴레옹이 쳐들어오나?"

준호가 웃었지만 그 웃음에는 불안이 섞여 있었다. 지난 두 달간 이 클럽에서도 지난 두 달간 하루키 독자 세 명이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심해야 하는 거 아냐?"
소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만한 하루키 매니아가 어딨어. 직접 알아보자. 피하기만 하면 답이 안나와"

그렇게 하루키 비밀 독서 클럽이 만들어졌다.
하루키 비밀 독서 클럽은 SNS에 모집 공고를 올렸다.

"하루키 소설을 한 번도 읽어본 적 없는 사람들만."

놀랍게도 지원자가 꽤 있었다. 모두 실종 사건에 관심은 있지만 직접 하루키를 읽기는 무서워하는 사람들이었다.
최종 멤버는 다섯 명. 상우와 준호, 소희는 기존 하루키 독자였고, 새로 합류한 민우와 예린은 하루키를 읽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클럽은 엄격한 규칙을 정했다.

모든 모임은 3일마다 한다
같은 책을 정해진 분량만큼 읽는다
어디까지 읽었는지, 읽을 때의 감정과 상상을 상세히 기록한다
기록은 모임에서 공유하고 분석한다
누군가 이상 증상을 보이면 즉시 중단한다

첫 번째 책은 '상실의 시대'였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읽힌 하루키 소설이자, 실종자들의 소지품에서 가장 자주 발견된 책이기도 했다.
3일 후, 클럽 멤버들이 홍대 근처의 작은 카페에 모였다.
"일단 진도부터 확인하자."
상우가 말했다.
"민우야, 너 어디까지 읽었어?"
"50페이지요. 와타나베가 기숙사에서 친구랑 대화하는 부분까지."
"감상은?"
"생각보다 재미있네요. 그런데 좀 이상해요. 주인공이 너무 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민우가 자신의 노트를 펼쳤다.
"어제 꿈에서 기숙사를 봤어요. 정말 생생했는데, 마치 제가 그 기숙사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예린도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저는 30페이지까지 읽었는데, 나오코라는 캐릭터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요. 실제 사람처럼 느껴져요."
멤버들은 서로의 기록을 비교했다.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특정 장면에서 '몰입'을 넘어선 '동일시' 현상을 경험했다는 것이었다.
"이거 위험한 거 아냐?"
민우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우리도 실종자들과 같은 증상을 보이고 있는 거 같은데."
"아직은 괜찮아."
준호가 말했다.
"우리는 기록하고 있으니까. 객관화하고 있어. 문제는 혼자서 읽으면서 그 감정에 완전히 빠져드는 거겠지."

다섯 번째 모임에서 클럽 멤버들은 결정적인 발견을 했다.
"이상한 패턴이 있어."
준호가 수집한 자료들을 펼쳐 보였다.
"실종자들의 SNS를 다 분석해봤는데, 공통점이 있어. 모두 책을 '완독했다'고 마지막에 포스팅했어. 그것도 감동받았다는 내용과 함께."
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그게 궁금했어. 실종자들은 모두 하루키 책을 끝까지 다 읽은 사람들이야."
"그럼 마지막 페이지에 뭔가 있다는 거야?"
예린이 물었다.
"위험하지만 확인해볼까?"
내가 제안했다.
"하지만 안전하게. 일단 누군가 한 명이 마지막 페이지만 먼저 읽어보는 거야."
민우가 자원했다.
"제가 해볼게요. 아직 하루키에 덜 빠져있으니까."
우리는 '상실의 시대'의 마지막 페이지를 복사해서 민우에게 건넸다. 그는 조심스럽게 읽기 시작했다.
"어... 이상해요."
몇 분 후 민우가 말했다.
"마지막 페이지를 먼저 읽으니까 책에 대한 흥미가 확 떨어져요. 뭔가 마법이 깨진 것 같아요."
흥미로운 현상이었다. 우리는 실험을 계속했다. 민우는 처음부터 다시 '상실의 시대'를 읽었다. 이번에는 마지막 페이지를 이미 알고 있는 상태로.
결과는 놀라웠다. 민우는 책을 다 읽었지만 이전처럼 강한 몰입을 경험하지 않았다. 꿈도 꾸지 않았고, 캐릭터들이 현실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이거야!"
상우가 외쳤다.
"마지막 페이지를 미리 읽으면 상상력이 반감되는 거야. 그러면 책을 완독해도 안전한 거지! 아니면 마지막 페이지를 읽지 않는 방법도 있겠지. 독자가 그걸 참을 수만 있다면."
하루키 비밀 독서 클럽은 이 발견을 즉시 온라인에 공유했다. '하루키 실종 예방법: 마지막 페이지를 먼저 읽어라'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실험해본 사람들의 증언이 이어지면서 확신을 갖게 되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미리 읽으면 정말로 책의 '마법'이 약해졌다.
그러자 한 언론사가 움직였다. 데일리뉴스는 "실종 사건을 막는다"는 공익적 목적으로 하루키 작품들의 마지막 페이지를 그대로 옮긴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기사가 퍼지면서 실종 현상은 급격히 감소했다. 사람들이 하루키 책을 읽기 전에 마지막 페이지를 미리 확인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언론사들도 뒤따랐다. 하루키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출간 즉시 마지막 페이지를 공개하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루키 실종 예방법이 발견된 지 6개월 후. 무라카미 하루키는 신작 출간 발표회를 열었다. 생중계 발표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하루키 작가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그동안 작가님의 책을 읽다가 사라지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제는대책이 마련되긴 했지만 작가님께서는 복잡한 심경이실 것 같은데,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진행자의 요청을 받은 하루키가 마이크를 들었다.
"누군가 저에게 저주를 걸어버린 모양이지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제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일은 없어야겠지요. 그래서 이 책에는 마지막 페이지를 공란으로 남겨두었습니다. 그건 독자 여러분의 몫입니다."
하루키는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좋은 결말일지도 모르겠네요. 이야기는 독자가 완성하는 것이니까요."
하루키의 신작은 또다시 반향을 일으켰다. 첫 해에만 전세계에서 8000만부가 팔려나갔다. 하루키는 인터뷰가 쇄도했지만 결말에 대한 질문만은 답을 하지 않았다. 다른 기성 작가들도 마지막 페이지를 공란으로 남긴 출판 실험을 따라하기 시작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어쩌면 수백만, 혹은 수천만 명의 목숨을 구했을지 모를 하루키 비밀 독서 클럽은 하루키 마지막 페이지 창작 클럽으로 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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