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마리 모두 일주일을 버텼습니다.”
연구원이 상기된 얼굴로 김박사에게 보고했다. 세계 최초의 바이오배터리 실험이 성공하는 순간이다. 쥐 내부에 심어놓은 배터리가 변환기를 통해 쥐에게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했다. 성공 확률이 100%에 가까웠다. 내장 배터리와 변환기로 1주일간 물 한 모금, 음식 한 조각 없이도 생물이 살 수 있다는 가설이 증명되었다.
김 박사의 논문이 학계에 발표된 후 각국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이 진행되었다. 실험 대상자들 중에는 위암 1~3기 환자들이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영양 수급만 가능하다면, 아니 전력 수급만 가능하다면 위장을 떼어나고 사는게 더 나은 방법일 수 있었다.
6개월간 각국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이 성공했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김 박사가 설립한 바이오테크 스타트업 ‘뉴트리볼트’는 1년여간 200조원 이상을 빨아들였다. 각국 정부는 경쟁적으로 '인류 전동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은 5년 내 인구의 50%를 전동화하겠다는 목표를, 중국은 3년 안에 전 인구의 70%를 바이오배터리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일상은 급격히 변했다. 대다수 가정의 침대 매트리스에는 무선충전 패드가 내장되었고, 8시간의 수면은 이제 단순한 휴식이 아닌 생명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충전 시간'이 되었다. 인류의 음식 문화는 말 그대로 문화생활의 의미를 가졌다.
세대를 거듭하자 후손들은 축소된 위장을 가지고 태어났다. 살다가 위장에 문제가 발생하면 떼어버리면 그만인 장기가 되었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더 이상 생존을 위한 필수가 아닌 사치스러운 문화활동으로 재정의되었다. 미슐랭 레스토랑은 "진정한 감각적 경험"을 내세우며 한 끼에 일주일치 충전 비용보다 비싼 가격을 책정했지만 극소수의 레스토랑 만이 살아남았다.
인간의 몸이 배터리가 되자 기술 발전은 가속화되었다. 사람의 터치만으로 작동하는 무선충전 기기들이 시장을 장악했다. 손가락 끝에서 방출되는 미세전류를 이용해 전력을 공급하는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가 등장했다. 인간의 손길이 닿는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시대가 온 것이다.
특히 혁신적이었던 것은 '바이오루멘'이라 불리는 휴대용 조명이었다. 작은 장치를 손바닥에 올려놓기만 하면 인체에서 생성된 전기를 빛으로 변환해 어둠을 밝혔다. 전기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도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빛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교통 시스템도 완전히 재구성되었다. '바이오카'라 불리는 새로운 전기차는 탑승자가 많을수록 더 많은 에너지를 얻었다. 네 명이 탑승한 바이오카는 충전 없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릴 수 있었고, 대형 바이오버스는 승객 50명만으로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무정차 운행이 가능했다. 인간이 많이 모일수록 더 많은 에너지가 생성되는 새로운 물리법칙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배터리 공급업체들은 혁신 기술을 내놓기 시작했다. 한번 완충으로 3개월 살 수 있는 프리미엄 배터리가 나왔고, 가난한 사람들은 일주일 짜리 배터리로 시작해 돈을 모았다. 대용량 배터리를 가진 사람들은 충전 없이도 더 긴 여행을 한번에 할 수 있었으므로, 그들 끼리 어울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배터리 계층구조가 형성되었다.
바이오배터리가 인류의 표준이 되자 배터리 주 재료인 희토류 확보가 국가 안보의 핵심이 되었다. 중국, 미국, 러시아는 아프리카와 남미의 희토류 광산을 확보하기 위해 외교적, 군사적 압력을 행사했다.
2035년, 콩고에서 첫 번째 희토류 전쟁이 발발했다. 중국과 미국의 대리전 형태로 시작된 이 전쟁은 곧 전 세계적인 분쟁으로 확대되었다. 희토류를 보유한 국가들은 자원 민족주의를 선언했고, 배터리 생산 기술을 가진 강대국들은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희토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바이오배터리의 가격도 따라 올랐다. 세계는 두 개의 계층으로 재편되었다. 충분한 배터리를 공급받는 전기화된 1세계와 여전히 질 낮은 음식에 의존해 살아가는 3세계였다. 배터리 교체를 위한 수술은 점점 더 비싸졌고, 많은 사람들이 배터리 노화로 인한 '에너지 기아' 상태에 빠졌다. 국제 암시장에서는 밀수된 바이오배터리가 거래되었고, 배터리 이식수술을 불법으로 제공하는 '배터리 클리닉'이 도시 뒷골목에 생겨났다. 품질이 검증되지 않은 저가 배터리로 인한 사망사고가 늘어났지만, 절망적인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이를 선택했다.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배터리 강국들은 희토류 확보를 위한 전면전에 돌입했다. 그러나 이 전쟁에는 치명적인 아이러니가 있었다. 전투에 참여하는 군인들 대부분이 바이오배터리 인간들이었고, 적국의 군사 기술 역시 자국의 기술과 유사했다.
각국은 상대방의 취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전장에서는 기존의 무기 대신 EMP(전자기 펄스) 탄이 주요 무기로 사용되었다. 한 번의 EMP 공격으로 내장 배터리가 방전된 군인들은 즉시 전투 불능 상태가 되었다. 피해를 입은 군인들은 12시간 이내에 후송되어 충전되지 않으면 사망했다. 전쟁은 그 어느 때보다 잔인하고 효율적으로 변했다. 핵을 가진 국가들은 핵탄두를 EMP탄두로 슬그머니 교체해 대비했다.
“EMP무기를 계속 쓰는 한 바이오배터리 부대끼리 싸우면 승산이 없어요. 계속해서 서로 전력만 소모하다 끝날 겁니다.”
북반구 지역 다국적 연합군 사령관이 말했다.
다국적 군은 궁리 끝에 기발한 작전을 감행키로 했다. EMP공격이 통하지 않는 순수 생체 인력이 필요했다. 다국적군은 이를 ‘불멸의 전사’ 작전으로 이름지었다. 각국은 공고를 내고 제3세계 국가의 순수 생체 인력들을 대량 모집했다. 기술적으로 열등한 사람들이 현대전에서 가장 강한 군인이 된 셈이다. 누가 먼저 생체 부대를 운용해 공격하느냐가 승부를 가를 터였다.
다국적 연합군은 2개의 부대를 운용했다. 바이오배터리 부대와 순수생체부대였다. 바이오배터리 부대에는 EMP무기를 포함한 첨단 무기가 주어졌다. 아날로그 무기를 쥐어줘도 EMP공격을 받으면 부대 전원이 후송돼야 했기 때문이다. 순수생체부대에는 전력과 연관 없는 소총과 수류탄 등 순수 아날로그 무기만이 지급되었다. 전쟁의 승패는 금새 갈렸다. 제3세계 부대를 가장 많이 운용한 연합군이 곧 승리를 거두었다. 콩고의 키산가니 광산지대에서 펼쳐진 이 전투에서 서아프리카 출신 용병들로 구성된 '가나 여단'이 결정적인 승리를 이끌어냈다. 미국-유럽 동맹이 승리를 선언했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승전의 주역이었던 아프리카 가나 출신 사령관 조코 은쿠마는 자신과 부하들이 받는 대우에 깊은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는 부대원들을 이끌고 쿠데타를 감행해 백악관을 점령했다.
"당신들은 전쟁에서 이겼지만 우리는 여전히 열등한 인간이다.“
전국 생중계 방송에 출연한 은쿠마 장군이 비장하게 말했다.
"이 버튼 한번으로 진정 평등한 세상이 오길 바란다.“
은쿠마 사령관이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르자 세계 주요국을 겨누고 있던 미국 대륙의 EMP 미사일 4500기가 전 지구를 향해 뻗어나갔다. 미사일 알람을 받은 상대 국가들이 보복 공격을 감행하며 사실상 지구 전체를 EMP 미사일이 휩쓸었다.
‘츠츠츠츠츠츠츠츠츠-’
전세계에서 동시에 전기가 나갔다. 정전의 밤이었다. 배터리가 내장된 인류의 80%가 탈진한 채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극히 일부만이 음식을 소화해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첨단기술 인프라는 모두 소멸되었다. 전기 수급이 부족해지자 바이오배터리 인간들은 배터리를 빼내고 필사적으로 소화기관을 다시 발전시켰다. 계층 갈등이 사라졌지만 인류는 수십년 만에 다시 가스램프의 시대, 석탄 보일러의 시대 등을 거치며 내연기관의 시대로 발전했다. 석유와 석탄 매장지를 가진 나라가 다시 강국으로 부상했고, 화석연료가 새로운 갈등의 싹으로 자라기 시작했다. 은쿠마 사령관이 바라던 소원은 아주 잠깐만 지속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