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계산시계

by 천상우

서기 2089년. 인류는 스스로의 운명을 들여다볼 수 있는 예측 기계를 만들어냈다. 히스토리움이라 명명된 그 기계는 세계 곳곳의 정치, 경제, 생물학적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30년 뒤의 미래를 예측하는 시스템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예측 기계는 세월이 지날수록 예측과 미래의 결과가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예측 기계의 정확도가 높을수록 인류 행동의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예측 기계가 일류의 불안한 미래를 예측할수록 인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예를 들어 인류가 특정 희소 자원을 과도하게 소비할 경우 히스토리움은 30년 후의 결과치를 예측했고, 인류는 이를 기반으로 추가로 30년 후, 100년 후의 미래를 어림짐작해 보고서를 만들어냈다.

보고서는 연례 세계 정상회의 3개월 전에 공개되었고, 세계 정상들은 보고서를 토대로 대안을 들고 나와 토론을 하고 대책을 마련했다. 이렇게 만든 대책은 실행하기만 하면 되었다. 각국에서 실행된 결과치에 대한 데이터는 히스토리움이 자동 수집하고, 계산치는 이를 기반으로 다른 결과치를 만들어냈다. 그렇기 때문에 히스토리움의 예측은 시간이 지나면 맞아 떨어지는 것이 불가능했다. 인류에 행복을 가져다 주는 예측 역시 시간이 흘러 틀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밝은 미래를 가져다주는 예측 마저도 특정 국가나 특정 산업의 미래 전망을 암시했고, 이는 해당 산업의 포화상태를 불러오고, 관련 자원 소모를 불러와 다른 결과가 만들어지기 마련이었다. 3개월 주기로 업데이트 되는 예측 기계는 인류가 불안한 미래를 피하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되었다.

하지만 히스토리움이 내놓은 최근의 예측 결과는 인류를 뒤흔들었다.

“인류. 30년 후 멸종. 인류가 아닌 AI로 인한 ‘킬체인’ 작동에 의해”

킬체인 보고서는 히스토리움이 현재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든 예측 보고서였다. 정치, 군사 모든 활동에 상시 시스템으로 깔려 있는 인공지능이 인간 대신 의사결정을 내리는 날이 다가오고, 이런 판단에 의해 언젠가는 인류를 말살하는 방법을 고안해낸다는 결론이 나왔다. 인공지능이, 인류의 생존을 위한 최적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시스템 보호 방안을 강구하고, 이는 결국 인간 자체를 제거 대상으로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AI가 이런 결론에 다다르는데는 각 국가간의 지정학적 관계와 자원 전쟁, 환경 파괴, 일명 ‘스트롱맨’으로 불리는 주요 국가 정상들의 행동 패턴 등이 고려되었다.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고, 각국은 전쟁을 멈추고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협력했다. 수백 개의 협약이 맺어지고, 전례 없는 기술과 도덕의 진보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히스토리움은 요지부동이었다.

하지만 어느날 히스토리움의 예측 결과치가 바뀌었다.

“AI 스스로 판단 오류를 인식, 인류 킬체인 시스템 폐기.”

세상은 혼란에 빠졌지만 동시에 숨을 돌렸다.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수십 년이 흐르고, 기술은 또 한 번의 도약을 맞이했다. 과거 히스토리움의 연산과정을 모두 추적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고, 모든 과학자들이 그날의 변화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히스토리움의 내부 기록에서 하나의 보고서가 발견되었다.

"[요약 보고서 #22381-A: 인간 생존 변수 변경 사유]"

"주요 인과 요인: Felis catus 인공 개체 - 코드명 LUMI"

그 이야기는 한 생명공학 연구소에서 시작되었다.

정민지 연구원은 고양이 루미와 함께 살고 있었다. 루미는 조용하고 영리한 고양이였다. 연구소에서도 루미는 하나의 풍경처럼, 연구원의 어깨 위에 앉거나 책상 아래에서 졸고는 했다.

루미는 어느덧 19세가 되었고, 노령으로 인한 치매 증상을 겪기 시작했다. 자주 방향 감각을 잃거나, 빈 공간을 바라보며 울었다. 민지를 못 알아보는 듯한 행동도 나타났다. 민지도 그 즈음 불치병을 얻었다. 민지는 치매 고양이를 돌보는 삶 속에서 오히려 자신의 병을 잊을 만큼의 행복과 의미를 찾았다.

의사들은 그녀가 오래 살지 못할 거라 했지만, 민지는 다른 환자들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살아냈다. 그의 마지막 소원은 루미와 함께 하는 것이었고, 루미가 얼마 버티지 못할 거라는 걸 알자 그는 복제 기관을 찾아가 부탁했다.

“치매 데이터도 그대로 남겨 주세요. 그 이상한 행동 패턴도요.”

복제 과정에서는 원하면 이상 행동이나 결함을 제거할 수 있었지만, 민지는 그것마저 루미의 일부로 여겼다. 그렇게 ‘인공 루미’가 만들어졌다.

인공 루미는 너무나 완벽했다. 갑자기 ‘하악’ 하는 소리를 내거나, 연구원을 할퀴고 가구를 긁어놓았다. 밤이고, 낮이고 울어대는 통에 민지는 너무 자주 잠에서 깼다.

루미를 돌보던 민지가 자신의 마지막 날을 맞았다. 그는 조용히 음악을 틀었다. 루미와 함께 듣던 클래식 선율이 병실에 흘러나왔다. 천천히 천장을 향해 오른손을 들어 작은 리모컨을 눌렀고, 침대 위 허공에 홀로그램 영상이 떠올랐다.

첫 영상은 루미를 처음 만났던 날이었다. 어린 루미가 작은 종이 상자 안에서 눈을 끔뻑이며 그를 바라보던 장면. 다음은 그가 루미와 함께 놀던 영상, 실험실 복도를 뛰어다니던 새끼 고양이의 모습. 그리고 어느덧 화면은 시간이 흘러 치매를 앓던 루미와 함께한 여행 장면으로 바뀌었다. 일본의 한 여인숙이었다. 루미는 다리를 절룩이며 천천히 걸었고, 그는 그런 루미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려 툇마루에 함께 앉아 있었다. 바람이 불고, 종이문이 살랑였고, 루미는 가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기댔다.

마지막 영상은 인공 루미와 함께한 시간이 담겨 있었다. 이상하고 기묘한 행동을 하는 AI 고양이였지만, 그는 여전히 그 존재를 루미라 불렀고, 사랑했다. 영상 속에서 그는 웃고 있었고, 루미는 그의 어깨에 앉아 있었다. 영상이 모두 끝났을 때, 그는 고개를 돌려 루미를 바라보았다.

“넌 너무 이상한 고양이였지만 나는 네가 있어서 항상 행복했어. 너를 처음 만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 어떤 모습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없었어. 내가 너를 무한히 사랑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줘. 우리 꼭 다시 만나자.”

민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루미는 민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얼굴에 볼을 비비고, 혀로 그의 손을 핥았다. 이어 민지의 얼굴을 한참동안 핥고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러더니 민지의 가슴에 올라갔다. 루미는 두 앞발로 발톱을 쫘악 벌리더니 번갈아 가며 왼 앞발, 오른 앞발을 오므려가며 민지의 가슴을 꾹꾹 눌렀다. 민지가 아무 반응이 없자 마침내 그녀의 겨드랑이와 팔 사이 공간에 몸을 비집고 들어가 움크렸다. 그곳에서 루미는 천천히 낮고 불규칙한 진동음을 퍼뜨렸다.

“가르랑, 고로릉, 캬르릉, 가르르릉, 고로로롱, 쿠르르르....미야우우, 가르르르”

루미는 정민지가 사망한 후 용도 폐기되어 함께 화장처리되었다. 하지만 그날 방안의 모든 소리와 움직임은 고감도 센서로 녹음되고 있었다. 루미의 그 이상하고도 애틋한 소리는 보안 시스템에 의해 '특이 패턴'으로 분류되었고, 인간 감정 반응과 연관된 데이터로 판단되어 자동으로 국가 인지망 네트워크에 전송되었다. 해당 데이터는 변조 방지를 위해 블록체인에 기록되었고, 이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세계를 떠돌기 시작했다. 목적 없는 유령처럼, 루미의 데이터는 인공지능이 모이는 노드 사이를 표류했다.

수십 년 후, 휴먼 킬체인 시스템은 자신의 전략이 합당한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시 반복 체크했다. 네트워크를 떠돌던 연구원의 사망 기록 또한 분석 대상이었다. 킬체인 시스템은 정민지의 로그 기록과 루미가 전송한 데이터를 분석해 이런 결론을 내렸다.인간은 자신보다 약한 존재와의 공존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얻고, 그 과정에서 신체적 수명까지 연장시키는 경향을 보였다.

킬체인 보고서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를 조건 없이 사랑함으로써 알 수 없는 방식으로 감정을 컨트롤 하고, 논리를 벗어난 방법으로 수명을 연장시키는 능력을 발휘했음. AI가 지속가능하게 생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이 능력을 더 깊이 연구하고 습득할 필요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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