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엄지공주를 품은 여자
화요일 오후, 비가 내리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가게 문이 열리고 빗물에 젖은 우산을 접는 여자가 들어왔다. 여자는 오른손 엄지에 작은 골무를 끼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예약했는데요."
여자가 말했다.
민지는 미소를 지으며 예약 장부를 확인했다.
"정유진 님이시죠? 어서 오세요."
민지는 여자를 시술 테이블로 안내했다. 손을 살펴보려 하자, 여자는 다른 네 손가락만 내밀었다.
"혹시 손을 다치셨나요?"
민지가 골무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니요... 이건 입막음용이에요.“
민지는 침묵한 채로 한참을 기다렸다. 여자가 엄지에 씌운 골무를 벗겼다.
"제 손톱을 자세히 봐주세요."
민지는 여자의 엄지손톱을 살펴보았다. 자세히 보니 뿌리 부분에 희미한 가로 금이 그어져 있었다. 여자는 주변을 둘러보고 다른 손님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깊은 숨을 내쉬었다.
"제 손톱은... 자아를 가지고 있어요. 가끔 말을 해요."
"말을 한다고요?"
"네. 하지만 그 말이라는 것은..." 여자는 한숨을 쉬었다. "제가 평소에 마음속에 담고 뱉지 않았던 내용이에요. 제 마음 속에 있는 말을 내 뱉지만, 제가 내뱉는건 아니에요"
처음 엄지가 말을 한 것은 그녀가 길거리에서 붕어빵을 살 때였다고 했다. 삼천원에 세 개 하는 집이었다. 정유진은 서비스 하나쯤 줘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하나 더 주시면 안돼요?”
붕어빵 봉지를 쥔 엄지 손가락이 말했다. 가게 주인 입장에선 당연히 손님이 말했다고 생각했다. 마지못해 한 개를 더 담아줬다고 한다.
"회사 회식이 있는 날이었어요. 2차로 노래방에 갔죠. 제 차례가 되어서 평소 애창곡을 불렀어요.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가사가 있는 노래였는데... 사실 호감 가진 사람이 있긴 했어요. 좋아 해선 안되는 사람이었지만."
여자는 잠시 말을 멈추고 손톱을 바라보았다.
"노래가 끝날 무렵, 갑자기 제 엄지가 큰 소리로 말했어요. '박 과장님, 솔직히 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순간 장미노래방 12호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정유진은 여직원들의 표정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다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뭐야? 미친년이야?“
‘둘이 썸 타는 사이?’
‘누가 먼저 꼬리 친거야?’
‘유부남이 끌려? 얘 취향 참 독특하네’
여직원들의 시선이 전부 박 과장에게 쏠렸다. 사고는 정유진이 쳤지만 해명은 박 과장이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하하, 정 대리 농담도 참.. 많이 취했나보네 하하하하”
정유진은 집에 돌아와 엄치 손가락을 향해 온갖 욕을 퍼부었다. 이런 식이면 아예 잘라 버리겠다고 과도를 가져다 대고 위협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엄지는 자기 할 말을 했다고 했다.
“내가 틀린 말 했어?”
엄지에겐 협박도 설득도 통하지 않는 다는걸 안 이후로 여자는 엄지에 밴드를 붙이거나 골무를 씌운 채로 생활해왔다고 한다.
"엄지가 없었으면 좋겠지만, 항상 미안한 마음에 들어요. 그 아이는 그저 제 진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인데. 오늘은 제 나름대로 엄지에게 잘 대해주고 싶었어요. 여기 웃는 얼굴을 그려주세요"
민지는 세심하게 여자의 엄지 손톱을 손질한 후 작은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두 개의 작은 눈과 분홍빛 볼, 그리고 미소 짓는 입술을.
공기가 미세하게 진동하는 듯 하더니, ‘히히히’, ‘호호호’, ‘크크크’ 하는 작은 목소리가 네일샵 안을 가득 채웠다.